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번 지방도를 따라가며 만난 풍경

천년 고찰·수목원·박물관 등 드라이브 코스마다 볼거리 가득

[민주신문=이학성 기자] 경북 봉화 춘양에서 강원 영월까지 이어지는 88번 지방도를 따라 봄 드라이브를 즐겨보자.만산고택에서 청령포를 지나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까지 이어진다. 조선양반 가옥의 원형을 보여주는 만산고택과 천년 고찰 각화사는 고즈넉한 봄 정취가 가득한 곳.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싱그러운 봄기운으로 생동감이 넘친다.
봉화를 빠져나온 길은 영월로 접어든다. 길은 산모롱이를 따라 굽이돌며 이리저리 휘고, 때로는 강과 만나 찬란한 봄 풍경을 빚어낸다. 영월에서 첫 여정은 아프리카와 관련한 유물을 모아놓은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아이도 좋아하고 어른도 즐거운 곳이다. 김병연의 흔적이 있는 난고 김삿갓 유적지와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히는 단종이 묻힌 장릉을 지나면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과 선돌에 닿는다. 한반도를 빼닮은 모습과 절벽이 쪼개져 두 개로 나뉜 풍경 앞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에 절로 감탄이 인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전시실을 돌아보는 관람객
각화사 대웅전
조선후기 양반고택의 모습을 간직한 만산고택

봄이다. 길에는 아지랑이가 피고, 옷깃에 스미는 바람이 한결 따스하다. 꽃이 울긋불긋 들녘을 수놓고 산과 골짜기가 연초록으로 물드는 지금이 드라이브 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닐까. 경북 봉화로 가서 춘양부터 강원 영월까지 이어지는 88번 지방도를 따라 봄 드라이브를 즐겨보자. 만산고택에서 각화사와 청령포를 지나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에 이르는 코스다. 천년 고찰도 있고, 수목원도 있고, 박물관도 있다. 아이도 좋아하고 어른도 즐겁다. 길은 산모롱이를 따라 굽이돌며 이리저리 휘고, 때로는 강과 만나 찬란한 봄 풍경을 빚어낸다.

옛 고택의 향취 물씬

드라이브의 첫 코스는 춘양면에 자리한 봉화 만산고택이다. 조선 후기 문신인 만산 강용 선생이 1878년(고종 15)에 지었다. 대한제국의 통정대부와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만산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국운의 회복을 기원하며 지냈다.

만산고택은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의 가옥 구조를 보여준다. 11칸이나 되는 행랑채 중앙에 솟을대문이 위엄 있다. 11칸 행랑채는 만산고택의 부를 상징한다. 대문으로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펼쳐진다. 마당 건너편에 안채와 사랑채가 ‘ㅁ 자형’으로 이어지고, 왼편에는 2칸짜리 소박한 서실이 있다. 오른편에는 따로 담을 두르고 문을 낸 별당 칠류헌이 있다.

얼핏 보기에도 정갈한 사랑채 처마 밑에는 ‘만산(晩山)’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만산과 친분이 돈독했다는 대원군이 직접 쓴 글씨다. 사랑채 옆에 자리한 서실은 후손의 공부방으로 지었다. 추녀마루 네 곳이 동마루에 몰려 네 면이 지붕면을 이루는 우진각지붕이 특이하다. 지붕 밑에는 ‘한묵청연(翰墨淸緣)’이라는 편액이 걸렸다. ‘글로 맺은 좋은 인연’이라는 뜻인데,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씨라니 놀랍다.

각화사 대웅전

만산고택에서 10여 분 거리에 각화사가 있다. 고운사의 말사로 686년(신문왕 6)에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기운이 유난히 강해서 발심한 납승이 안거에 들기 위해 많이 찾는 절로 알려졌다. 각화사는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할 무렵이 좋다. 울창한 금강송 주위로 안개가 스멀스멀 밀려드는 모습이 선계에 들어온 듯하다. 절 앞마당까지 차가 올라가기 때문에 부담 없이 찾아볼 만하다.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 전시실
영월의 별미 묵밥

최근 임시 개장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도 들러보자. 미래 산림자원을 보존할 종자 저장고와 호랑이 숲, 백두대간 자생식물원 등 26개 주제로 전시 공간이 조성되었다. 규모도 어마어마해서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달하는 5179ha다. 수목원 홈페이지에서 예약 후 방문해야 한다.

