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한화그룹, 태광그룹 등 기업의 불법 비자금 의혹 수사에 이어 정치인들의 불법 후원금 수수 의혹 수사에 이르기까지 최근 검찰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얼마 전엔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국회의원 11명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정가를 발칵 뒤집어 놨다. 이른바 검찰의 전방위 사정이 본격화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정가 안팎에선 조금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과거와 달리 검찰 수사에 테마와 초점이 없다는 것.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가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동시다발’ 수사로 도리어 역풍을 맞고 있는 검찰의 현위치를 조명했다.


청와대와 불통, 내년 고검장 승진 앞둔 지검장들의 각축전 ‘눈총’

의원실 압수수색 파장 고려하지 않은 검찰 수뇌부의 실책도 한 몫


최근 검찰에서 진행 중인 수사가 워낙 많아 검찰 안팎에서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정관계와 기업, 정치권을 망라한 전방위 사정이지만 뚜렷한 지향점이 없다는 점에서 검찰 내 위기의식마저 느껴질 정도다. 당장 2008년 검찰 수사만 해도 전 정권 비리 단죄라는 목표가 뚜렷했던 것에 비하면 현재의 검찰 수사는 초점이 없다는 게 검찰 안팎의 지배적인 시각이다. 이에 따라 “검찰권이 어지럽게 행사되고 있다”는 오인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연유에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가장 첫 손에 꼽힌다. 청목회 수사와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 사실을 법무부 장관이 사전에 보고받지 못했다는 게 그 이유다.


법무부, 균형자 역할 역부족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검찰이 과거 큰 수사를 할 때는 법무부 검찰국을 통해 청와대와 소통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해 왔다. 결국 사전 보고를 받지 못한 법무부 장관은 유명무실한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나아가 검찰 안팎에선 청와대 사정라인과 검찰 수뇌부 간의 불협화로 검찰권이 유기적으로 행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설까지 나돌고 있다.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사시20회)과 김준규 검찰총장(21회)보다 후배인 이귀남 법무부 장관(22회)이 균형자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설명이다.

따라서 청와대 역시 난감한 상황에 놓인 것만은 사실이다. 청와대가 주도하는 ‘기획사정’으로 해석해선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해 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청와대 한 관계자에 따르면 파문을 몰고 온 검찰의 국회의원 11명에 대한 압수수색은 “서울북부지검이 검찰총장과 상의한 뒤 기습적으로 한 일로 청와대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고 전했다. 더욱이 청와대는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지난 4일에서 하루 지난 5일 압수수색 착수 2시간 전에 보고를 받아 당황했다는 후문도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서울 G20 정상회의도 있는데 의도적이고 인위적으로 수사에 개입하거나 진행시킬 때가 아니다”면서 민주당 강기정 의원이 제기한 김윤옥 여사 관련 의혹을 덮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서도 “특정 의원을 탄압하는 그런 속 좁은 정권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검찰 수뇌부의 지휘권을 문제 삼기도 한다. 북부지검에서 진행하고 있는 청목회 수사와 관련해 검찰 주변에선 “정치인을 겨냥한 수사치고는 정교하지 못하다”는 뒷말까지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 정원의 3.7%인 11명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검찰 수뇌부의 실책이라는 지적이다. 서부지검이 벌이는 한화그룹 수사 역시 말이 많다. 별다른 성과 없이 장기전 양상을 보이는 것은 결과적으로 검찰 지휘부의 경험부족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는 것. 사실상 서부지검은 진퇴양난에 놓인 셈이다.

또 다른 요인으로는 검사장들의 배치 구조가 지목되고 있다. 수사의욕이 넘치는 검사장들이 대검 중수부 및 4개의 재경지검에 배치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는 것. 김홍일 대검 중수부장(사시24회)과 남기춘 서울서부지검장(25회), 이창세 서울북부지검장(25회), 길태기 서울남부지검장(25회), 이재원 서울동부지검장(25회) 등은 모두 내년 초 고검장 승진을 앞둔 후보군으로 서로 경쟁적으로 수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과거에는 특정 검찰청에서 굵직한 수사가 진행되면 수사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다른 청에서는 기다려 주는 게 관행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양상이 달라진 것도 한 몫 한다.


검찰권 ‘과잉행사’ 오인 충분


야권에선 현재 전방위로 진행 중인 검찰 수사를 놓고 이명박 정권 차원에서 조율된 ‘기획사정’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살펴보면 야권의 의혹 제기와 달리 검찰은 오히려 정권과의 조율 없이 중구난방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가 “여당까지 나서 정치인 후원금 수사를 비판하는 것만 보더라도 정권과 교감을 가진 사정수사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지 않느냐”고 반문할 정도다.

하지만 논란은 여전하다. 검찰이 정권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고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사방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수사가 자칫 검찰권의 과잉행사로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절제된 검찰권 행사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