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내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C&그룹과 태광그룹의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안팎에서 민주당 전ㆍ현직 의원들의 ‘로비 연루설’이 떠돌기 시작하더니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수사 재개 1주일 만인 지난 10월28일부터는 L, P, S, Y 전 의원 등의 이니셜까지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 이에 민주당 지도부는 “기획수사”, “야당탄압”이라며 즉각 반발에 나섰지만 이미 당 안팎에선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민주당 소속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자체적으로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당내에선 “호남 출신 인사 가운데 빠져나갈 사람은 거의 없다더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나오고 있는 지경이다. 나아가 검찰의 정치인 수사는 예상보다 규모나 인물의 비중 면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당내 거물급 인사가 연루됐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는 셈.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대검 중수부 “정치인 소환, 오래 걸리지 않을 것” 로비 확신

태광-C&그룹 급성장 과정에서 정권 실세의 비호 가능성 농후


중수부의 본격적인 수사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지난 10월23일 C&그룹 임병석 회장의 구속으로 신병을 확보한 검찰은 임 회장의 ‘사기대출’ 및 횡령 혐의 입증과 정관계 로비 의혹을 집중 추궁하는 한편 이와 연루된 정관계 인사들의 수사 대상자 선별 리스트를 작성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주당은 검찰의 이번 수사가 구 여권 사정의 일환이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C&그룹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에서 급성장했다는 게 그 이유다. 실제 C&그룹은 두 정권 사이에서 공격적인 인수ㆍ합병을 벌였고, 이로써 자본금 5,000만원짜리의 해운회사가 이 기간 동안 41개 계열사를 가진 중견기업으로 탈바꿈했다. C&그룹의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정권 실세의 비호가 있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게다가 태광그룹 비리 의혹에는 당내 거물급 인사의 실명마저 거론돼 여야 간 공방전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실제 한나라당 진성호 의원이 태광그룹 로비 의혹의 몸통으로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를 지목하자 박 원내대표는 “대꾸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했다. 오히려 청와대의 ‘밀양라인’을 거론하며 여권을 압박했다.


‘호남’ 정치인에게 의도적 접근


여야의 대립각이 첨예해지면서 정치권은 C&그룹 임 회장과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두 사람에 대한 검찰 수사 향방을 주시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진 두 사람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먼저 검찰 수사를 받게 된 임 회장은 영장실질 심사 때도 억울함을 호소하며 눈물까지 흘렸다는 후문이다. 다만, 정치인을 만난 사실에는 인정했다. 사업상 불가피한 만남이었다는 것. 하지만 검찰은 임 회장의 로비 의혹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정치인 소환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귀띔할 정도다.

이 같은 검찰의 확신에는 C&그룹 특수목적 법인의 ‘C&구조조정 유한회사’에 기인한다. C&그룹이 경영난을 겪던 2007년 11월 설립된 이 유한회사는 기업의 군살빼기 명분으로 만들어졌으나 실제로는 비자금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곳으로 활용됐다는 게 검찰 측의 주장이다.

앞서 2000년 중반 그룹 내에 설립된 ‘재정전략스탭(현 자금본부)’ 역시 검찰의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회장이 직접 지휘에 나설 만큼 최고위 보좌조직으로 불리는 재정전략스탭은 그룹의 자금 운용 계획을 도왔다는 것. 계열사 간 수백억대의 자유로운 자금 이동과 이를 통해 비자금을 형성한 곳이 바로 재정전략스탭이라는 설명이다. 비밀스런 임무 수행 때문에 재정전략스탭에서 근무한 임직원들은 초고속 승진은 물론 고액의 연봉을 지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임 회장의 비자금과 관련된 핵심 관계자 대부분은 이미 소환 조사를 받은 상태다. 이에 따라 검찰은 현재 임 회장의 비자금 사용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 첫 번째 단서가 바로 ‘호남’이다. 전남 영광이 고향인 임 회장은 “C&그룹을 차세대 호남 대표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로 호남 출신 정치인들에게 접근했으며 구체적인 청탁 없이도 꾸준히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증하고 있는 것이 임 회장의 ‘법인카드’다. 임 회장은 최근까지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로비를 펼쳐왔던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법인카드를 받아썼다는 인사들에는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에서 두각을 나타낸 386세대 정치인 3~4명으로 확인됐다. 이들의 법인카드 사용 정황에 서울 여의도의 최고급 중식당 이름까지 거론될 정도다.