수목원을 지나 길을 계속 따르면 영월로 접어든다. 영월은 곳곳에 다양한 박물관이 있어 아이를 동반한 여행자라면 박물관을 중심으로 일정을 짜도 좋다. 영월에 자리한 박물관 가운데 권하고 싶은 곳이 영월아프리카미술박물관이다. 조각과 그림, 공예품 등을 통해 아프리카의 토착 문화와 전통 예술을 엿보는 공간이다. 아프리카 사람의 일상생활을 보여주는 목조각, 종교의식에 사용하는 가면, 인물상, 상아 작품, 생활용품, 장신구 등 아프리카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채로운 작품이 눈길을 끈다.

길은 빙빙 돌아 김삿갓면에 닿는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은 1807년(순조 7) 경기도 양주에서 태어났다. 글 읽기와 시 쓰기에 남다른 재능을 보인 그는 20세 되던 해, 과거에서 홍경래의 난 때 항복한 김익순의 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써 장원을 차지한다. 하지만 뒤늦게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임을 알고, 죄인임을 자처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한다.

깎아지른 듯한 내리계곡이 눈에 띄는 김삿갓면 와석리에는 난고 김삿갓 유적지가 있다. 묘와 주거지, 노래비, 시비 등에서 풍자와 해학, 슬픔과 웃음으로 가득한 김삿갓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다. 김삿갓 유적지 옆에 자리한 조선민화박물관도 추천한다. 서민의 삶이 녹아든 옛 그림을 전시하고, 민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영월에 뼈를 묻은 비운의 인물이 있다. 조선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임금으로 꼽히는 단종이다. 아버지 문종이 임금이 된 지 2년 만에 승하하자, 단종은 12세에 보위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숙부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된다.
영월 청령포는 단종이 귀양살이한 곳이다. 앞에는 강줄기가 가로막고, 뒤에는 벼랑이 솟은 천혜의 감옥이다. 유일하게 육지와 이어진 곳은 육육봉이라는 암벽이 솟아, 배가 아니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임금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까지 쫓겨 온 단종은 청령포에서 사약을 받고, 시신은 강물에 버려졌다. 어느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세조의 서슬 퍼런 후한이 두려워서일까. 아무도 시신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엄흥도라는 관리가 몰래 시신을 수습해 지금의 장릉 자리에 묻었다.

선암마을을 찾은 관광객들
선돌

아름다운 강변마을

드라이브의 마지막 목적지는 선암마을의 한반도 지형과 선돌이다. 영월 한반도 지형은 서강의 침식과 퇴적이 되풀이되면서 만들어졌는데, 한반도 동쪽의 급경사와 서쪽의 완만함, 백두대간을 연상케 하는 빽빽한 소나무, 해남 땅끝마을과 포항 호미곶 등이 절묘하게 배치된 형상이 하늘에서 한반도를 내려다보듯 꼭 닮았다.

선암마을에서 영월 방향으로 조금 더 가 소나기재에 차를 대면 선돌이다. 절벽이 쪼개져 두 개로 나뉘었는데, 벼락을 맞은 것 같기도 하다. 쪼개진 절벽과 크게 휘돌아 흘러가는 강, 강가에 일군 밭이 평화로운 풍경을 만든다. 선돌이란 이름은 돌 모양이 신선처럼 보인 데서 유래했다는데, 푸른 강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진 모습이 신비로워 신선암(神仙岩)으로 불리기도 한다. 선돌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한 가지 소원이 꼭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 영월부사를 지낸 홍이간과 문장가이자 풍류가 오희상, 홍직필이 1820년 구름에 싸인 선돌의 경관에 반해 시를 읊으며 선돌 암벽에 ‘운장벽(雲莊壁)’이라는 글자를 새기고 붉은색을 칠한 흔적이 있다.
자료출처: 한국관광공사(www.visitkore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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