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전편 이어서>

그때 문득 검은색 안경을 벗고 푸르스름한 하늘빛 안경을 걸친 교관이 나타나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내 말을 지금부터 명심해서 듣기 바란다. 어디에든 고난 없는 열매는 없다. 여러분은 정규군이 아니라, 곧 특수부대 요원으로 활약하기 위해 지금 뜨거운 용광로 속을 통과하고 있는 훈련병들이다.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만큼 중대한 사다리이자 절벽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라가면 영웅이 될 것이요,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해 추락한다면 짓뭉개진 지렁이 꼴이 될 뿐이다. 여러분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인간이란 존재는 미완성품이기 때문에 노력하기에 따라 신의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악마 새끼가 될 수도 있음을 명념해야 한다!”

교관은 잠시 연설을 멈추곤 대원들을 훑어보았다. 청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딘지 사이비 종교 교주가 지껄이던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교관은 헛기침으로 목청을 다듬은 뒤 연설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우리 국가 방위의 최첨단 특수 요원들이 될 신분이다. 누구든 고난을 겪지 않으면 결코 영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현재 어려움이 많더라도 불평불만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되리라. 미래의 꿈을 바라보고 전진하라! 흐흠, 앞으로 여러분이 작전을 수행케 되면 결사적인 자세로 나서야 하며, 임무수행 중 아니할 말로 혹시 죽는 경우도 전혀 배제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꽃은 아리따우며, 한 그루 나뭇가지에 핀 매화꽃은 형제자매와 같으니…그 중 한 송이가 꽃샘바람에 떨어진들 어찌 더 고귀하고 어여쁘지 않겠는가! 아아, 매화 꽃송이처럼 아름다운 여러분….”

“우린 꽃이 되려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대책이나 좀 마련해 주시죠.” 맨 앞에 서 있던 대원이 말했다.

“꽃은 비유일 뿐인데 쯧…… 어쨌든 지금 여러분의 생사는 우리나라의 생사와 같다. 여러분의 충렬과 붉은 피의 희생이 있기에 우리 국가와 또한 부모 형제자매가 편안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다. 의무적으로 군문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일반병과 달리 여러분은 특수부대원으로서의 자부심만큼은 지녀 주길 바란다. 음, 우리 한반도에서는 남한과 북한이 동족상잔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이다가 지금은 정전이 아닌 휴전 상태에 있다. 전쟁이 끝난 게 아니라 잠시 쉬고 있는 중인 셈이다. 그런데 북괴군은 신사협정을 어기고 여기저기서 도발을 감행할 뿐만 아니라 간첩을 남파하여 전국에 암세포를 뿌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라고 가만히 서서 당할 수도 없고, 공개적으로 정규군을 투입해 대적하려니 유엔의 제재를 받기 때문에…… 바로 이 시점에 여러분의 영웅적인 활약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만일 북괴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여러분이 이처럼 생고생하며 고된 훈련을 받지 않아도 좋을 텐데…… 하지만 북괴의 도발은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만일 허점을 보인다면 또 동존상잔이 벌어진다. 나는 여러분을 민족을 구원할 투사로 믿고….”

“꼭 짐승처럼 뚜드려 팬다고 사람이 강해지고 복종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 준다면 우리도 대의를 위해 고생을 씹어 삼키겠습니다.”

“음, 여러분의 뜻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앞으로 여러분이 대한민국의 정예 투사 후보로서 성실히 훈련 과정에 임해 준다면 제1차 교육기간이 끝나는 가을쯤 동해 시내로 나가 기념 회식과 특박을 허락하겠다. 또한 성과가 아주 좋으면 특별 휴가도 고려해 보겠다. 알았나?”

“예!” 그리하여 험악하던 사태는 겨우 가라앉았다. 그동안 부상자는 숨이 끊어져 시체가 되었다.

빵빠레

다음날부터 다시 지옥훈련이 시작되었다. 원래 사람의 마음이란 최악으로 치달았다가도 상황을 개선키로 약속하게 되면 누그러들어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게 된다. 우직한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쳐 약속을 지키려 애쓰는 것이다.

