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 VS 기업 대혈투

‘블랙컨슈머’가 진화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지능화·범죄화 되고 있다. 자작극을 펼치기도 하고 언론에 알리겠다고 협박한다. 막무가내로 떼쓰기도 한다. 이에 기업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입막음 용’ 보상에 급급했던 기업들이 화를 자처했다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기업들도 갖가지 방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블랙컨슈머와 기업 간의 피 튀기는 혈전을 들여다봤다. 
 
구두쇠 아버지인 ‘철동’은 두루마리 휴지를 길게 푼다. 길이를 재더니 제조회사에 전화를 한다. “명시된 것보다 8mm나 모자라다”며 시비를 건다.
 
철동의 이 같은 행동은 계속된다. 이번엔 ‘xx볼’ 과자에 초콜릿이 부족하다는 핑계로 회사로부터 돈을 받아낸다.

영화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의 한 장면이다. ‘블랙컨슈머’의 전형인 셈이다.
 
블랙컨슈머에 기업들 ‘벌벌’
 
상습적으로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악덕 소비자인 ‘블랙컨슈머’ 문제가 심각하다.
 
이들은 ‘고객만족’을 넘어서 ‘고객감동’ 나아가 ‘고객기절’을 내세우는 기업들의 고객 우선주의를 악용해 향응이나 거액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들이 날로 조직화되고 지능화되고 있다는 것.

이들은 인터넷 카페 등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피자 한 판 가격으로 두 판을 먹는 방법’, ‘핸드폰 보상받는 법’ 등이 수없이 올라와있다. ‘모 기업으로부터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보상 받았는지’ 등을 공유한다. 컴플레인 요령에 대한 충고도 있다.

블랙컨슈머의 활동 범위도 확대됐다. 주로 문제 발생 시 기업이미지에 즉각 타격을 입는 식품·유통업계에 한했다. 최근 들어 블랙컨슈머는 전자업계·공연계 등 다양한 업계에서 활개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유통업체 A사는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 고객이 쌀 한 포대를 구입해 한 됫박 밖에 남지 않은 상태에서 벌레가 나왔다며 매장에서 생떼를 쓴 것. 결국 A사는 새 포대로 교환해 줬다.
 
B백화점은 상습적으로 고가의 옷을 구입해 자랑한 후 반품기간(구입 후 7일) 내에 반품하는 고객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런가하면 전문꾼형 블랙컨슈머들이 등장하고 있다.

한 업체는 “골뱅이 통조림을 먹던 중 이가 부러졌다”며 수백만원을 요구하는 민원전화를 받았다. 이 고객은 의사 소견서와 함께 구체적인 보상액수까지 제시했다.
 
업체 관계자는 이 같은 사실을 다른 식품업계 관계자에게 토로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고객이 과거 3~4개 식품업체를 대상으로 같은 방법으로 보상을 요구했던 사실을 알게 됐다.

업체는 고객에게 “상습적으로 보상요구를 한다는 사실을 알게됐다”며 “억지주장을 할 경우 소송도 불사 하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고객은 더 이상 보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고의로 제품을 훼손하거나 이물질을 넣어 보상을 받으려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업계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전문꾼형은 점차 법의 심판을 받는 추세다. 블랙컨슈머로 드러날 경우 공갈죄나 협박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기업 ‘블랙리스트’ 등 대안마련
 
하지만 피해를 본 업주들은 자신이 피해자 임에도 나쁜 이미지가 형성될 것을 우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입막음’에 급급하다.
 
진상조사 보다도 우선 덮기 위해 ‘묻지마 보상’을 하는 것이 관행처럼 돼 있다. 블랙컨슈머가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기업들의 묻지마 보상이 오히려 블랙컨슈머를 양산해내고 있다는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소비자원 김기범 팀장은 “블랙컨슈머가 늘고 있는 데는 소리소문없이 처리하는 데만 신경 쓰는 기업의 책임도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블랙컨슈머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공식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블랙컨슈머도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이기 때문에 조심스럽다”며 “자칫 잘못해 한 명의 선의의 피해자를 만드는 것이 10명의 악덕소비자에게 당하는 것 보다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사실상 공식적인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블랙컨슈머들의 행태에 기업들도 나름 대안책을 모색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공유가 대표적이다. 기업들은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업계에서 공유하는 악성소비자 리스트가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소비자원 조사 결과 기업들은 악성고객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블랙컨슈머들을 별도 관리하거나 악성 클레임 전담팀을 통해 보상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까지 전산 시스템에 등록해 계약을 거부하는 업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일부 기업에선 제품의 하자를 지적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소비자를 블랙컨슈머로 몰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몫 챙기려 지능화되고 있는 블랙컨슈머들과 기업 간의 혈투로 인해 그 피해는 애꿎은 소비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셈이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최근 일부 소비자의 악성 클레임은 해당기업의 애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품가격에 전가돼 선량한 소비자에게까지 피해가 미치게 된다”며 “기업들도 고객중시경영을 보다 충실하게 실천해야 하겠지만 막무가내식의 소비자 행동도 함께 개선돼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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