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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식의 생활경제] ‘라곰(lagom)’에서 찾은 해결책
  • [칼럼니스트 윤준식]
  • 승인 2017.05.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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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박하게 사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다운쉬프트 트렌드를 실천하는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 그리 두꺼운 책은 아니지만 ‘소박함’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방대한 사고의 글들이 담겨있어 함께 나눌 이야기거리들을 많이 제공한다. 무엇보다 다운쉬프트의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굉장히 많다. 오늘은 이 책 111쪽에서 언급하고 있는 ‘라곰(lagom)’이 주제다.

약탈자 바이킹들에게도 분배의 정의가 있었다

필자도 이 책을 통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던지라 곰의 일종인줄 착각했었다. ‘라곰(lagom)’이라는 말 자체가 스웨덴어다보니 어감부터 생소했다. ‘무리’라는 의미의 ‘lag’이란 단어와 ‘둘레에’라는 뜻의 ‘om’이 합성된 단어로 ‘함께 한다’, ‘사회적 결속력’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원래 이 단어는 바이킹 시대까지 거슬러 간다고 한다. 바이킹들이 모였을 때의 풍습과 관련이 있다. 맥주 한 사발을 좌중에 돌릴 때, 각자 적당한 양만 마시고 넘겨야 모든 사람에게 술이 돌아간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가 아닐까?
이런 면에서 ‘라곰’은 일본의 미학인 ‘와비사비’와도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간소함의 미학이라는 점에서 ‘와비사비’와 비슷할 수 있지만, ‘와비사비’는 미학적으로 간소한 모양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라곰’과는 다르다.

일본식 정원, 초밥요리, 분재 예술 등은 실제로는 간소함의 미학을 추구하기 위한 낭비를 할 때도 있다. ‘와비사비’의 미학은 문구류와 팬시상품, 캐릭터상품 등에서 일본의 제품을 세계 최정상으로 올려놓았지만, 한편으로는 “귀여운 쓰레기”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용성은 떨어지는 것들이 많다. 물론 목적은 문구나 사무용품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문구의 형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저 귀엽고 예쁘고 갖고 싶은 마음으로 수집하는 물품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 이것이 간소함의 미학인 ‘와비사비’다.

2017년형 트렌드로 부상 중인 ‘라곰(lagom)’

그러나 ‘라곰’은 사람들이 다양한 필요와 욕구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무엇이든 ‘꼭 맞춤한 것’을 추구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두 부부가 사는 집에 수건은 몇 장이 필요할까? 대개 사람 수와 세탁 빈도를 고려하고 예비율을 생각한다. 그렇게 따지면 두 부부가 필요한 수건은 10장 안팎일 것이다. 그러나 ‘라곰’은 단 두세 장의 수건만 필요로 한다. 하루 한 장의 수건을 사용할 것이기 때문에 한 장 빨아 널고 다음 날 걷어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번거로운 사고방식이 요즘 뜨는 트렌드가 되고 있다고 한다.

구글에서 ‘라곰(lagom)’이라는 말을 검색하면 잡지 기사 하나가 눈에 뜨인다. ‘보그 코리아’ 1월호에 실린 “2017년의 트렌드, 라곰을 아십니까?”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우리 시대 행복을 의미하는 단어로 ‘휘게’와 ‘라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보그 코리아 1월호에 따르면 2016년 옥스퍼드 사전에 등록된 신조어 중에 안락함과 편안함을 뜻하는 덴마크어 ‘휘게(Hygge)’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휘게’에 이어 2017년 트렌드로 ‘라곰’을 소개하고 있다. ‘휘게’가 따뜻한 모닥불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때의 충만한 느낌이며 ‘라곰’은 절제의 정신이라며 소박한 삶이지만 행복함을 전제하는 일종의 무브먼트가 시작되고 있다고 말한다.

‘라곰’의 정신은 기술과 산업에도 반영된다

항상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패션업계다보니 ‘라곰’ 트렌드가 시작된 것이 맞는지 확 와닿지는 않는다. 그러나 스웨덴-스칸디나비아 풍의 인테리어와 스칸디나비아식 생활을 동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라곰’ 트렌드가 시작되는 것도 임박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한편, ‘라곰’은 패션이나 생활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창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자칫 소비가 없는 시대기 시작되면 문닫는 업종이 늘어나는 것은 아닐까? 스웨덴이 적정기술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에 주목해보면 어떨까?

실제로 지난 2013년 11월 서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개최한 ‘이노베이티브 스웨덴’ 전시회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흔히 한국의 전시회에 가서 보고 느끼는 그런 임팩트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세계 최대, 세계 최초, 최신, 초고속’ 이런 수식어가 붙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당시 그 전시를 참관한 필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깊은 인상과 감동을 받았다.

생활트렌드가 산업트렌드를 선도할 가능성

전시장에서는 다목적, 다용도로 활용될 적정기술을 소개하고 있었다. 기술기업이면 누구나 시도할 수 있고 개발 완성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지만, 스웨덴이 갖고 있었던 이니셔티브는 모든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혁신성’이었던 것이다. 사소한 소모품이지만 해외 저개발국가의 원조로 사용되어 인권과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 제품, 초기 치매 노인을 도울 수 있는 내비게이션 게임 프로그램 등은 설명을 듣고 직접 체험해볼수록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는 그런 것들이었다.

그때는 왜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그런 것들이 인구 1천만도 안 되는 스웨덴에서 가능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바꿔 말하면 그들만의 삶의 철학이자 미학인 ‘라곰’이 기술과 산업에도 반영되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필자도 최근 들어서다.
그렇다면 이를 비즈니스와 창업에 응용하면 어떤 지향점을 가리킬까? 우선 합리적 소비가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대형마트나 할인점의 ‘1+1 행사’들은 소비자의 눈 밖에 나게 될 확률이 높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의 소비가 각광받을 것이다. 그렇다면 실 소비자의 소모량을 분석해 소비빈도와 소비패턴에 맞춘 절약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또한 직접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필요한 것을 자급자족하는 취지의 DIY가 다시 유행할 수 있을 것이다. DIY를 배울 수 있거나 함께할 수 있는 공방, 장비대여, DIY 상품들이 소상공인형 아이템으로 등장할 수도 있겠다. 어찌보면 텃밭가꾸기, 도시농업 등도 동반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여하튼 소비가 미덕인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칼럼니스트 윤준식]  venturem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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