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처음에 24명이었던 대원은 서너 달 사이에 죽거나 병신이 돼 퇴소하고 15명만 남아있었다.훈련 중 사고사가 가장 많았지만 검은 모자의 폭행으로 죽은 경우도 적지 않았고 자살자와 탈영병이 각각 한 명씩이었다. 조교들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대원을 설마 때려죽이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 하나가 그런 꼴로 연병장에 쓰러져 붉은 피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살아남은 대원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지며 한데 모이고 있었다. 죽음 자체가 무섭지 않다기보다 응어리진 울분이 제물에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전편 이어서>

상황에 익숙해질수록 다른 동물은 더 주위를 기울이는데 인간은 오히려 나태해지는 건 혹시 신께 선택받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기 때문일까? 그런데…낮의 강훈련에 지친 대원들에게 그런 시건방진 자부심이 과연 있기나 했을까? 모래 배낭과 각반을 찬 채 언제 끝날지 아슴한 이승과 저승 사이의 길을 걷다 보면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온다.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할 필요가 없는 자연의 세례를, 거부해야만 생존할 수 있는 특수 인형…하지만 새벽 두세 시쯤 되면 인간의 의지는 이미 자신의 의지가 아님을 알게 된다. 민족도 국가도 적도 나도 별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꿈결인 양 느끼게 되고, 결국엔 그걸 느낀다는 사실마저 별 무의미하다는 환각 속에서 절벽 아래로 낙화落花하게 되는 것이었다.

무정

봄이 지나고 어느덧 여름으로 접어들었다. 깊은 산중이라 그런지 계절의 변화가 유달리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무성한 나뭇잎을 비껴 순간순간 내리쬐는 햇살은 날이 갈수록 점점 마치 불화살처럼 따가워졌다. 특히 바람도 별로 없는 숲속을 행군하거나 완전히 노출돼 뜨겁게 달아오른 바위 절벽을 헐떡헐떡 기어 넘을 땐 지옥의 칼산에서 무망한 사투를 벌이는 듯해 못다 핀 푸른 청춘을 포기해 버리고 싶기도 했다.

‘인생이란 과연 살아갈 만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개구리가 태어나 몇 번 폴짝폴짝 뛰어다니다가 순식간에 뱀에게 잡아 먹히고 말듯 아무런 가치도 없지 않을까?’

청운은 무정한 염천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처음에 24명이었던 대원은 서너 달 사이에 죽거나 병신이 돼 퇴소하고 15명만 남아있었다. 훈련 중 사고사가 가장 많았지만 검은 모자의 폭행으로 죽은 경우도 적지 않았고 자살자와 탈영병이 각각 한 명씩이었다. 조교들도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대원을 설마 때려죽이려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에서 그런 섬뜩한 명령이 체계적으로 내려왔을 리도 없다.

그럼 왜? 그런 살인 행위가 대체 왜 공권력을 빌려 벌어졌을까? 검은 모자들은 자기 뜻이 아니라 국가의 명령에 의해 산골 황무지에 마지못해 와서 청춘을 허비한다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욕구불만이 변질돼 흉악한 폭행과 살해욕으로 폭발하는지 어찌 알겠는가. 또한 폐쇄된 지대에서 휘하에 3명 이상을 거느리게 되면 스스로 왕이라 망상케 되어 같은 인간을 한갓 벌레로 착각하게 되는지도 모를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는 쿠데타 이후 계속 정권을 잡은 군인들의 전성시대라 일반 사회에서든 군영에서든 상상키 힘든 비인간적인 참상이 벌어지곤 했다. 사람의 생명이 지푸라기보다 가볍게 취급되는 시절이었다. 특히 군사정권의 위대한 뜻을 거역하는 경우에는…….

그날의 일은 사실 별것 아닐 수도 있었다. 고된 훈련 후 점심으로 나온 보리가 반쯤 섞인 밥에, 단무지를 고추장에다 듬뿍 찍어 우적우적 씹던 알랑 들롱 녀석이 한마디 툭 내뱉었다. 해운대 바위 절벽 위에서 연인을 떠나보냈다던 그 슬픈 로맨스의 주인공이었다.

“씨팔, 차라리 바윗덩일 삶아 앞에 놓고 함께 공평하게 뜯어 먹지.” “말하면 뭣해. 그냥 조용히 한 끼 때워.”

“흐흣, 특수부대원을 요로코롬 먹일 만큼 우리나라가 가난한가 보군. 허지만…… 이런 산중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다면서, 어떤 놈은 무쪽이나 씹고 어떤 넘들은 고기 통조림 깡통을 딴다니 말이 돼?” “조용히 처먹어, 새꺄!”

