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 해법은 ‘계좌추적과 소환조사’ 면피용”

신문게재일자: 2005. 10. 17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미국서 ‘삼성 구출작전’에 나섰다.
이건희 회장은 X파일 사태와 에버랜드 변칙증여 등으로 검찰의 소환 가능성이 불가피해지자 지난 9월 4일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고, 5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귀국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이 회장의 귀국이 늦어지자 한때 폐암이 재발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 회장이 국감 증인 출석과 검찰 소환 등을 피하기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 그동안 사태 해결을 위한 해법 찾기에 고심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최근 출국금지 일시 해제를 받으면서까지 미국서 체류 중인 이 회장을 만나고 돌아왔다는 점에서 이 회장이 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해법을 제시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본문)
이건희 회장은 지난 9월 4일 그룹 구조조정본부에도 공식일정을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미국 휴스턴으로 출국했다.
이후 삼성측은 이 회장의 출국에 대해 건강상의 이유를 들며 구체적인 현지 일정과 귀국 시기에 대해서는 확인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결국 이 회장은 지난 9월 18일인 추석을 미국에서 보내면서까지 귀국을 하지 않았고, 국감 증인 출석일인 지난 10월 5일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암센터가 있는 휴스턴 현지에서 태풍 피해가 예상돼 잠시 텍사스 부근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와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안기부·국정원 도청사건과 관련, 검찰의 2차 소환조사를 받고 있던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지난 14일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은 직후 출국금지 일시 해체를 요청하고 미국으로 출국, 휴스턴에 머물고 있는 이 회장과 면담을 하고 지난 17일 새벽 귀국했다.
이 회장이 미국으로 출국한지 50여일 만에 이뤄진 삼성 1, 2인자간의 만남이었다.
이 부회장은 검찰에 출국금지 일시 해제를 요구할 당시 중요한 해외투자회의 참석을 이유로 들었지만 이번 출장에서 이 회장을 직접 만나 그룹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번 출장에서 이 회장으로부터 X파일 사태, 금산법 개정,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 등에 대해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해법들을 제시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이 이 회장과 직접 만나 3~4일 정도 면담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이 현 사태에 대한 구체적인 해법을 논의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 회장이 미국서 장기 체류를 감안해 삼성의 정기인사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 회장은 지난 9월 4일 출국 이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고,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에 따른 검찰의 소환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던 상황이어서 ‘도피성 출국’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미국 휴스턴으로 출국한 이 회장은 MD앤더슨 암센터에서 검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특별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휴스턴 부근에서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 회장 귀국 안하는 진짜 이유

이 회장은 미국으로 출국한 이후 삼성 구조본과 측근으로부터 그룹 현안과 국내 상황 등을 보고받고 원격경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 사태가 삼성이라는 ‘기업’보다 이건희 회장이라는 ‘총수’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회장의 귀국이 더욱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후 이재용 상무 등 이 회장의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하는 등 변칙증여에 대한 강력한 수사 의지를 보이고 있어 이 회장과 이 상무 등에 대한 소환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회장이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있던 이 부회장을 미국으로 호출한 것도 변칙증여 사건에 따른 계좌추적과 검찰 소환 문제에 따른 심리적 압박이 작용한 것이라는 반응도 적지 않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이 회장이 미국 출국 이후 구조본으로부터 그룹 현안에 대한 보고를 받아왔을 것이고 나름대로 현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며 “이 회장이 직접 조사 대상에 거론되고 있는데다 변칙증여 사건이 자식들의 계좌추적까지 번진 상황이어서 미국서 머물며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 회장이 이 부회장을 통해 어떠한 해법을 내놓을까.
