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부 인간 소모품

<전편 이어서>

‘걱정 마. 널 잡으려던 게 아냐. 곧 놓아줄게.’

청운은 마음속으로 대꾸해 주었다. 그러고는 잉어가 죽을까 봐 급히 낚싯바늘을 입에서 빼냈다. 잉어가 올려다보았는데, 큰 두 눈알이 문득 하나는 붉게 한쪽은 짓푸르게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구리 비늘 위에 묘한 글자가 나타났다. 한글도 아니고 한자도 아닌 야릇한 문자였다. 그걸 꼭 읽어야겠는데 도무지 해독할 수가 없어 안타까웠다.

불현듯 잉어는 몸을 홱 돌려 꼬리지느러미로 청운의 뺨을 철썩 갈기곤 검붉은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가 버렸다.

지옥훈련

청운은 놀랍고 아쉬운 마음으로 잠에서 깨어났다.

스라소니가 손등으로 볼을 두드리며 어서 일어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날카롭게 찢어발겼다. 문 바로 앞에 검은 모자들이 몽둥이를 들고 늘어선 채 조금이라도 거슬리면 후려갈길 기세였다.

청운은 다급히 줄의 꽁무니에 따라붙었다. 연병장엔 아직 어둠의 꺼풀이 남아 어둑스레했다.

대오가 갖춰지자 군용 점퍼 차림에 선글라스를 쓴 키가 좀 작은 교관이 앞으로 나섰다. 새벽 어스름에 저런 검은 안경을 끼면 과연 뭣이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보인다면 또 어떻게 보일까?

그는 검은 안경으로 대열을 훑어보며 말했다.

“여러분은 우리 민족과 국가를 위해 크나큰 임무를 수행하려는 충심으로 지금 이 훈련장에 서 있다. 이곳은 일명 악마의 산이다. 이곳을 악마의 산이라고 부르는 건 결코 여러분들에게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형이 가파르고 암벽이 많기 때문에 까딱했다간 순식간에 깊은 골짝 속으로 떨어져 죽기 때문에 자연히 별명이 된 것뿐…… 그러니 각자가 힘과 기량을 재주껏 기르고 발휘해 살아남아야만 한다. 훈련중 흘리는 한 방울의 땀은 실제 전투에서는 피 한 방울과도 같다. 최선을 다해 극기한 자는 적진에서도 살아남을 것이며, 자기 자신을 극복하지 못한 자는 개죽음을 당할 뿐이다.”

교관은 어딘지 좀 오만해 뵈는 표정이었으나, 코울림이 살짝 섞인 목소리엔 나름의 진정성이 도드라지곤 했다. 그는 헛기침을 한번 뱉은 후 말을 이었다.

“에, 여러분은 정규군이 아닌 특수요원이기 때문에 제대 날짜가 따로 없다. 일반 사회로 치면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 특별한 슈퍼맨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두가 자신의 한계를 한 단계 이기고 넘어가는 각고의 순간이 곧 비룡승천일이 된다. 그때가 오면 여러분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한갓 가여운 벌레로 추억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명심하라! 모든 배추벌레나 굼벵이가 나비나 매미로 환골탈태하진 못한다. 조금이라도 나태함에 끌려 진취적으로 성장 발전하지 못하는 자는 가차없이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건 곧 죽음이다. 알겠는가?”

“예!” 젊은이들의 목소리가 모여 메아리쳤다. “그럼 실시하라!” “예, 충성!”

명령과 동시에 검은 모자의 조교들이 구령한 후 훈련병들을 닦달해 험한 산길로 이끌어 갔다.

청운은 별 생각 없이 앞사람만 보며 뛰었다. 자기 뒤에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한 명이 있긴 있었다. 하지만 검은 모자의 조교는 같은 인간일 텐데도 동료 대원들과 달리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처럼 느껴졌다.

웅혼한 가상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그 산악을 ‘악마의 산’이라고 부르는 건 불경스런 짓이었지만, 유람이 아니라 목숨을 건 훈련이고 보니 수긍이 되기도 했다. 숲속이 어둑한 탓도 있었으나 가파른 바윗길이라 그런지 미끄러지고 자빠져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새끼들아, 정신 바짝 차려라! 지금 이건 준비운동이며 맛뵈기일 뿐이야. 악마산 사전답사, 즉 예고편이란 말이다!”

하지만 산중턱 저 멀리 빨간 깃발들이 꽂혀 있는 지점까지 한 시간 만에 갔다 오는 건 결코 준비운동이 아니었다.

청운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원들은 곧 기진해 쓰러질 듯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한 대원이 암벽 길에서 미끄러져 추락해 죽었고, 또 한 명은 허리뼈가 부러지는 치명상을 당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조교는 한 가닥 감정도 허용하지 않고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목표 지점을 향해 대원들을 사납게 몰아쳤다.