청소년 대원들이 바로 그러했다. 그들은 마치 젊은 독수리가 바위 절벽 위의 둥우리를 벗어나 창공으로 날아오르려 날갯짓 하듯 사나이로서의 의리를 지켜 한 명의 당당한 성인이 되려고 땡볕 아래서 이를 악문 채 극기를 해 나갔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저녁 6시에 훈련이 종료될 때까지 식사 시간만 빼고 산악을 기어오르거나 일격 필살법을 익히거나 은신술을 수련했다. 줄타기는 한 줄 타기, 두 줄 타기, 세 줄 타기가 있었다. 어느 경우든 까딱 방심했다간 까마득한 바위 계곡으로 떨어져 즉사했다. 줄에 매달린 아이들은 이승과 저승을 수십 번씩 넘나들었다. 공중 낙하는 별다른 장비도 없이 절벽에서 뛰어 내리기를 높이만 바꿔가며 무수히 반복했는데, 그 과정에 잘못 낙하해 발목이 부러지거나 심지어 뇌진탕으로 죽는 경우마저 있었다.

여름이 끝나 갈 무렵엔 동해안의 작은 무인도로 들어가 바닷가 침투 훈련을 받았다. 낭만은 없었다. 설령 있다 하더라도 여름 바다를 향해 환하게 발산되는 게 아니라 속 깊이 스며 침묵하는 산호珊瑚 같은 것이었다.

입에 자기 이름이 적힌 하얀 깃발을 문 채 헤엄쳐 가 1백 미터 밖의 부표에 꽂아둔 후 붉은 기를 찾아 물고 되돌아오는 수영 훈련은 가파른 바위 절벽을 타고 오르는 훈련과는 또 다른 까마득한 생사간의 체험이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겨우 10명뿐이었는데, 선착순으로 5명은 모래밭에 앉아 휴식을 취하도록 했고 뒤처진 5명은 벌로 여름식 빵빠레를 당했다.

원래 빵빠레란 추운 겨울날 알몸으로 깊은 계곡의 얼음을 깨고 들어가 얼굴만 내놓은 채 쭈그려 있는 형벌이었다. 온몸에 큰 바늘로 찌르는 듯한 극심한 통증이 몰려들어 차츰 감각이 마비돼 버려서 추위조차 못 느끼는 순간 “일어서라!” 하는 명령이 내린다. 물 밖으로 알몸뚱이를 내놓는 순간 오히려 물속이 더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전신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을 체감하게 된다. 이빨이 덜덜 떨리면서 괴상한 소리를 저도 모르게 흘려내는 자도 있다. 차가운 겨울바람은 맨살을 칼로 난도질하는 듯싶다. 차라리 물속이 나을 듯해 주저앉으면 “개새끼!” 라는 욕설과 함께 검은 모자가 휘두르는 몽둥이질에 박이 터져 핏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이승과 저승은 한 순간에 엇갈린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훈련생들은 죽음을 잊고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생과 사의 경계에서 이뤄지는 훈련을 통해 단시간에 최고의 인간 병기를 만드는 게 검은 모자들의 목적인지도 몰랐다.

만일 개미 한 마리를 빵빠레 아이스크림 속에 집어넣어 놓으면 얼음 속에서 ‘빵빠레!’하고 침묵 속의 비명을 내지를지…….

여름 빵빠레는 그걸 응용하되 결코 덜하지 않은 형벌이었다. 죄인으로 지목된 대원들은 바닷물 속에 잠수케 한 후 3분을 견뎌내면 건져서 살려 주었다. 그 전에 해면 위로 올라오는 대가리는 기다리고 있던 조교들이 무자비하게 내려치는 몽둥이에 맞아 벌건 핏물을 뿌리며 죽어가기도 했다. 살려면 짠 바닷물 속으로 숨어야 했지만 이미 숨이 가쁘도록 차서 물을 잔뜩 들이켠 상태라 더 이상 견디기는 어려웠다.

마치 작살을 맞은 물고기나 개구리처럼 사지를 뒤채면 버둥거리는 동료들을 보면서 청운은 선감도 앞바다에 누워 거센 파도에 휩쓸려 가던 피에로 형을 생각했다. 그리고 잇달아 박꽃 누나의 핼쑥한 얼굴이 눈앞을 맴돌며 애처로운 눈길로 오라는 듯 손짓하는 것이었다.

