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전편이어서>

검은 모자 조교가 큰 보시라도 하듯 웃으며 말했다. 너무 지친 나머지 청운은 그 말이 무슨 개 짖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래도 가능하면 좋게 생각하려 했다.

“그래, 저 기간병들도 꿈 많은 청춘인데 다만 국가의 명에 의해 이곳에 차출돼 악독한 지옥사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어. 저 검은 모자 밑에 한 인간이 있고 정이 있고 꿈이 있을 텐데……각자 인생의 목표가 있고, 잘 해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포상 받고픈 본능적인 욕망도 있을 텐데…….”

모래 배낭과 각반을 벗어 버리고 나자 몸이 가뿐해진 대원들은 마치 날아가듯 춤을 췄다. 그러면서 아리랑을 흥얼거리는 것이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너 주소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다

명사십리가 아니라면 해당화는 왜 피나

춘삼월이 아니라면 두견새는 왜 우나

정선 읍네 물레방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 주소……

오후 1시부턴 총검술과 사격 훈련이 시작되었다. ‘총은 사람이 만들었는데도 인격이 없는 인간보다 오히려 어떤 격을 지닌 것 같구나. 총구는 인간의 입과 달리 아부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방아쇠는 촌철살인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것만 같구먼.’

청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격은 정확성과 함께 신속성이 요구되었다. 처음엔 명중이 목표였다. 1백 미터 떨어진 표적을 향해 30발 쏴서 28발 맞춰야 합격이었다. 정신 집중이 되면 표적 중앙의 작은 흑점이 점점 확대돼 야구공보다 더 크게 보였다. 그 순간 텅 빈 마음으로 방아쇠를 당기면 백발백중이었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넘어가 2초 이내에 발사해야만 되자 헛방이 더 많았다. 그 단계를 통과하는 데 한 달이 걸렸다. 마지막은 움직이는 표적을 향한 사격술 연마였다. 무슨 면허증을 따는 게 아니라 특수전 현장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본능적인 눈 깜박임도 금지되었다. 일부러 송홧가루가 날리고 산벚나무 꽃이 어지러이 떨어지는 날 오래도록 훈련하기도 했다. 센 바람에 봄비가 부슬부슬 흩날릴 때 숲속에서 나뭇가지에다 번호판을 걸어 놓고 1번, 5번, 2번, 7번……조교가 부르는 대로 사격한 경우도 있었다.

그 다음엔 격투술 수련이 이어졌다. 일반 사회에서 무술은 우선 자기 보호를 위한 체력 단련과 정신수양을 향해 수행된다. 하지만 단번에 적을 처치하지 못해 자기가 죽는 상황이라면…일격필살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태권도를 비롯해 합기도, 유도, 권투뿐만 아니라 레슬링과 씨름 기술까지 습득했지만…최종적으로는 위급 상황시 먼저 상대를 제압하는 게 급선무이므로 눈, 목, 명치, 사타구니 등 급소 공략법을 익혔다.

맹견과의 사투

그런 후 맹견 세 마리가 들어 있는 링 같은 개 우리 속에 대원 한 명이 들어가 격투를 벌였다. 물론 바닥은 자연 그대로의 맨 땅이었고 인간도 개도 맨손에 맨이빨이었다.

미리 한 끼니 굶기고 약을 바짝 올려놓은 개들은 독기 머금은 눈으로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사람을 잡아먹을 듯 으르렁거렸다. 개들은 세 마리가 동시에 덤벼드는 경우는 드물었다. 조교들이 ‘쉭쉭!’ 하고 독려하는 소릴 들으며 기회를 노리다가 한 놈이 선제공격을 하면 삼각형의 두 측면에서 달려들었다. 공격 개시 후 10초 내에 적을 제압하지 않으면 개든 사람이든 죽거나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므로 신속 정확히 급소를 타격하는 데 초점이 맞춰줬다.

청운의 차례가 왔다. 그는 미리부터 초조한 마음으로 떨고 있었다. 어릴 때 개를 쓰다듬다가 손을 물린 이후로 개 앞에 서면 저절로 떨리며 겁이 났다. 귀여운 강아지라도 만일 ‘아르랑~’ 하고 흰 이빨을 내보이면 엉겁결에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어서 들어가!” 조교가 명령했다. 잔뜩 위축된 청운의 꼴을 살펴본 개들은 마치 웃음소리라도 내듯 으르렁댔다. ‘어쨌든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 남의 지시에 따랐다간 죽을 수도 있다. 아, 어쩔까?’

청운은 일단 개 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이마에서 땀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개들이 한껏 야수처럼 으르렁거리며 한 발짝씩 다가섰다. 흥분에 겨워 눈알이 불그스레해진 놈들은 곧 먹이를 향해 달려들 태세였다.

