연매출 300억, 300만 명 방문 유명 관광지로 거듭나

친일파 민영휘의 손자인 고 민병도 전 한은 총재가 설립한 남이섬 법인이 그의 아들 민웅기씨를 거쳐 손자인 민경혁씨에게로 대물림 되는 정황이 포착됐다. 사진=다음지도 캡쳐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조선 세조때 여진족을 토벌한 남이 장군의 묘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남이섬’이 친일파 후손에 의해 소유·운영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나라를 구한 남이 장군의 이름을 팔아 매년 3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호의호식하고 있는 것.

더구나 친일파 민영휘의 손자인 고 민병도 전 한은 총재가 설립한 남이섬 법인이 그의 아들 민웅기씨를 거쳐 손자인 민경혁씨에게로 대물림 되는 정황도 포착됐다. 친일파가 부정축재한 재산이 4대째 대물림 돼오고 있었던 것이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주식회사 남이섬이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회사 남이섬의 지분 소유 구조는 민웅기 0.46%, 강우현 1%, 민광기 5.59%, 민경혁 20.11%, 주식회사 남문 22.79%, 기타 50.05%로 구성돼 있다.

민경혁씨가 개인으로서는 최대 지분인 20.11%를 소유한 가운데 주식회사 남문의 최대주주로도 올라있어 실제로는 주식회사 남이섬 주식의 42.9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민경혁씨는 민 전 총재의 손자이자 친일파 민영휘의 4대 손이다.

1994년 민 전 총재의 아들인 민웅기씨가 주식회사 남이섬의 대표이사를 지냈지만 이후 그의 영향력은 점점 줄어들었다. 대신 민웅기씨 아들 민경혁씨의 지분 구조가 점점 증가해 40%를 넘는 등 회사를 대물림하려는 정황이 포착됐다.

실제로 민경혁씨의 지분은 지난 2013년 0%에서 2014년 14.63%로 증가했다. 이후 2015년 19%로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주식회사 남문(대표이사 민경혁)이 남이섬의 주식 19.71%를 보유하게 되면서 실제적으로는 38.71%까지 지배력을 늘려왔다. 그의 실질적 지배력은 지난해 42.90%까지 증가했다.

주식회사 남이섬 관계자는 “그 부분은 경영에 관련된 이야기라 회사 입장에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라며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여진족 토벌한 남이 장군 이름 팔아 연매출 300억

남이섬은 지난해 국내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은 관광지 8위에 올랐다. 연평균 300만 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남이섬을 찾고 있다.

남이 장군의 묘가 있다는 브랜드 이미지가 유명 관광지가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남이 장군은 조선 세조때의 무신으로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고 여진족을 정벌하는 등 조선 최고의 무장으로 꼽힌다. 외구를 토벌하고 조선에 큰 공을 세웠지만 병조판서에 오른 지 15일 만에 역모죄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남이섬은 남이 장군의 묘가 안치돼 있고 안타까운 사연까지 더해진 역사적 사실 덕분에 한번쯤 가볼 만한 관광지로 손꼽히게 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남이섬유원지를 찾은 관광객은 327만9929명으로 국내 관광지 중 8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이섬은 매년 300억 원가량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주식회사 남이섬의 2014년 매출은 292억 원, 2015년 284억 원, 지난해에는 매출액 302억 원, 당기순이익 63억 원을 기록했다.

2000년 드라마 겨울연가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06년부터는 ‘나미나라공화국’이라고 불리며 이색 마케팅을 펼치는 등 남이 장군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구한말 친일파 민영휘는 누구?

조선의 명장 남이 장군의 이름 하에 세계적 관광지로 거듭난 남이섬의 뿌리는 구한말 친일파 민영휘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영휘는 1877년 고종 14년 문과에 급제, 벼슬길에 올랐다. 1884년 갑신정변을 진압하는 데 앞장섰다. 1886년 참의내무부사·도승지를 지냈으며 이듬해 주일변리대신으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했다.

1894년 구한말 대표적 민중봉기인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자 청의 위안스카이에게 도움을 요청해 토벌하려 했다. 갑오개혁이 실시되자 탐관오리로 논죄돼 전라남도 영광 임자도로 귀양을 갔다. 이후 탈출에 성공해 벽동의 청군부대에 은신하고 있다가 중국으로 도망갔다. 1896년 대사령으로 귀국한 뒤 중추원의장·헌병대사령관 등을 지냈다.

1910년 한일합방에 협력한 공으로 일제 조선총독부로부터 작위를 받아 조선 최고 갑부로 귀족생활을 한 친일 권력형 부정축재자이다.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되기도 했다.

남이섬은 민영휘의 손자이자 전 한국은행 총재인 민병도씨가 퇴직 후 구입한 땅에 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법인화됐다. 이후 1994년 민 전 총재의 아들 민웅기씨가 사명을 주식회사 남이섬으로 변경하고 대표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후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고 있지만 지분 대부분은 민씨 일기가 소유하고 있다.

2016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전명준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지분 소유 구조는 민경혁(20.11%), 민광기(5.59%), 민웅기(0.46%), 강우현(1%), 주식회사 남문(22.79%), 기타(50.05%)로 구성돼 있다.

위와 같은 일련의 논란에 대해 전명준 남이섬 사장은 본지에 다음과 같이 알려왔다. 그는 "남이섬은 설립 당시 아무도 찾지 않는 황무지를 동네 주민과 직원들이 손수 가꿔 국민관광지로 꾸며 온 곳이다"며 "현재 500여 명의 임직원들의 정년을 없애고 평생직장을 구현하며 일하고, 수익보다는 영원히 사랑받는 한국의 대표 명소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남이섬의 설립근거와 운영의 현재가 대중들에게 오해할 수 있는 논란은 배제해 주길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곧 이어질 본지 근성추적-남이섬의 진실 두 번째 기획에서는 역사학자들이 본 남이섬, 그리고 남이섬이 한류의 중심지로 자리매김 하는 것에 논란을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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