현재 삼성이 여러 가지 현안들이 얽혀 있어 이 회장이 구체적인 해법보다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찾는데 고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이 유죄 판결을 받아 검찰이 이 회장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했기 때문에 이것이 이 회장은 물론 삼성 고위 관계자들에 대한 잇단 검찰 소환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현재 이건희 회장을 가장 압박하고 있는 카드는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계좌추적과 소환조사”라며 “단순하게 해결할 문제는 아니지만 위기를 면할 수 있는 묘안을 내놓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의 유죄판결에 불복해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다.
당시 삼성측은 “에버랜드의 CB발행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업무상 배임을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이 유죄판결이 나온 이후 이 회장의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에 착수하는 등 강력한 수사 의지를 드러내고 있어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이 일파만파로 커질 공상이 크다.
서울중앙지검도 “당시 실무자 등을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히고 있고 이재용 상무 등에 대한 계좌추적으로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계좌추적, 이 회장 공모 혐의 밝힌다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과 관련, 이번 검찰의 소환 대상은 수사초기부터 출국 금지된 당시 에버랜드 실무자들과 삼성그룹 비서실 임원들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 회장의 4남매에 대한 계좌추적을 통해 당시 에버랜드 실무자 등을 추궁할 새로운 단서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회장과 이 상무도 검찰의 소환 조사를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검찰이 에버랜드 변칙증여와 관련, 계좌추적을 통해 이 회장의 공모 혐의를 입증할 단서를 확보하는데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현재 이 회장 일가는 출국 금지 대상에서 제외된 상황이지만 계좌추적을 통해 새로운 단서를 확보하고 실무자들을 소환해 조사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 회장과 이 상무가 소환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이 회장 일가의 소환조사 가능성도 내비췄다.
검찰은 이 회장의 4남매가 지난 96년 12월 에버랜드 CB(전환사채)를 저가에 구입하는데 사용됐던 자금의 출처를 조사하기 위해 이들의 계좌를 추적하고 있다.
또한 검찰은 이 상무 등 이 회장의 4남매가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자금이 삼성 계열사로부터 흘러나온 것일 가능성도 있어 재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 이건희 해법은 면피용?

이 회장은 과연 삼성그룹의 현안에 대해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X파일 사태에서 이 회장 일가의 소유지배구조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변칙증여와 금산법 문제 등이 본격 도마에 오르고 있기 때문에 이 회장으로서는 미국에서 국내 상황을 마냥 지켜볼 수 없는 상황이다.
출국한지 50일 만에 검찰 소환조사를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을 전격 호출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현재 이 회장과 삼성을 괴롭히고 있는 난제들이 단순하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도 없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삼성 관련 사태들이 이미 해법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선을 넘어섰기 때문에 이 회장도 쉽게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이 회장의 해법 찾는 검찰 소환조사와 같이 직접 나서서 해명해야 하는 일을 막는 수준에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번 이 부회장의 미국 출장도 검찰 소환조사 직후 이뤄졌다는 점에서 ‘계좌추적’과 ‘검찰 소환’을 피하기 위한 전략적인 논의가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한 고위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현재 삼성을 압박하고 있는 난제들 대부분이 이 회장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 회장은 자신이 총수로서 면피할 수 있는 묘책을 찾는데 고심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삼성 사태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현재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이 회장도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은 이미 법원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내려졌고, 이에 삼성이 법무팀을 풀가동해 이번 판결에 대해 항소했지만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일단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에 이 회장 일가의 검찰 소환이라는 ‘급한 불’을 끄는데도 버거운 실정이다.
