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요원으로 속여 여의사 농락

<국정원 간부라 사칭해 여의사에게 억대의 돈을 편취한 카사노바가 덜미를 잡혔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국가정보원 국장’이라고 속여 여의사에게 접근해 2억6,0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성모(46·무직)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성씨는 말끔한 외모와 화려한 입담으로 5년 동안 A씨를 감쪽같이 속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본지가 사건의 풀스토리를 취재해봤다.>
 
국정원을 사칭해 돈을 편취한 사건이 또 발생해 주의가 요구되고 있다. 이번엔 수려한 외모의 카사노바가 국정원 간부를 사칭해 여의사에게 무려 5년간 2억6,000여만원을 편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국가정보원 국장이라고 신분을 사칭하여 여의사에게 접근해 억대의 돈을 사취한 혐의로 성모(46·무직)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성씨는 뛰어난 언변으로 진술과정에서도 자신의 형량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거짓으로 일관했다. 그는 거짓이 온 몸에 배인 사기꾼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사랑했다고 주장하는 A(40,의사)씨를 5년간 감쪽같이 속여 돈을 편취했다.  
 
월세방에 무직 신세
 
사건의 시작은 2004년 11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씨는 솔로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한 여성을 알게 됐다. 서울 강남의 한 병원의사인 A씨였다. 카페 게시판에 올라온 A씨의 프로필을 확인한 그는 A씨에게 서서히 접근했다. 그의 감쪽같은 거짓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A씨에게 서울대 법대를 졸업해 현재 국정원의 국장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사실 그는 보증금도 없는 서울대 입구의 한 월세 방에서 살며 한평생 일정한 직업도 가져 본 적 없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본 적도 없는 사기전과 7범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없었던 A씨는 그에게 마음을 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는 깔끔한 외모와 화려한 입담을 자랑했다. 거기에 매너 있는 행동과 유머감각까지 갖춰 A씨의 호감을 샀다. 두 사람은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그는 A씨를 속이기 위해 서울대 캠퍼스에서 만남을 갖기도 했다.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자신의 연구소가 있다며 A씨를 불렀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출입이 통제 되어 캠퍼스 인근에서 밖에 볼 수 없다며 A씨를 속여 왔다.

그렇게 그들의 만남이 계속 된지 1년이 지나자 A씨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2005년 11월쯤 그는 A씨에게 다급한 목소리로 4,000만원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강원도에 콘도사업을 진행하는데 급전이 필요하다는 명목이었다. A씨는 당황스러웠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모습에 신뢰를 하고 있던지라 4,000만원을 건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또 A씨에게 투자하는 사업이 있는데 초기자금이 필요하다며 8,000만원을 요구했다. 그는 A씨를 안심시키기 위해 위조한 서류를 내밀었다. 그는 A씨에게 “내 소유의 도곡동 땅 100평을 명의 이전해주겠다”며 법원으로부터 소유권을 인정받은 문서까지 내밀었다.
 
A씨는 그의 교묘한 말솜씨와 문서들을 보며 한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는 A씨에게 국정원에서 받는 월급이 2~3,000만원에다 굴지의 대기업에서도 돈이 나온다고 감쪽같이 속여 A씨는 철썩같이 믿었던 것이다.

급기야 A씨는 그에게 자신의 월급통장과 카드까지 모두 맡기기에 이르렀다. 그는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담당하는 실무자라 본인 명의로 된 통장이 없고 인적사항이 노출되면 안된다면서 A씨를 속인 것이다. A씨는 국정원이라는 특성상 그럴 수 있겠다 싶어 여전히 조금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계속해서 A씨에게 모 언론사의 약속어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법원의 판결문, 채권 강제집행 명령서, 모 주식회사 문서 등을 위조하여 빌라 명의이전, 비자금 세탁 등의 명목으로 지난해 2월까지 70여회에 거쳐 2억 6,000여만원을 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 중 이던 A씨에게 조직폭력배인 남(38)씨가 부하 직원 2명을 거느리고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남씨는 진료 중이던 환자들을 내쫓는가 하면 몸에 새긴 문신을 보여주며 “떼인 돈을 대신 받으러 왔다”며 차용증을 내밀며 협박했다. 성씨가 강남의 모 건물의 감정평가를 120억에서 200억으로 부풀려주겠다며 컨설팅업자로부터 받아간 로비금 3,000만원을 떼먹었다는 것이다.

통장을 조회해 본 결과 실제 입금된 것이 확인되자 A씨는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협박해 못 이겨 2,000만원을 내놓았다. 사실 성씨는 A씨에 빌린 계좌를 자신의 지인에게 빌려줬던 것이 발단이 된 것이다. 여러 사람이 얽히고설킨 사기행각들이 결국 성씨의 발목을 잡았다.
 
“끊을 수 없는 사기본능”
 
그러나 A씨가 성씨의 거짓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더 지난 올해 초였다. 성씨는 A씨를 만나면서도 또 다른 사기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성씨는 다른 사기 행각을 벌여 A씨 통장으로 돈을 입금 받았다가 사기당한 피해자로부터 A씨와 함께 고소당한 것이다.

이에 의심이 간 A씨는 서울대 법대 출신의 지인을 통해 확인 한 결과 졸업자 중에 성씨는
없었다. 또한 해당 사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으며 A씨는 성씨가 국정원 간부를 사칭한 것을 비롯한 정체를 알게 되었고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A씨에게 받은 돈도 모두 유흥비로 탕진한 뒤였다.

그러나 정작 성씨의 발목을 잡은 건 A씨가 아니었다. 조직폭력배 남씨가 3,000만원 중 A씨에게 2,000만원을 받고 나머지 1,000만원을 받기 위해 감정평가 중개인 역할을 한 또 다른 피해자 B씨를 찾아가 협박한 것이 발단이 됐다.
 
남씨는 B씨에게 강제로 차용증을 받아 돈이 변제 되지 않자 2008년 12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자신의 지인들을 동원해 폭행하고 협박하며 B씨의 승용차, 현금 등 4,300만원 상당을 강취한 것이다.

이에 견디다 못한 B씨가 경찰에 조직폭력배로부터 차량을 강취당하고 원금보다 수배 많은 돈을 주었는데도 계속해서 원금이 많아지고 강제로 차용증을 작성하여 주었다고 고소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B씨는 남씨 일당에게 당한 A씨의 피해 사례에 관해 진술하게 되었고 이에 경찰이 수사에 나서면서 성씨의 사기행각이 들어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그는 지난 1월 사기행각으로 집행유예 2년에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은 상태였다.
 
전과 7범인 성씨는 경찰 진술과정에서도 끊임없이 거짓말을 했다. 언변이 뛰어난 그는 최대한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진술했다. 유흥비로 탕진해버리고 돈이 없다던 그는 변호사까지 선임해 자신을 변호하는 데 힘썼다.

성씨는 사실 귀농할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포항에 400평의 땅을 마련해 놓은 상태라며 농사를 짓고 살려고 했는데 이번 일이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도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났나.
 
그의 명의로 된 땅도 없었으며 그는 부모를 찾지도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조사 결과 마을이장에 의하면 성씨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다며 10년도 넘게 안본 것 같다고 했다. 성씨의 부모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보호대상자로 등록도 안 돼 어려운 형편 속에서 근근이 생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성씨에 대해 수사를 보강해 영장을 재신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초희 기자
cococh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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