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재계에 수평적 조직 구조 및 보다 유연한 사내분위기 조성을 위한 직급·호칭 개편 바람이 불고 있다.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 등 전통적 수직 직급 체계가 불러오는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해보자는 취지에서다.

27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인 이상 기업 227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년 60세 법제화 이후 인사·임금제도 변화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40.1%가 최근 3년간 직급체계 관련 변화가 있었거나 개편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급 체계 개편은 주로 직급 구분 기준을 재설정하거나 직급체류연한을 연장하는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전자는 올해 3월부터 직급 체계를 재설정했다. 기존 사원1(고졸), 사원2(전문대졸), 사원3(대졸),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7단계의 직급에서 4단계로 축소했다. 경력개발 단계(Career Level)를 1부터 4까지 구분해 운영할 예정이다. 또 직급과 별개로 호칭은 ‘OO님’으로 부르기로 했다.

CJ그룹도 일찌감치 지난 2000년부터 모든 임직원의 호칭을 ‘OO님’으로 통일했다. 제일기획은 2010년부터 이름 뒤에 ‘프로’란 호칭을 쓴다. 다음카카오는 직원들을 영어식 이름으로 부른다.

이러한 직급 체계 개편은 재계뿐만 아니라 금융·보험사, 공공기관 등 사회 곳곳의 영역에 유행처럼 퍼져 있다.

알리안츠생명은 지난해 말부터 수평적 호칭제도를 도입했다. ‘컬처 DNA 바꾸기 캠페인’의 일환으로 직급에 상관없이 ‘님’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삼성화재도 지난 2009년부터 계열사 최초로 ‘수석-책임-선임’ 직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도입 취지와 달리 부작용과 반발도 만만치 않다. 내부적으로 부르는 호칭과 외부적으로 부르는 명칭이 달라 혼란을 빚는 경우다. 또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기 힘들고 불편하다는 의견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어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더구나 직급 체계 간소화가 임금 동결을 위한 기업들의 꼼수 아니냐는 비판도 상존한다.

반응

전통적인 관료제 기업의 문화가 오히려 몸에 익숙한 상황에서 갑작스런 직급 체계 변화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서로 엇갈리고 있다.

넷마블게임즈는 현재 내부적으로는 직급을 ‘매니저’로 통일했다. 호칭은 ‘OO님’이라고 부르지만 팀장·실장 등 직책을 부여받은 일부 직원들은 이름 뒤에 해당 직책을 붙여 부르기도 한다. 넷마블 관계자는 “넷마블은 임원과 평직원이 회의를 하거나 대화를 할 때도 ‘OO님’이라고 자연스럽게 부르고 있다”며 “아무래도 게임회사이다 보니 기업문화가 다른 기업에 비해 수평적이고 소프트한 부분들이 있어 더 잘 정착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호칭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가 있다. 수직구조를 타파해 신입사원까지도 자신의 의견을 더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등 긍정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반면 직급체계에서 상대적으로 아래에 있는 일반 직원들은 혁신적 기업문화에 오히려 불편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CJ그룹 계열사에 대리급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모(30/남)씨는 “직원 간 서로 ‘OO님’이라고 부르는 게 아직도 많이 어색하다. 나보다 훨씬 높은 직급의 상관에게 ‘OO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해 아예 부르지 않거나 피한 적도 있다”며 “말로는 ‘OO님’이라고 부르면서 수평적 구조를 강조하지만 결국은 서로의 상하관계가 분명한 만큼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부작용

직급·호칭 개편이 잘 정착되지 못하고 본래 방식으로 회귀한 경우도 있다. 수평적인 사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취지와는 달리 외부 인사와의 접촉 시 혼란을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타사 직원의 입장에서는 해당 회사 직원의 직급과 직책을 정확히 알아야 적절한 업무와 응대가 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일이 물어보는 게 실례가 되는 경우도 있어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화갤러리아 관계자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니저 호칭을 사용했지만 지금은 쓰지 않는다”며 “외부 사람들과 만날 때 타사 직원들이 헷갈려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도입취지상 수평적 구조, 자유로운 사내 분위기를 내세우고 있지만 직급 개편으로 임금의 동결·하락 등 피해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올해 초 수평적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직급체계를 매니저, 선임매니저, 수석매니저 등 3개로 축소했다. 하지만 곧 노조의 반발에 부딪혔다. 직급 체계가 축소된 만큼 승진의 기회가 줄고 그로인해 임금 상승도 더딜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회사 측이 일부 직원들의 연봉을 부분 인상해주기로 합의하면서 사태를 봉합했지만 직급에 따른 연봉 이외에도 성과급·복지 등 해결해야 할 부분이 산적한 상태다.

하지만 대기업 노조의 경우와는 달리 노조의 힘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거나 노조가 결성돼 있지 못한 사업장이라면 직급 축소로 인한 피해가 불가피해 논란의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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