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이 지하철 역명(驛名)에 자사의 이름을 병기하는 등 네이밍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을지로 입구(IBK기업은행)’ 병기에 3.8억 원 지불

이미지 마케팅에 혈안…“은행 본연 임무 충실해야”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최근 시중은행을 중심으로 ‘네이밍 마케팅’ 바람이 불고 있다. 지하철 역명(驛名)에 자사의 이름을 병기하거나 대중교통 내 안내방송을 실시하는 등 브랜드 네이밍 노출에 사활을 걸고 있다.

또 본사가 위치한 지역을 중심으로 랜드마크를 조성하는 브랜드 이미지 구축 사업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금융사들은 지하철역명이나 랜드마크 단지를 선점하기 위해 눈치작전을 벌이는 등 치열한 마케팅 경쟁도 불사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금융사 본연의 임무인 금융상품·정책 개발보다 이름 알리기에만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의 네이밍 마케팅은 초기단계라 성과를 예측할 수 없으며 아직 과열단계는 아니라 조금 더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지하철 적자타개 서울시, 컨설팅사에 자문

19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은 지난해 8월 서울시에 3년간 약 3억8000만 원의 사용료를 내고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이름 뒤에 ‘(IBK기업은행)’을 병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을지로입구역 내 안내판과 전동차 내 노선도 등에 기업은행의 이름이 들어가게 됐다. 이 역은 하루 평균 7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는 만큼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네이밍 마케팅은 지하철역에서 그치지 않는다. 을지로입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는 버스에서는 “이번 정류소는 을지로2가 기업은행 본점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다. 또 T맵·카카오내비 등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에도 ‘IBK사거리’라는 검색어가 추가되는 등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는 마케팅이 진행 중이다.

기업은행은 지난 3월부터 을지로 2가 사거리를 ‘IBK사거리’로 만드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하철·버스·앱을 통한 홍보마케팅을 너머 본점 일대를 랜드마크로 조성하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은 마케팅의 초기 단계라 구체적인 성과가 수치로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은행명을 지하철역에 병기한 최초의 사례라는 의미가 있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곳을 중심으로 마케팅 활동에 나선 만큼 인지도를 넓히는 데 있어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도 네이밍 마케팅에 한창이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일 서울시와 서울 지하철 1호선 종각역에 ‘SC제일은행’이라는 역명을 병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역명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앞서 IBK기업은행 사례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3년간 승강장 내 모든 안내판과 전동차 내부 노선도 등 역명이 들어간 모든 곳에 ‘SC제일은행’이 병기된다.

또 지난해 4월부터 ‘SC제일’이라는 브랜드명을 부각시킨 마케팅을 실시한 결과 은행 이용률이 4.1%p, 브랜드 인지도는 2.7%p 각각 상승했다고 은행 측은 설명했다.

이밖에 서울시 중구에 본점을 두고 있는 신한은행도 인근 버스정류소에 신한은행을 병기하고 음성광고를 진행하고 있으며 지방은행인 부산은행과 DGB대구은행도 지역노선을 중심으로 네이밍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이름 뒤에 ‘(IBK기업은행)’을 병기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뉴시스

금융 본연의 역할 충실해야

현재 은행권의 역명병기 사업은 서울시와 계약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는 브랜드명이 자주 노출됨으로써 소비자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 측은 수익을 창출한다는 측면에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지하철 만성적자 타개를 위해 맥킨지&컴퍼니에 자문을 요청했다. 맥킨지는 스페인에서 실시된 지하철역 병기 사업 모델을 서울시에 권고해 지난해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서울시는 58개 지하철역을 선정해 입찰을 냈고 이 중 22개 역에서 총 4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네이밍 마케팅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지역특색을 담고 있는 역명이 상업적 홍보로 얼룩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3년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다른 업체와 계약이 체결될 때마다 역명이 변경되면 시민혼란이 가중된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 도시철도관리팀 관계자는 “지하철역명이 상업적 홍보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역명심사위원회를 구성해 병기를 추진할 역과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를 선별하고 있다”며 “3년의 계약이 종료되면 1회에 한해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잦은 역명 교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주 역명이 바뀌는 건 아니기 때문에 시민 혼란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상품 개발과 소비자금융 정책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야할 은행이 홍보마케팅에만 치중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을지로입구역의 경우, 역명 병기는 ‘IBK기업은행’으로 돼 있지만 안내방송은 ‘KEB하나은행’으로 나오고 있다. 을지로입구역 출구 계단의 래핑 광고는 기업은행이, 승강장 스크린도어 본점 안내 광고는 하나은행이 선점하는 등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장은 “금융사 본연의 역할 안에서의 경쟁보다 현행 벌어지는 이미지 경쟁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며 “아직 초기 단계의 홍보전이라 지켜봐야 하겠지만 홍보마케팅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금보다 과다해진다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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