조교 하나가 어느 틈에 다가와 나무라며 개호주의 뒤통수를 툭 쳤다. 평소엔 고분고분한 편이던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긴 불평은 하더라도 먹고 있었으니까…… 먹는 사람을 때리면 처음엔 울컥 설움이 일다가 분노로 변해 솟구친다는 사실을 청운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개호주 녀석은 식판을 들어 조교의 낯짝으로 내던졌다. 죽으나 사나 훈련받은 만큼 겨냥은 정확했다. 고추장이 코끝과 눈가에 잔뜩 묻은 조교의 얼굴은 마치 연극 무대에 선 피에로가 아니라 그의 조롱을 받는 마귀 같았다.

“개새끼! 네놈은 하극상이 즉결처분이란 걸 아직도 몰랐던가 보네, 응? 혹시 알고도 그런 거냐? 개새꺄, 무릎 꿇어!”

조교는 입귀를 일그러뜨리며 주절거렸다. 만약 알랑 들롱 녀석이 그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조교는 마음을 풀고 껄껄 웃으며 녀석의 뒤통수나 한 대 치고 말았을까? 모를 일이다. 대체로 한국 사람은 정이 많다곤 하지만, 이성적인 면에 허점이 있어서 그런지…대통령부터 말단 공무원까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자기 이익이나 감정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회의원이나 대법원장도 예외는 아니며, 오히려 더 얄미운 짓을 하는 세상이었다.)

그러니 알랑 들롱 녀석은 전후 사정으로 보아 가만 있다간 맞아 죽어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여는 순간 조교의 성난 주먹이 기다렸다는 듯 곧장 거칠게 강타했다. 벌건 코피를 뚝뚝 흘리며 반항하려는 기세를 보이자 조교는 훈련병의 머리를 붙잡곤 무릎뼈로 얼굴에 일격을 가했다. 단말마 같은 비명과 함께 알랑 들롱 녀석은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코와 입도 피투성이였지만 눈알 한쪽이 터졌는지 감싼 손가락 틈으로 불그죽죽한 액체가 흘러내렸다. 그는 이리저리 뒹굴며 계속 신음소리를 냈다.

“너무하네. 저러다가 사람 잡겠군.” “씨팔! 사람이 아니라 개새끼 꼴이잖아. 아니, 도대체 조국과 민족을 위한 특수요원이라더니 말짱 도루묵이군. 흐흣…….”

“물색조 개새끼들한테 속아서 여기까지 들어온 우리가 쪼다 병신이지 뭘. 세상에 사기 협잡꾼들이 많다지만 명색이 한 국가에서 그런 거짓말쟁이들을 내세워 순진한 애들을 속이다니…… 만일 내가 살아 나가서 그 사기꾼을 만나면 입주둥일 사시미 칼로 잘라서 개한테 던져 주고 혀를 뽑아내 씹어 먹을 테야!”

“아가리 닥쳐!” 조교는 울그락불그락해져 권총을 뽑아 들었다.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이어 모두들 우우 하고 야유를 보냈다. 난동이라도 일어날 기세였다. 그 순간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탕!” 땅바닥에 먼지가 일었다. 그와 동시에 다른 조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훈련병들을 둘러싸곤 총구를 들이댔다.

“죽고 싶은 놈은 당장 나서고, 살고 싶은 놈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라!” 아무도 명령에 따라 앉는 자는 없었고 오히려 엉거주춤 쭈구려 앉아 있던 자들마저 식판을 놓고 일어섰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명령이다! 다섯을 셀 때까지 복종치 않으면 즉결처분하겠다! 하낫, 둘, 셋, 넷….” 그 순간 땅바닥에 뒹굴어 있던 알랑 들롱 놈이 겨우 상체를 일으키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잠깐…이 일은 나 때문에 생긴 것이니…다른 동지들에게 결코 피해를 주지 마시오. 내 몸은 죽어 조국 산천의 한줌 흙이 되겠지만…죽음이 두려워 아까 내가 했던 말을 순간적인 실수라곤 하지 않겠소. 조교 당신들을 욕하고 싶진 않아. 흐흣, 당신네들도 우리와 똑같은 피해자가 아닐까 싶으니까. 윗대가리 분들이 알갱이는 다 쪽쪽 발라먹고 쭉쟁이만 우리에게 내려주니까 맨날 거렁뱅이보다 불쌍한 신세지.”

