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서 제자 성폭행한 고려대 교수는 기소중지

성추행 서울대 교수는 버젓이 지도교수 명단에

[민주신문=이승규 기자] 명문대 교수들의 잇따른 성폭행 사건이 불거지고 있어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교수가 지도학생을 성폭행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사회에 모범이 돼야 할 대학교수 신분으로 인면수심의 범죄를 저지른 것도 모자라 그 이면에 깔린 교수들의 갑질 횡포도 드러나고 있어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교수가 지도학생의 논문·졸업에 관한 권한을 쥐고 있어 이를 빌미로 폭언·폭행 등 가혹행위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시정해야 할 대학 측의 무성의한 대응, 수개월째 사건을 방치한 검찰 등 사건 해결의 주체도 손을 놓고 있어 피해자의 고통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24일 SBS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서울 소재 한 명문대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술에 취한 제자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났지만 해당 사건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고 설상가상 석연치 않은 이유로 검찰로부터 기소중지 됐던 사실까지 드러나 논란은 가중됐다.

당시 대학원생이던 피해 여성 A씨는 지도교수의 회식자리에 불려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가 사건 당일 남긴 SNS 메시지에는 회식자리에 나가기 싫었지만 교수의 횡포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지도교수의 갑질 횡포가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강제로 회식에 참여한 A씨는 교수가 강권하는 술 때문에 만취했고 새벽 3시쯤 잠깐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하지만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가해 교수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A씨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성폭행 사실을 알렸고, 위험을 인지한 A씨의 친구는 당시 통화기록을 녹음하기도 했다. 녹음된 내용에는 사건 당시의 상황이 고스란히 저장됐다.

녹음된 자료에 따르면 가해 교수는 고통에 울부짖는 A씨에게 “고양이 나오겠다, 고양이”, “누가 전화해? 응? 누가 있어? 울지 마. 조용히 해”라고 말하는 등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듯한 말들을 쏟아냈다.

사건 직후 A씨는 경찰에 신고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해당 교수는 혐의를 적극 부인하고 나섰다. 오히려 경찰 조사를 받는 도중에도 A씨에게 협박성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피해자 속옷에서 DNA가 검출되자 합의 하에 이뤄진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입장이 불리해진 가해 교수는 A씨에게 용서를 빌고 합의를 요구했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자 가해 교수의 부친까지 나서 합의를 종용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등 피해 가족을 괴롭혔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이라고 불리는 서울대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24일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특별수사대는 지난해 말 자신의 지도하에 있는 한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서울대 공대 B교수를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B교수는 지난해 말 자신의 교수실에서 대학원생 C씨의 허벅지를 만지는 등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부터 B교수를 조사 중에 있으며 영장신청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에서는 지난 4년 동안 4명의 교수가 성범죄 관련 처벌을 받았다.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은 술에 취해 조교를 강제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치의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지난해 1월에는 제자들을 상습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에게 대법원이 징역 2년 6개월의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이에 강남식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현재 대학마다 성범죄 관련 규정이 마련돼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을 통해 성평등 의식을 개선하고 학내 조직 문화를 바꿔나가야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성범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당부했다.

솜방망이 처벌

교수들의 잇따른 성범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지만 대학과 검찰 등 사정당국은 처벌은커녕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해 빈축을 사고 있다.

서울대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공대 B교수는 현재 수업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연구실 지도교수로는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서울대 측은 "연구실 지도교수로서 직위해제 등 중징계를 받으면 해당 연구실 소속 학생들의 인건비 지급 등에 차질이 있어 지도교수로 아직 이름을 올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교내 인권센터에서 관련 조사를 끝냈다. 경찰 조사를 살펴보고 징계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대 A교수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사건 발생 10개월이 지났지만 오히려 사건이 검찰로부터 기소중지 됐다. 검찰은 가해자를 거짓말탐지기로 조사해야 한다면서 이 사건을 기소중지 처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법 전문가들은 검찰의 의아한 기소중지에 대해 “인사고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꼼수”라고 비판했다. 기소 중지 시점이 지난해 12월 말이고 해당 시즌은 검찰의 인사고과 평가 시점이라는 것.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나 미제사건이 있으면 실적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현직 검사들이 수사 중인 사건을 기소 중지하는 꼼수를 쓰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거짓말 탐지기 검사만을 위해 시한부 기소 중지를 했다면 조금 이례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언론의 취재와 보도가 이어지자 “전날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가 나왔다”면서 곧바로 수사를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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