다음번 수영 때 청운은 붉은 기가 꽂힌 반환점까지 선두를 지키며 헤엄쳐 갔으나 되돌아오지 않고 망망대해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해변 쪽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났지만 그냥 헤엄을 쳤다. 귀환을 독촉하는 야단스런 메가폰 소리를 듣고서야 청운은 제정신이 든 듯 되돌아갔다.

“개새끼! 죽으려고 환장했어? 넌 이미 국가의 소유이기 때문에 죽을 때도 네 맘대로 죽을 순 없단 말이야!” “쌍놈이 빠삐용처럼 탈출하려 했는지도 모르지. 흠, 그럼 빠삐용이 어떤 건지 한번 당해 봐라!”

조교들이 발길질을 하며 악을 썼다. 그러더니 훈련병들에게 명령해 허연 파도가 밀려드는 바로 앞의 백사장에 깊은 구덩이를 파게 했다. 청운은 그 속에 들어가 목만 내놓은 채로 묻혔다.

원래 ‘빠삐용’은 하극상이나 탈영을 감행한 훈련병들에게 가해지는 형벌이었다. 연병장 한쪽에 파놓은 구덩이에다 죄인을 얼굴만 보이게 묻은 후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방치했다.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어 가며 참회하라는 뜻인지도 몰랐다. 사흘이 지나면 꺼내 주지만, 대부분 그 전에 미쳐서 고함을 지르거나 울부짖다가 탈진해 죽고 말았다.

청운은 구덩이 속에서 괴로움을 참으며 바다와 하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따가운 땡볕이 정수리 위에 내리쬐고, 거대한 짐승 같은 바다의 거친 숨결인 양 파도의 허연 포말이 밀려와 입술을 핥았다. 죽음의 키스라고나 할까. 그나마 대원들이 훈련을 마치고 1백 미터쯤 떨어진 숙영지로 가 버리자 공포보다 더한 고독감이 밀려들었다. 석양이 핏빛 같은 노을의 잔영을 떨구고 사라졌다. 어스름 속에서 청운은 몸부림을 쳐 보았으나 모래는 파낸 좁은 희망의 공간을 곧 채우며 차가운 절망만을 안겨 주었다.

밤이 되자 파도의 허연 이빨은 점점 거세게 목과 얼굴을 섬뜩한 혀로 핥고 이빨로 물어뜯었다. 선감도에서 ‘징벌의 십자가’에 매달렸던 기억이 났다. 밤새도록 바닷물 속에 갇혀 신음하던 생사 교차의 시간…….

하지만 그땐 혼자가 아니었다. 피에로 형과 함께 여린 숨결이나마 나누며 서글프고 누추한 인생을 추억할 수가 있었다. 이젠 아무런 도움도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고독의 무서움을 체험해야만 했다. 세상천지가 온통 암흑이었기에 차라리 청운은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아 버렸다.

‘인간이란 대체 무엇일까?’

청운은 생각에 잠겼다. 까마득한 시간을 이겨내 보기 위해서였다. 평소엔 하지 않던 개똥철학도 상황에 따라서는 저도 모르게 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나 인간들의 고상한 정신적인 면에 대해 사색을 해보려 하자 모래 속에 묻힌 몸이 차갑게 식어 버리는 듯했다. 그래서 별수없이 저속한 면에 관해서만 생각했다.

‘가능하면 남을 속여 이익을 얻으려 하지만 결국엔 자신의 행운까지도 거덜내는 족속.’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육욕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동물.’

‘같은 종족끼리 패를 갈라 싸우는, 개미보다 훨씬 잔인하게 동족을 살해하면서 낄낄 웃어대는 광인들…….’

하지만 그런 개똥철학이나마 더 이상 계속할 수가 없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파도 또한 더 거세어져 밀려왔다. 점점 다가온 파도의 포말은 턱을 넘어 입술에 차가운 키스를 하며 간질렀다. 부드럽고도 강인한 바닷물은 곧 이어 철썩거리며 밀려와 코를 들이쳤다.

소리쳐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기에 청운은 입을 꼭 다문 채 숨을 멈추곤 가만히 있었다. 그는 하늘이나 신이나 부처님에게도 살려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안간힘으로 버텨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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