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하림그룹 회장. 사진=뉴시스

5년 전부터 상속, 80% 육박하는 내부거래로 덩치 키워

정부정책 비판해온 김회장, 文정부 재벌개혁에 ‘이중고’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농업 기업으로는 드물게 대기업 반열에 올라선 하림이 전례없는 편법증여를 한 사실이 밝혀져 때 아닌 위기에 휩싸였다.

자산이 무려 10조 원에 달하는 하림그룹의 지배권이 편법으로 승계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총 자산의 고작 0.1%에 불과한 100억 원의 상속세만으로 승계가 이루어져 의혹에 불을 지폈다.

이번 승계과정에서 80%에 육박하는 과도한 내부거래 비중이 문제로 제기됐다. 또 계열사 지배구조를 이용한 편법으로 25세 대학생에 불과한 김홍국 회장의 아들이 그룹의 실질적 지배자가 된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를 필두로 한 새 정부의 재벌개혁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성장세를 구가하던 하림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하림은 최근 3년 새 공격적인 M&A 정책으로 몸집을 두 배 이상 불려 왔다. 그러나 지난달 대기업집단에 편입되면서 그동안 누리던 세제혜택 대신 새로운 규제에 발목이 묶이게 됐다. 이로써 대기업 규제 장벽을 넘고 정부의 강력한 재벌개혁 칼날에 맞서야 하는 하림의 입장은 한마디로 칼 날 위 이중고이다.

일각에서는 하림이 그동안 누려온 혜택과 이중적 행보에 비판을 가하며 강력한 재벌개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이 그동안 정부의 기업규제법에 반발하는 행보를 보였고 한편으론 엄청난 세제혜택을 누려왔기 때문이다.

하림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도약 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비상식적인 증여세 납부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김홍국(59) 하림그룹 회장의 아들 김준영(25)씨가 하림그룹의 실질적 지배력를 확보했다. 김씨는 회사 경영 경험이 전무한 대학생 신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단에 위치한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현재 김씨는 제일홀딩스의 지분 44.6%를 보유하고 있고 김회장이 두 번째로 많은 41.78%를 갖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가 제일홀딩스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승계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가업 승계 과정에 비정상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이 난무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21살에 불과하던 지난 2012년 아버지로부터 한국썸벧판매(현 올품)라는 회사의 주식을 100% 상속받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대학생이던 김씨는 수입이 없어 상속 과정에서 발생한 증여세를 낼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김씨는 올품으로부터 유상감자를 받아 100억 원의 현금을 마련, 가뿐하게 증여세를 납부했다.

유상 감자란 회사의 주식을 줄이는 대신 주주에게 돈을 주는 것을 말한다. 회사 주식 100%를 물려받은 뒤 그 주식을 본인의 회사에 팔아 현금을 마련해 증여세로 납부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회사 주식 30% 정도를 팔아 현금을 마련했는데 올품이 김씨에게 지급한 100억 원의 출처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서비스에 올품이 공개한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올품은 지난해 1월 사측이 보유한 NS쇼핑 주식을 담보로 대구은행에서 100억 원을 대출했다. 공교롭게도 대출이 이뤄진 날은 김씨가 유상감자를 통해 100억 원의 현금을 지급받은 날과 같다.

올품이 주식담보대출을 통해 100억 원을 확보하고 이를 유상감자를 통해 김씨에게 지급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 모든 과정에 불법은 없지만 편법이라 불릴 요소가 다분한 게 사실이다.

비정상적인 내부거래

올품은 그동안 비정상적인 내부거래를 통해 몸집을 불려왔다. 올품이 한국섬벧판매이던 시절인 2010년부터 2012년까지 3년간 내부거래 비중은 평균 80%를 상회했다.

2010년 매출액은 814억 원이었으며 이 중 내부거래규모가 약 691억 원(84.9%)에 달했다. 2011년에도 매출액 709억 원 중 내부거래가 약 562억 원(79.3%)을 차지했으며 2012년에도 861억 원 중 약 727억 원(84.5%)이 내부거래로 이뤄진 매출이었다.

이후 2013년 들어 사명을 지금의 올품으로 사명을 변경하면서 매출액이 급증했고 내부거래 비중은 20%대로 낮아졌다. 2013년 매출액 3464억 원 중 내부거래 비중은 약 730억 원으로 21.1%에 달했다.

