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감시’에서 ‘격리수용’까지... 삼성의 잔인한 ‘노동탄압 시나리오’

신문게재일자: 2005. 10. 10

재계 총수 가운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혀오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X파일 사태로 불거진 불법정치자금 제공 및 기아차 인수 로비 의혹과 함께 삼성의 편법 경영승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에버랜드 변칙증여 사건’ 등으로 이 회장의 이미지에 크게 흠집이 났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단체와 정계 일각에서는 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와 사법처리 요구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X파일 사태 등 삼성의 불법 및 편법 행위가 이 회장 일가의 비윤리적인 경영과 소유지배구조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이 일면서, ‘반삼성’ 분위기가 ‘반이건희’ 기류로 옮겨가고 있다. 본지에서는 삼성 회장으로 등극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이건희 회장’에 대해 4회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집중 해부한다.

“삼성은 매년 직원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들의 근본적인 욕구를 막아오면서 ‘노동탄압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다.”
삼성 계열인 호텔신라의 노조설립을 추진했던 한 관계자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가 설립된다고 해서 삼성이 노사관리에 있어 절대 불리할 것이 없는 상황인데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이건희 회장의 1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삼성그룹이 어떻게 무노조 경영을 고수할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계열사는 물론 협력 및 하청업체들의 노조 설립까지 막아온 체계적이고 조직화된
그들만의 ‘노무관리지침서’에서 찾을 수 있다.
삼성은 지난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노조설립의 원천봉쇄와 원활한 구조조정을 위한 ‘노무관리지침서’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지침서는 20여년 동안 수정·보안을 반복하며 조직화되고 체계화돼 막강한 ‘노동탄압지침서’로 둔갑,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고수할 수 있는 튼튼한(?) 뿌리로 자리를 잡았다.
이 노무관리지침이 수십 년에 걸쳐 수정·보안되는 동안 그룹의 구조조정본부와 계열사의 인사팀에는 각각 별도의 노사관리조직이 만들어졌고, 이 조직은 노조설립을 방해하거나 어용노조를 만드는 등 삼성의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는 핵심역할을 하고 있다.

▲ 삼성의 노무관리 법전 ‘345수호전략’

삼성이 이 같은 노무관리지침서를 극비로 작성하기 시작한 것은 이건희 회장이 삼성그룹 총수로 등극한 시기인 지난 87년부터다.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현 구조본)은 삼성경제연구소와 노무관리 전문가를 동원해 ‘345수호전략’을 만들고, 이를 근간으로 그동안 88년 ‘노사관리지침’, 89년 ‘비상노사관리지침’, 98년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 방안’ 등을 만들었다.
‘345수호전략’이란 노조설립이 가장 활발한 3, 4, 5월을 주의해 노조결성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졌으며, 그동안 수차례 수정·보안을 거쳐 현재까지 삼성의 ‘노무관리 법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삼성의 노무관리지침서들은 노조결성을 저지하기 위한 ‘감시’와 ‘공무원 준 삼성화’로 압축된다.
노조설립과 관련된 노동자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에서부터 관련 관공서 담당자들과 유착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법정 구속돼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은 수감되기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삼성의 ‘345수호전략’과 이것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노무관리지침서들은 현행법상 복수노조금지조항을 철저히 활용해 어용노조를 만들거나 시청 및 군청, 경찰서 등에 삼성 인사팀 관계자를 배치해 공무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 노조관련 정보를 사전에 입수, 노조설립을 원천봉쇄한다는 전략 등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공개한 지난 88년과 89년에 만들어진 삼성의 ‘노사관리지침서’에는 삼성은 문제가 되는 사원을 등급화하고 이들이 누구를 만나는지, 어디를 자주 가는지 등을 파악하는 한편 사적인 시간을 갖지 못하도록 사우회를 주축으로 체육대회 및 동호회 활동을 권장하는 등 문제 직원들에 대해 ‘미행과 감시’를 통해 관리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삼성은 ‘345수호전략’을 근간으로 80대에 두차례 노무관리지침서를 만들고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노조설립 및 구조조정과 관련, 삼성 계열사들의 상황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의 노사관리지침서들을 만들었다. 이 중 일부는 삼성 해고자와 퇴직자 등에 의해 유출되기도 했다.

