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 야구가 성공신화 밑거름

한국 대표팀이 야구월드컵으로 불리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서 승승장구하자 ‘김인식 신드롬’이 일고 있다.
개성강한 스타들과 코칭스태프를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신출귀몰한 전략·전술을 펼쳐 전력의 극대화를 이끌어내는 그의 리더십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 인식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선수들을 휘어잡았던 히딩크와는 다르다.

그리 나서지도 않고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다. 믿는 야구, 겸손한 야구로 세계 야구계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김 감독의 리더십은 냉철한 지혜와 인내, 그리고 기다림의 미학으로 평가된다.

두견새가 울지 않을 때 쓸모 없다고 버리거나 인위적으로 울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울 때 까지 기다리는 지독한 인내심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믿음의 야구’로 한국 프로야구 명장에 김 감독은 올라섰다. 그런데 세계무대에서도 바로 그 ‘믿음의 야구’로 전율이 이는 명승부를 펼치고 있고, 기적과 같은 승전가를 불렀다.

김 감독의 인내심이 WBC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장면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우선 소속팀과 조율이 안돼 대표팀 합류에 미온적 반응을 보였던 서재응(29·LA다저스)을 끝까지 믿고 기다렸다.
주변에서 이런 저런 말이 많았다. 결국 서재응은 김 감독의 끈질긴 기다림 속에 다저스와 조율을 마치고 편안하게 대표팀에 합류해 팀의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했다.
김 감독은 선수가 부진하고 어려울 때 한번 더 기회를 준다. 이번 대회 내내 부진했던 최희섭(27·LA다저스)이 좋은 예다.

김 감독은 지난 14일 미국전에 최희섭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이는 그에게 스스로 해결할 시간과 쫓기는 중압감에서 벗어 날 여유를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감독은 다시 그에게 기회를 줬고, 결국 최희섭은 감독에게 보은의 홈런포로 화답했다.

지난달 19일 후쿠오카에 대표팀이 소집된 뒤 연습경기부터 극심한 타격슬럼프에 빠져있던 이진영을 우익수로 못박아 기용했다.
이진영은 지난 5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아시아라운드 최종전에서 2-0으로 뒤진 4회 2사만루서 니시오카 쓰요시의 타구를 몸을 날리며 잡아내 역전승의 밑바탕이 됐다. 그 타구가 빠졌으면 사실 한국은 대패하는 분위기였다.

이진영은 지난 4일 중국전 8회 2루타를 기록한 뒤 계속 무안타에 허덕이다 13일 멕시코전 7회에 마침내 중전안타를 기록했다.
김동주가 부상으로 빠진 뒤 대신 기용된 이범호도 지난 16일 미국전에서 1회 이승엽의 홈런 후 계속된 2사 1·3루서 좌전 적시타를 날려 믿음에 보답했다.

투수 중에서는 지난 11일 샌디에이고전에서 난타당했던 정대현이 눈에 띈다.
주위에서는 ‘아니다’고 고개를 저었지만 김 감독은 ‘된다’고 믿었고, 정대현은 멕시코와 미국전에서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김 감독은 눈 밖에 날 만한 선수들에게도 끝까지 믿음을 보낸다. ‘재활공장 공장장’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한화 사령탑을 맡으며 신드롬을 일으킨 것.
나이가 들었고 부상으로 한물 갔다고 여겼던 퇴물 선수들을 불러모아 새 삶을 찾아주었다.

바로 문동환, 조성민, 김인철 등이 김 감독에 의해 재활에 성공한 이들이다.
미국전이 끝난 뒤 만나는 사람마다 김인식 감독의 놀라운 용병술을 얘기하고 있다. 그를 ‘야구의 신’이라고 칭할 정도다.

특히 매 경기 한 박자 빠른 투수 교체로 상대의 득점 찬스를 원천 봉쇄하고, 선수 개개인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임무부여로 그의 야구 철학에 경외의 눈길을 보내며 과연 그 실체가 뭔지를 궁금해하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김 감독은 야구 철학을 묻는 미국 기자들의 질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한 뒤 “약팀하고 붙을 때 좀 긴장하자고 말하고, 강팀과 붙을 때 맘 푹 놓고 하자고 주문한다”고 밝혔다. 결국 외부환경에 대한 치밀한 계산과 선수들에 대한 강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그는 믿음과 인화의 야구를 펼쳐왔다. 그가 타선을 짜고 선수를 기용하는 것은 그 역할에 가장 알맞은 선수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선수가 성공할 때까지 그 믿음을 중간에 결코 거둬들이는 법이 없다.

91년 쌍방울 감독시절 4월 내내 1할대 타율에 허덕이던 왼손 거포 김기태를 끝까지 믿고 4번 타자로 기용, 결국 국내 왼손 최고 거포로 키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현역시절 촉망받는 투수였던 김 감독은 1967년 도쿄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이때 어깨를 다치면서 투수로서의 생명이 끝나게 됐고 이 사건이 그의 지도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당시의 아쉬움 때문인지 선수들의 부상에 특히 많은 신경을 쓰는 지도자로 정평이 나 있다.

이처럼 선수를 위하고 ‘인화’를 강조하는 김 감독의 스타일은 이번 대회에서도 다수의 빅리거가 포함된 개성 강한 선수들을 하나로 뭉치게 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김 감독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나다. 미국으로 건너간 뒤에는 사인을 요구하는 한 팬에게 한자로 자기 이름을 써줄 정도로 여유가 있다.

이는 인화력으로 연결되고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정현찬 기자 wildchan73@iminju.net


- 김인식 효과에 한화도 함박웃음

한화가 ‘김인식 효과"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한화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대표팀이 미국과 일본을 제압하는 쾌거를 이루자 팬들과 언론의 관심이 소속팀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힘들이지 않고 구단 마케팅 효과를 보고 있는 것.
한화구단은 지난 14일 미국전이 끝나고 그룹 홍보실에서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김 감독이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있는 현장사진을 구해달라는 부탁이다. 용도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지만 그룹 마케팅 자료로 쓰겠다는 의도다.
언론에서도 연락이 빗발치고 있다. 김 감독이 주가를 올리자 몇몇 방송사에서 식구들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것. 그러나 가족들은 대회중임을 이유로 정중히 사양했다.
팬들도 기쁘기는 마찬가지다. 구단 홈페이지에 김 감독을 응원하는 메시지가 줄을 이었다. 구단측은 이를 옮겨 적어 대표팀 숙소로 보낼 예정이다.
마침 미국전 당일 직원 교육이 있어 함께 경기 중계를 지켜봤다는 구단 직원들도 ‘김인식 띄우기’에 나섰다. ‘김 감독이 귀국하면 대전역에서부터 시청까지 카 퍼레이드를 하자’는 농담 섞인 제안도 그 중 하나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김 감독은 팀부터 챙겼다. 오성일 홍보팀 과장은 미국전 후 어렵게 김 감독과 통화했다.
그는 “‘감독님께서 일 내셨네요’라고 축하드리자 ‘허허 웃기만 하시더라. 그러면서 ‘대전구장에 인조잔디는 잘 깔렸냐. 연습경기는 잘 치렀냐’며 안부부터 물었다”고 전했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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