그 순간 조교의 군홧발이 녀석의 턱을 세게 걷어찼다. 알랑 들롱을 좋아하던 녀석은 영화에서처럼 멋진 장면을 보여 줄 여지도 없이 뒤로 쓰러지며 머리를 맨땅에 부딪혔다. 혀끝이 반쯤 잘린 채 아직 할 말이 있는 듯 파르르 떨었다. 성한 한쪽 눈을 허옇게 까뒤집은 참혹한 꼴로 팔다리를 부르르 떨어댔다. 터진 한쪽 눈과 입에서는 피가 덩이져서 흘러내렸다. 겨우 명줄은 붙어 있으나 가망은 없어 보였다.

살아남은 자

청운의 머릿속엔 문득 몬도가네인가 하는 영화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하늘을 쳐다보는 소의 잔등을 시퍼런 도끼날로 찍자 소는 엉겁결에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풀썩 주저앉았다. 앙고라 토끼의 털을 더 많이 수확하기 위해 깎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몽땅 잡아 뜯는 장면…담비나 밍크의 모피는 살아 있을 때 벗겨내는 게 최상품이라며 생체로부터 가죽을 박탈하는 무자비한 장면…오래 전에 청운 자신의 눈으로 보았던, 무허가 도살장에 누렁이를 산 채로 묶어 놓은 뒤 불로 털을 거슬며 웃어대던 사람들의 모습…짐승들은 고통이 극에 달한 때문인지 한 순간의 짧은 비명 외엔 아무런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함께 고생했던 사람 하나가 그런 꼴로 연병장에 쓰러져 붉은 피로 땅을 적시고 있었다.

살아남은 대원들의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지며 한데 모이고 있었다. 죽음 자체가 무섭지 않다기보다 응어리진 울분이 제물에 터져 나오는 모양이었다.

“조국을 위해 이 한 목숨을 바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하긴 싫다!”

“좀전까지만 해도 형제처럼 함께 울고 웃다가 저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종욱이의 모습은 내일의 우리 꼴일 수도 있다!” “당장 최고 책임자를 불러서 진상을 밝히고 대책을 강구하라!”

“씨팔, 까짓것 모두 함께 죽자!” 고참 조교가 총구를 번쩍 쳐들어 대원들의 머리를 겨냥했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진 못했다. 자신들의 꿈과 욕구가 미지의 어떤 악당들에 의해 협잡질 당해 무너져 내린다고 느낀 젊은 대원들은 죽음도 불사할 기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문득 검은색 안경을 벗고 푸르스름한 하늘빛 안경을 걸친 교관이 나타나 일장연설을 시작했다.

“여러분, 내 말을 지금부터 명심해서 듣기 바란다. 어디에든 고난 없는 열매는 없다. 여러분은 정규군이 아니라, 곧 특수부대 요원으로 활약하기 위해 지금 뜨거운 용광로 속을 통과하고 있는 훈련병들이다. 극복하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무용지물이 될 만큼 중대한 사다리이자 절벽의 중간에 서 있는 것이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올라가면 영웅이 될 것이요,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해 추락한다면 짓뭉개진 지렁이 꼴이 될 뿐이다. 여러분은 아직 잘 모르겠으나, 인간이란 존재는 미완성품이기 때문에 노력하기에 따라 신의 아들이 될 수도 있고 악마 새끼가 될 수도 있음을 명념해야 한다!”

교관은 잠시 연설을 멈추곤 대원들을 훑어보았다. 청운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딘지 사이비 종교 교주가 지껄이던 소리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군.’ 하고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교관은 헛기침으로 목청을 다듬은 뒤 연설을 계속했다.

“여러분은 앞으로 우리 국가 방위의 최첨단 특수 요원들이 될 신분이다. 누구든 고난을 겪지 않으면 결코 영웅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현재 어려움이 많더라도 불평불만에 빠져서는 절대 안 되리라. 미래의 꿈을 바라보고 전진하라! 흐흠, 앞으로 여러분이 작전을 수행케 되면 결사적인 자세로 나서야 하며, 임무수행 중 아니할 말로 혹시 죽는 경우도 전혀 배제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핀 꽃은 아리따우며, 한 그루 나뭇가지에 핀 매화꽃은 형제자매와 같으니…… 그 중 한 송이가 꽃샘바람에 떨어진들 어찌 더 고귀하고 어여쁘지 않겠는가! 아아, 매화 꽃송이처럼 아름다운 여러분…….”

“우린 꽃이 되려고 여기 온 게 아닙니다. 앞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대책이나 좀 마련해 주시죠.”

 

작가: 김영권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2013년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이 있으며, 책 출간 후 ‘선감학원’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다.

현재는 ‘양공주 병원감옥’이라 불리는 몽키하우스의 참상을 그린 소설을 집필중이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해 나갈 계획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