▲ 삼성SDI에서 유출된 극비문서

지난 98년에 만들어진 삼성의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 방안’에서는 삼성의 노무관리 실태와 노조말살 전략을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우선 ‘극비(極秘) 절대 복사 유출 금지’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 문서는 삼성SDI 해고자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구조조정 당시 삼성의 노동 탄압 실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인력 구조조정에 따라 노동자들의 반발을 대비해 시나리오를 만들고 이에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노조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저지와 사후 처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총 22장인 이 문건은 먼저 구조조정 배경과 추진방향, 진행계획, 조직 및 예산, 문제점 및 대응방안 등에 대해 10장 분량으로 서술하고 문건의 절반 이상은 노조설립과 관련된 비상대책과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 등이 첨부돼 있다.
이 문건의 노사관리 비상 대책 부분을 보면 ‘외부 불순세력과의 연계를 통한 ○○설립 기도 가능성’을 구조조정에 따른 비상상황을 설정하고, 비상상황실을 운영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는 노조를 말하는 것으로 노조설립이 최고의 비상상황임을 의미한다.
비상상황실은 사업장의 공장장을 실장으로 해 상황반, 대외협력반, 사업장대응반, 교육T/F, 언론대책반, 대외정보반 등으로 구성된다.
대외협력반은 시청, 노동부, 경찰 등을 담당하고, 대외정보반을 가동해 노동단체와 시민단체 등에 대한 정보도 확인하도록 하고 있다.
삼성의 수원사업장은 ‘지대위-본사’, ‘서울본사-구미사업자’ 등과 비상연락을 취하며 노동자들의 반발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도 한다.
또한 24시간 당직부장 체제를 가동해 ‘지대위-본사-서울본사-구미사업장’을 연계해 비상상황을 보고하고 즉각 대응체계를 구축하고독 하고 있다.
특히 이 극비문서에는 삼성 사업장 관할 노동청, 시청, 검찰청, 경찰서 등 ‘관공서 업무담당자 내사람화’라는 전략을 통해 노조설립이나 노동자 집단 반발에 미리 대비한다는 지침까지 포함돼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극비문서에서 삼성은 노동부 근로 감독관, 직업안정과 등 ‘기존 라인을 강화하라’는 지시와 함께 시청, 검찰청, 경찰서, 관할 파출소 등 관할 관공서와 당시 기무사, 안기부 등 정보기관, 노동계, 언론계 등에 대해 내부 담당자를 정하고 이들이 관련 관공서 담당자를 ‘내사람’으로 포섭하라는 지침까지 만들었다.
또한 ‘모임 및 단체 일일 활동 감시 강화’를 위해 매일 3인 이상 모임을 체크하고 퇴직인력까지 특별관리를 실시, 사내 결연자를 통해 퇴직인력의 최근 동향을 수시로 파악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제2 노사조직인 ‘번개팀’을 가동, 3분 대기조를 편성하고 사내 분규나 협력업체의 태업시 이들을 투입해 문제 상황을 조기 진압한다는 전략도 있다.
번개팀은 노무관리T/F팀 중 A급 인력 10인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시나리오별 행동요령을 숙지, 도상훈련까지 받는다.
이와 함께 노무관리 관련 간부들에 대해서는 방어조, 대응조, 순찰조, 격리면담조 등으로 나눠 상황별로 업무를 부여하고 월 1회 비상훈련까지 실시하도록 지침을 정했다.

▲ 사내조직 ‘한마음협의회’ 통한 노무관리

이 문서의 마지막에는 4장 분량의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를 첨부, 실제 노조 설립 막기 위한 사전 전략을 별도로 구성하고 있다.
우선 직장협의회인 ‘한마음협의회’를 통해 내부직원들이 직접 노조설립 관계자들을 감시하고 회유하도록 하고, 비상대책위에 정보보고를 한다.
삼성은 이 협의회 대표에 대해 직원들에 대한 사후 보장을 해줄 수 있도록 권한을 강화해 직원들에 대한 회유 작업에 나서도록 하고 있다.
또 문제의 직원에 대한 1대1 관리를 위해 해당 부서장이나 노사담당자들의 친분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한마음협의회는 노조설립 등에 대한 동향을 파악해 관련자에 대한 ‘그림자 감시’를 통해 이후 격리하거나 파견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언론의 보도를 막기 위해 홍보실과 비상상황실 직원이 ‘지역 및 중앙언론 차단 작전’을 쓰라는 지시도 나와 있다.
노조설립을 위해 구청에 서류를 접수할 것을 대비, 접수자 및 관련인물 해고 방안 강구, 사업장 순찰 강화, 지역 및 중앙언론 차단 작전 등 언론대책 준비 등 세부 시나리오까지 정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사후 대책으로는 접수자 신병을 확보해 ‘격리면담조’가 대기하고 있는 정해진 장소로 격리시킨다.
이 문건에 대해 삼성SDI 관계자는 “당시 직원이 개인적으로 쓴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naver.com






(박스)
제목: 삼성 무노조 경영, 해외에서도 실력 발휘?
부제: 노조탈퇴 강요하며 ‘폭언·협박·강제해고’
삼성 현지법인 관리자 “삼성에서 노조는 안된다”
사진: 현지 항의공문

삼성이 동남아에서도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기 위해 노조설립을 방해하는 등 노동자 탄압을 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최근 ‘동남아 진출 한국기업 노동권탄압 실태조사 보고 및 대응전략 토론회’를 열고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태국 방콕에서 실시한 현지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삼성전자는 지난 99년 6월 14일 노조설립 신고서가 제출되자 가입된 노동자들을 상대로 노조탈퇴 서명을 받았으며, 노조설립은 끝내 무산됐다.
말레이시아 전기산업노조의 한 관계자는 “노조설립을 하자마자 삼성 현지법인 관리자들은 ‘삼성에서 노조는 있을 수 없다’며 탈퇴서명을 강요했고, 언어폭력, 협박, 해고위협을 했다.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탈퇴서에 서명했으며 이후 동력이 소진되었다”고 전했다.
당시 전기산업노조와 국제금속노련은 사측에 노조탄압 중단, 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항의 서안을 보낸 바 있으나 끝내 노조결성은 무산됐고, 현재까지 노동조합을 위한 활동은 전무한 상태.
또한 태국의 삼성 일렉트로-메카닉스에서는 지난 5월 부당전출, 해고, 노조설립 반대로 인한 노사 갈등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은 본청 노동자들을 하청업체로 전출시키며 경력을 인정하지 않고 신규사원으로 재계약을 했으며, 수당 등을 낮춰서 제시하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이에 현지 노동자들은 항의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은 7명을 노동환경 저해, 사측에 손실 입힘, 노동자 선동 등을 이유로 해고했다.
또한 노동조합 설립에 동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설립에 반대하는 서명을 강요하기도 했다.
태국의 노조 활동가는 “한국 관리자 N씨는 ‘삼성에서 노조는 안 된다. 이것이 삼성의 방침’이라며 노조 설립을 차단했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했다”고 말했다.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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