불법정치자금 제공 문제도 이미 삼성이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또한 삼성그룹의 해체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금융산업구조개선에관한법률(금산법) 개정도 이미 대세가 기울고 있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이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참여연대 한 관계자는 “그동안 반삼성 분위기가 단순히 삼성이라는 ‘기업’을 향한 비난이었다면 이제는 이러한 비난 화살이 이 회장 일가에 몰리고 있다는 이 회장은 순각 모면식의 해법 찾기보다는 문제의 근본을 인식해 국내를 대표하는 그룹 총수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박스)
컷: 삼성의 언론관리 실태
제목: 기사 축소·삭제에서 광고·협찬 중단까지
부제: 참여연대 보고서, 삼성 언론관리 중심 ‘삼성언론재단’의 실체
96년부터 지난해까지 재단 수혜자 237명 중 90%가 언론인

“우리 언론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유임에도 불구하고 재벌, 특히 삼성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왜곡하는가. 우리 언론은 왜 삼성의 불법적인 노조탄압을 무노조 경영전략으로 ‘미화’하고,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재벌총수와 그 일가들의 고도의 치밀한 이미지 전략을 아무런 비판없이 기사화해주고 있는가.”
지난 8월 삼성의 인적 네트워크를 해부한 보고서를 발간해 관심을 끌었던 참여연대가 최근 삼성의 언론관리 실체를 분석해 발표한 2차보고서의 서문이다.
참여연대는 ‘X파일이 신문 1면에서 사라진 이유: 삼성, 4대 재벌 그리고 언론에 관한 보고서’에서 삼성을 중심으로 재벌이 직접 운영하고 있는 ‘언론재단’을 집중 해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언론이 그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언론인의 자질 향상과 복지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 지난 95년 12월 삼성전자가 현금 100억원, 96년 1월 이건희 회장이 1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출연해 삼성언론재단을 설립했다.
삼성언론재단의 수혜자를 보면 지난 96년부터 2004년까지 총 237명이고, 이중 언론인은 전체의 90.4%인 214명이다.
언론사별로 보면 중앙일보가 21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이 KBS 19명, MBC 16명, 동아일보 15명, 조선일보 13명, 문화일보와 한국일보가 각각 12명 순이다.
이 중 이건희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사안들을 취재하는 부서인 경제부, 산업부, 논설 위원실, 사회부, 보도국, 정치부 등에 소속된 ‘간부’의 수는 총 83명으로 수혜를 언론인 214명 중 38.8%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는 보고서에서 언론재단을 통한 삼성의 언론 관리 이외에 사례분석을 통해 그동안 알려진 삼성관련 보도 논란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그동안 삼성이 삼성관련 기사를 축소·삭제한 사례와 함께 삼성 비판 기사에 대한 광고 및 협찬 중단 사례, 취재기자 등에 대해 직접 물량공세 사례 등도 함께 다뤘다.
지난 2001년 4월 19일 한국일보 가판 8면에 ‘삼성생명, 계열사 변칙지원 의혹’라는 기사에서 삼성생명이 역외펀드를 통해 계열사 주식과 채권을 투자한도를 초과해 매입한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됐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했다가 배달판에서 ‘기아차, 세금 4,208억 돌려받아’라는 기사로 대체된 것 등 7개 정도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또 지난 2001년 1월 3일 CBS ‘시사자키 오늘과 내일’에서 삼성생명의 부당해고에 대해 복직투쟁 위원장과 집행부가 출연해 삼성측이 어떤 식으로 위협해 해고하고 방해공작을 했는지에 대해 폭로했는데 방송 다음날 삼성측이 CBS에 전화를 걸어 99년부터 협찬해 오던 1,300만원 상당의 삼성화재 교통안전캠페인 중단을 일방 통보한 사실을 예로 들며 삼성이 비판기사에 대해 광고 및 협찬 중단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지난 2001년 4월 22일 독일 하노버에서 개막된 ‘CEBIT2001’ 당시 정보통신부 출입기자 12명이 삼성전자 후원으로 취재를 갔다오면서, 일부 기자들이 주말인 4월 24일부터 25일까지 프랑스 니스와 모나코 체류기간 동안 삼성이 경비 일체를 제공하는 골프를 3회 이상 친 것으로 알려졌다는 미디어오늘 보도를 인용해 삼성이 취재기자 등에 대해 직접 물량공세를 한 사례를 들며 삼성의 언론 관리를 비난했다.
<민>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