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장관의 ‘숨겨진 딸’에 대한 진실공방으로 파문을 몰고 온지 1년. 당시 친자확인청구소송에 휘말렸던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1심 패소에 불복해 상소를 결정하면서 공은 다시 법원으로 넘어갔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만큼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지만 이 장관을 둘러싼 구설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 장관이 여전히 유전자 검사를 회피하고 있다는 게 그 이유다. 지금까지의 판례를 볼 때, 친자확인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를 불응하면 법원은 이유를 불문하고 친자관계를 인정해왔다. 사실상 유전자 검사 결과가 친자 여부를 결정짓는 결정적 단서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장관은 친자관계를 강력히 부인하면서도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까지도 법원의 유전자검사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궁 속으로 빠져든 이 장관의 친자확인소송을 되짚어 봤다.


환경부장관실로 유전자 출장감정 강행했으나 돌연 해외출장

계속된 불응으로 감정 취소하고 2심 판결 내릴 가능성 높아


이만의 환경부 장관의 항소심은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됐다. 전달인 9월25일, 35세의 재미교포 여성 진모씨가 제기한 친자확인청구소송에서 패소하자 이에 불복하고 한달여만인 10월23일 상고장을 접수한 것. 이 장관은 원고 진씨의 어머니와 결혼 전 알고 지내며 교제까지 했던 사실에 대해선 인정했으나 “혼외자식은 없다”는 그간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뿐만 아니다. 소송을 제기한 진씨의 어머니가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면서 타협이 아닌 원칙으로 맞선 사실에 힘주어 설명했다.

양측의 주장이 계속해서 대립되고 있는 만큼 법원은 또다시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다. 앞서 1심에선 이 장관이 유전자 검사에 불응했다. 공무가 많기도 했거니와 35년 만에 갑자기 나타나 친자확인을 요청하는 것에 응할 수 없다는 게 이 장관의 해명이었다.


“출장 때문에 늦어진 것일 뿐”


결국 이 장관의 유전자 불응은 진씨의 승소에 빌미를 제공하게 됐다. 때문에 이 장관은 “2심에선 필요할 경우 절차에 맞게 대응할 계획”을 밝히며 필치 못할 경우 미뤄왔던 유전자 검사도 강행할 것처럼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는 항소심이 시작된 지 1년이 넘도록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법원의 유전자 검사 요청은 총 4차례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5월25일,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 감정기일이 잡혔으나 6월24일로 연기됐다. 이 장관의 불참 탓이다. 사실 이 장관은 이후에도 유전자 검사 기일을 한 번도 지키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한차례 미뤄진 6월24일에도, 그 다음 미뤄진 9월15일에도 유전자 검사는 이 장관의 불참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법원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출장감정을 강행키로 한 것. 이전까지 무산된 유전자 검사는 모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제2연구동 부검실 1층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계속해서 불참할 수밖에 없는 이 장관의 편의를 생각해 유전자 조사를 이 장관의 집무실에서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법원 주변에선 실제 이 장관이 유전자 검사에 응할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1심에 이어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지난 2년여 동안 법원에서 요청하는 유전자 검사를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았다는 게 불신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출장감행이 있기로 한 지난 10월28일, 이 장관은 집무실에 없었다. 하루 전인 27일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 참석차 일본 나고야로 해외출장을 떠난 것. 물론 이 장관 측은 유전자 감정을 피하기 위해 해외출장을 떠난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원래부터 예정된 출장이었다는 것. 이 장관 비서실 관계자는 “감정을 받지 않으려고 한 게 아니라 출장 때문에 늦어진 것인데 거부하는 것처럼 비춰진 것 같다”면서 “늦어도 11월까지는 감정을 받겠으며 그 결과에 따라 책임질 것은 책임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법원은 감정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 법의학교실의 의견을 물어 감정기일을 다시 잡을 것인지, 감정을 취소할 것인지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유전자 감정이 취소될 경우 항소심 판결도 빨리 진행될 전망이다. 물론 유전자 검사를 받지 못한 이 장관에겐 또 한 번 패소될 가능성이 높다. 법으로 유전자 검사를 강제할 순 없지만 이를 거부하면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사실. 지금까지의 판례를 볼 때, 친자확인소송에서 유전자 검사를 불응하면 법원은 이유를 불문하고 친자관계를 인정해왔다.

실제 이 장관의 친자확인소송 역시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 불응으로 1심에서 패소했다.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이 장관과 진씨의 어머니는 1971년 11월경부터 만남을 갖기 시작, 교제 과정에서 1974년 11월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자 소원해졌다. 결국 임신 8개월이었던 1975년 6월, 이 장관은 지금의 부인과 결혼했고, 진씨의 어머니는 한 달 뒤인 7월22일 서울 금호동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홀로 딸을 낳았다. 이후 진씨의 어머니는 이 장관을 상대로 혼인빙자간음죄를 물어 고소했으나 담당 검사의 중재로 고소를 취하, 위자료 명목으로 50만원을 받은 뒤 1984년 4월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유전자 검사 하루면 ‘끝’


이 같은 정황으로 친자관계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법원은 이 장관에게 수차례 유전자 검사를 요구했으나 이를 행하지 않자 진씨를 이 장관의 친딸로 보는 것이 옳다는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이 장관의 친자확인소송의 관건은 여전히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에 달렸다. 검사 결과 내용에 따라 친자 여부가 확인되는 셈이다.

이 장관이 유전자 검사에 응할 경우 그 결과는 하루 정도면 알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년간 끌어왔던 진실공방전이 이 장관의 유전자 검사 하루면 종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결백과 달리 번번이 유전자 검사가 무산된 이 장관을 둘러싸고 잡음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진씨의 어머니는 이 장관이 항소심을 제기한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5년간 딸을 혼자 키워온 것에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이 장관의 새빨간 거짓말로 더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 특히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는 이 장관의 해명에는 “기가 막혔다”라는 게 진씨 어머니의 심정이다. “딸을 조용히 호적에만 넣어줬어도 이렇게 까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한 진씨의 어머니는 돈을 요구한 적이 없을뿐더러 사건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 당사자는 바로 이 장관이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앞서 진씨의 어머니는 지난해 <시사저널>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8년 7월12일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지하 바에서 만났다. 그는 ‘아이도 안 만나고 법적으로 가지 않으면서 다른 것으로 보상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진 빚이 있는데, 절반은 갚았고 절반이 남았다. 그 남은 절반의 반을 당신이 대주었으면 한다. 아이를 놓고서 흥정하고 싶지 않다. 당신 양심껏 대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자 ‘은행 계좌를 개설해서 알려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 하지만 7월20일쯤 인터컨티넨탈호텔 카페에서 그와 그의 변호사 등을 만났을 때 그가 ‘자식이 딸이 아니라 아들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터무니없는 말을 했다. 그래서 난 ‘돈이고 무엇이고 다 필요 없으니 법정에서 보자’고 했다”고 밝혔다.

진씨의 어머니는 법원 판결에 따라 진씨가 이 장관의 친자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이 장관의 호적에 올릴 예정이다. 아울러 그동안 딸을 어렵게 양육했기 때문에 양육비청구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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