청운은 분명히 사람의 비명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맨 뒤에 있다 보니 앞쪽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실상을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앞에 선 대원에게 물어 보았다. 그는 모른다고 고갯짓하곤 자기 앞사람에게 묻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대원 역시 모른다곤 대꾸한 뒤 바로 앞사람에게 묻는 상황이 연속되는 듯싶었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행군은 계속되었다. 그런 무지와 의문 속에서 청운은 왠지 상쾌한 아침에 걸맞지 않은 음침한 기색이 감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붉은 깃발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야 청운은 대열 꽁무니의 다른 세 명과 함께 차출돼 부상자와 시신을 떠메고 가는 임무를 맡았다. 청춘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져 버린 시체는 한 마디 추도사도 없이 외진 산자락에 매장되었다. 그리고 척추가 부러진 부상자는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그 후엔 통 볼 수가 없었다. 객지에서 외로이 떠돌 혼백은 세월이 흐르고 나면 그 누가 기억이나 할 것인가.

살아남기 위한...

연병장에 모여 태껸 기본 동작으로 몸을 푼 후 아침 식사를 했다. 보리가 반쯤 섞인 밥에 멀건 된장국, 신김치와 콩자반이 나왔다. 청운은 밥을 국에 말아 김치를 걸쳐서는 퍼먹었다. 검은 콩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영양을 생각해 먹어 두었다. 배가 고프기도 했거니와 청운은 원래 보리밥에 풋고추와 된장만으로도 만족하는 성격이라 좀 허술한 대로 대충 삼키고 넘어갔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불만이 흘러 나왔다.

“씨팔, 이걸 먹고 무슨 힘을 쓰라는 거여. 차라리 풀밭에 누워 별 하나 님 하나 세다가 죽으라고 하지.” “맨날 쌀밥과 고깃국에, 일주일에 한 번씩은 특식을 준다더니 말짱 거짓말이었군.”

“언젠가 어느 동네 선배에게 듣기론, HID에 입대했는데 처음 사흘 동안 먹을 걸 일체 주지 않더래. 사회에서 낀 묵은 썩살과 기름기를 쫙 빼 버리기 위해 그랬대나 봐. 그래서 한밤중에 시골집에 몰래 들어가 닭서리를 해서는 구워 배를 채웠대. 우리도 나중에 한번 해볼까? 그런데 그 후에도 계속 먹는 게 형편없어서 단식투쟁까지 했다더군.”

“물색조 개새끼들! 이제 보니 국가에서 공인한 사기꾼 놈들이었네. 씹어 먹을 놈들!” 청운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국가에서 특별히 조직한 부대인데 그럴 리가 있겠는가? 이왕이면 극한 훈련과 함께 좋은 음식을 먹여 체력을 기르게 해야 목적이 달성되지 않겠는가. 저런 걸 먹고 험한 바위산을 타라고 하는 건 품바 타령하는 거지들에게도 무리일 텐데…… 그런데 왜 이럴까?…… 혹시 국가에서는 충분한 경비가 지급됐지만, 누군가에 의해 착복당해 이런 궁한 꼴이 된 게 아닌가 몰라.’

30분의 휴식 후에 오전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교관이 말했다. “북괴의 특수부대인 124군 부대는 험한 산에서 한 시간에 10킬로미터를 주파하는 괴력을 지녔다. 우리는 그들보다 1미터라도 더 달릴 수 있어야 한다. 실시!”

대원들은 30킬로그램쯤 되는 모래 배낭을 둘러메고 다리엔 3킬로가 넘는 각반을 찬 채 험난한 바위투성이 산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바윗덩이를 진 느낌이군. 이건 정말 장난이 아냐.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어. 바위와 바위에 낀 채 숨이 지는 내 그림자가 보이는 듯하군.’

모래는 처음엔 부드럽지만 등에서 땀이 잔뜩 흘러 염분과 섞이면 딱딱하게 굳어져 뛰다 보면 등짝에 심한 상처를 내곤 했다. 그래서 아직 피부가 연한 청소년 대원들은 등가죽이 벗겨져 벌건 살 속에서 진물이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 또 한 명의 대원이 무리하게 암벽을 기어오르다가 한 순간 절벽으로 추락사했다. 아무런 묵념도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쫓기기만 했다.

훈련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대원들은 모두 러닝을 벗은 채 서로서로 등에 하얀 가루약을 뿌려 주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나면 딱지가 앉았다가 벗겨지기를 반복한 끝에 등에 영광스런 굳은살이 박히니 걱정 마라.”

 

김영권 작가

작가: 김영권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2013년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이 있으며, 책 출간 후 ‘선감학원’ 문제가 크게 이슈화되었다.

현재는 ‘양공주 병원감옥’이라 불리는 몽키하우스의 참상을 그린 소설을 집필중이며, 앞으로도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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