청운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어 양 손을 땅바닥에 댄 채 목을 흔들며 개처럼 컹컹 부드럽게 짖었다. 어디선가 비웃음 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이미 좀전에 인간의 피맛을 본 개들은 점점 포악해져 갔다. 한 놈이 달려드는 순간 청운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젖히며 손가락을 세워 놈의 눈을 찔렀다. 그리고 몸을 공벌레처럼 잔뜩 움츠러 모아 뒤로 구른 뒤 일순 공중잽이를 해 일어서며 다른 놈의 턱을 걷어찼다. 마지막 한 놈이 벌건 잇몸까지 드러내며 으렁거릴 때 청운은 우뚝 선 채로 이젠 아무런 두려움 없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개는 인간의 눈을 슬쩍 한번 쳐다보더니 살기를 띤 목청을 서서히 거두어들였다.

청운이 앉아 쓰다듬어 주자 개는 혀를 내밀어 다친 손을 핥았다. 그건 훈련의 한 과정이었으므로 모두가 통과해야 했다. 간혹 광기 어린 개의 이빨에 물려 코가 무너지거나 목이 찢기거나 온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두 종족 모두 피해를 당했다. 결투 중에 죽은 인간은 땅에 묻히고, 개는 구워져 인간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끝없는 훈련

훈련은 끝이 없이 없었으며 점점 더 강도가 높아졌다. ‘북괴군이 1미터 뛰니 우리는 1.1미터 뛰어야 한다.’라는 식의 말이 청운은 가장 싫었다. 왜 우리가 먼저 1.5미터를 뛰기 위해 창조적으로 노력하지 않고 괴상스런 나라의 꽁무니만 따라다녀야 하는가? 북한 공산당을 괴물로 생각케 해 경쟁심을 불러일으키려 그러리라고 짐작했지만, 그래도 같은 조상의 피를 물려받은 동족을 악마니 괴물이니 욕하며 증오하려니까 왠지 자신이 괴물이 된 듯싶어 속이 별로 편치 않았다.

지도만 보고 목표 지점을 찾아가는 독도법讀圖法을 익히고, 평양을 비롯해 북한 지역의 도시와 산악 지대를 촬영한 슬라이드 사진도 수십 번씩 보며 암기했다. 북한 말투도 시간 나는 대로 연습했는데 비중이 크진 않았고 그저 수박 겉핥기 식이었다.

아직 본부 측에서 정식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대원들은 자신이 모종의 북파 특수 임무에 투입되리라고 예상했다. 북쪽에 넘어가 오랫동안 머물며 스파이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단번에 치고 빠지는 단순 테러 행위가 아닐까 하고 청운은 짐작했다. 다들 나이가 어렸거니와 또한 훈련 트랙이 그런 목적을 위해 진행되는 성싶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산악을 종횡하는 체력훈련이 고되었기 때문인지 단검 던지기나 철조망 통과법, 지뢰와 부비트랩 처리법, 폭파술 등은 짜릿하면서도 어딘지 어릴 때 하던 위험스런 놀이를 연상시켰다. 치밀한 준비 끝에 도화선導火線이 도둑의 발짝처럼 화급히 타들어가 거대한 바위를 폭음과 함께 산산조각 낼 땐 마치 첫 몽정의 쾌감이 척추를 따라 내려 아랫도리께에서 맴도는 듯했다.

북으로 침투하는 과정 중엔 지뢰와 같은 장애물도 있지만, 일단 북한 땅으로 넘어간 후엔 논밭이나 모래밭 그리고 나뭇가지 따위를 유심히 살펴야했다. 모래밭에 새로 생긴 발자국이나 나뭇가지 사이에 매어둔 투명한 실이 끊어진 것을 관찰한 후 추적하기 때문이었다. 좀 원시적이긴 하지만, 스파이를 죽이기보다 생포해 정보를 얻는 게 더 요긴했으므로 그랬을 터였다. 전기 철조망을 딴 후엔 꼭 엎드려서 기어가야 한다는 사실도 거듭 강조되었다.

시간이 흘러 점차 익숙해졌다곤 해도,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실시되는 야간 교육 때는 특히 조심해야 했다. 깊은 숲속의 암산과 계곡을 어둠속에서 걸을 때는 한 발짝 한 발짝, 한 찰나 찰나가 삶과 죽음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심정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끗만 까딱 잘못 딛으면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죽거나 중상을 입곤 후송돼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

작가: 김영권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2013년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이 있으며, 책 출간 후 ‘선감학원’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다.

현재는 ‘양공주 병원감옥’이라 불리는 몽키하우스의 참상을 그린 소설을 집필중이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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