또 2014년 매출 3470억 원 중 약 728억 원(21.0%), 2015년 매출 3713억 원 중 약 742억 원(20.0%), 2016년 매출 4160억 원 중 약 856억 원(20.6%)의 내부거래액을 기록했다. 2013년을 기점으로 내부거래 비중이 평균 80%대에서 20%대로 낮아졌지만 내부거래 총액은 꾸준히 700억~800억 원대를 기록해 왔다.

이후 2015년 들어 올품은 금융사인 에코캐피탈을 제일홀딩스와 하림홀딩스로부터 440억 원에 사들이면서 다시 한번 덩치를 키웠다.

이로써 올품은 지난 2011년 매출액 707억 원에서 지난해 4160억 원으로 약 5배 성장했다. 같은 기간 순자산은 364억 원에서 3764억 원으로 7배가량 성장했다.

현재 김씨는 올품의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올품은 한국썸벧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 또 올품과 한국썸벧은 제일홀딩스의 지분을 각각 7.46%, 37.14% 가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김씨가 가진 제일홀딩스의 지분은 44.60%에 달한다.

제일홀딩스는 하림그룹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서 있는 회사다. 경영에 단 한 번도 참여해본 적도 없는 대학생 김씨가 비상식적인 편법증여와 비정상적인 내부거래 만으로 10조 원 자산 규모의 하림을 손 안에 넣게 된 셈이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재지정

김홍국 하림 회장은 탁월한 사업 수완과 공격적 M&A 등으로 하림을 대기업 반열에 올려놨다. 김 회장은 18살 되던 해 양계사업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86년 하림식품을 설립했으며 1997년 코스닥 시장에 주식을 상장시키며 사세를 확장했다.

2001년에 하림그룹이 출범시키면서 (주)NS쇼핑을 출범시켰다. 또 프리미엄 계육회사인 올품을 설립하고, 동물의약품 제조회사인 한국썸벧을 계열사로 편입시키는 등 그룹체제를 갖춰나갔다.

하림은 2010년대 들어 자산 3조5000억 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으며 2014년에는 자산 가치 4조7000억 원을 돌파했다.

김 회장은 공격적인 M&A와 거침없는 행보로 사세 확장에 나섰다. 2015년에는 자산가치 4조 원에 달하는 팬오션을 인수했고 지난해는 4500억 원 규모의 양재동 구 파이시티 부지를 사들이면서 대기업 반열에 올라섰다.

2015년에는 자산가치 9조9000억 원을 기록하며 재계 순위 2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지난해는 30위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자산가치 10조 원을 돌파하면서 반년 만에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다시 지정됐다.

이에 대기업으로서 채무보증 제한,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 공정거래법 규제, 기업활력제고법, 벤처기업육성법 등 20개 법률에 걸쳐 35개 규제를 새롭게 적용받게 됐다. 공격적 인수합병을 통해 대기업의 반열에 오른 만큼 이제는 새로운 규제 하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한 또다른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새정부 재벌개혁에 ‘이중고’

대기업집단으로서 새로운 규제의 적용 하에 놓인 하림은 새 정부 들어 화두로 떠오른 재벌개혁과도 맞서야 하는 형국이 됐다. 설상가상 최근 불거진 편법승계 논란으로 공정거래위원회도 하림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새 정부 첫 공정거래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상조 후보자는 최근 재벌개혁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

김 내정자는 지난달 31일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재벌개혁은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사안이며 출자총액제한제도 같은 사전적 규제보다 규제 대상을 선택·집중해 다양한 정책 수단을 조합해 활용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총수 일가의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가공자본을 창출해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 강화에 순환출자가 이용될 수 있어 원칙적으로 해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재벌개혁을 실현할 기업집단국 신설을 예고한 상태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직명 거명하며 "과거 재벌 대기업 중심 경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경제·사회 정책을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최고의 적임자"라고 소개했다.

문 대통령의 재벌개혁 의지가 드러난 대목으로 향후 하림그룹을 포함한 대기업집단의 수난이 예고된 상태다.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하림은 그동안 농·식품 기업으로서 수많은 정책지원을 통해 성장해왔는데 기존의 재벌들이 편법승계 과정에서 자행해온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특히 하림은 지난 5월 대기업집단으로 재지정되기 전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 이러한 편법 승계 작업을 미리 완료해 놓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위에서 이러한 편법 승계를 면밀히 파악해 규제에 나설 필요가 있으며 공정거래법에서 규정한 내부거래 비중의 기준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련의 논란에 대해 하림그룹 측의 입장과 해명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전화 연락을 시도했지만 하림 측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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