일각에선 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 2명도 임 회장의 뒤를 봐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 중 한 사람은 최근까지 C&그룹 고문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전북의 대표적인 전주방송이 임 회장 일가의 소유라는 점에서 그 지역 정치인들과 16~17대 문방위 소속 위원들까지 모조리 구설수에 휘말리게 됐다.

무엇보다 야당의 가장 큰 충격은 C&그룹과 태광그룹 비리 의혹에서 당내 유력인사로 꼽히는 K씨와 P씨가 연루됐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지목된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으나 당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사태가 예상보다 커지자 의원들은 물론 당직자들까지 나서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정 리스트’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전언이다.

검찰은 일단 리스트 존재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 수사 당시에도 검찰은 리스트 존재를 부인했으나 추후 박 전 회장의 여비서가 쓴 다이어리가 사실상 ‘살생부’가 됐음을 시인했었기 때문이다.

10여년간 박 전 회장의 비서로 근무해 온 여직원이 자신의 수첩에 박 전 회장이 만난 사람과 장소, 일시, 접대 물품 등을 깨알같이 적어 둔 것이 박 전 회장과 정치권에 화근이 된 셈이다.

이번 C&그룹 사건에선 임직원들이 임 회장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진 ‘일일보고서’가 화근으로 작용될 전망이다. 검찰은 지난 10월21일 서울 장교동에 있는 C&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 문건을 확보해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문건에는 임직원들이 언제 누구를 만나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을 뿐 아니라 일부 보고서엔 정관계 및 금융계 인사들과 접촉한 내용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져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불똥 튈까 여권도 ‘조심조심’


이제 수사의 관건은 확보한 문건에 대한 진위여부 확인과 C&그룹 임성주 부회장의 소환조사에 달렸다. 그룹 로비의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임 부회장은 전남 목포 출신으로, 애경그룹에서 30여년간 근무하는 동안 수천여명에 달하는 정재계 인맥을 쌓아왔다는 후문이다. 임 회장이 임 부회장을 영입한 목적도 ‘네트워크’ 때문이라는 그룹 안팎의 설명도 덧붙여졌다. 실제 그룹 한 관계자는 “검찰이나 경찰과 관련된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자신이 해결하겠다고 나서곤 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임 부회장의 진술에 따라 검찰의 수사 대상자 선별 리스트에서 정재계 인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리게 될 전망이다. 특히 임 부회장은 1990년대 후반 새정치국민회의의 중앙위원까지 지내면서 호남쪽 정치인들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만큼 민주당에겐 치명타를 안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현 여권 인사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임 부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40년 지기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도 인연이 깊다. 2007년 ROTC중앙회 부회장을 지낼 당시 ROTC중앙회관 건립위원장을 지낸 천 회장이 회관 건립기금으로 사재 10억원 출연하기도 했다.

따라서 검찰은 C&그룹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임 회장이 생존을 위해 현 여권 인사들을 상대로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검찰이 앞서 대우조선해양 로비 의혹에 휘말린 천 회장의 세중나모여행 본사 및 개인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소환 통보 결정을 내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동안 휴대전화를 끈 채 검찰과 연락을 피해온 임 부회장은 10월28일 현재 서울에 올라와 있는 것으로 확인됐으며, 금명간 검찰 출두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C&그룹 로비 의혹 수사에 이어 태광그룹 수사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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