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

▲저 황주리 ▲노란잠수함 ▲1만5800원

[민주신문] 모든 인생의 길목에는 누군가가 남긴 발자국들이 있다. 작은 조약돌, 들꽃, 고양이, 참새 등 우리가 스쳐지나간 그 자리에 추억이 된 무엇들이 있다.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황주리는 우리가 매 순간 잃어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다정한 기록을 그림소설로서 전한다. 손 쓸 수 없이 흘러간 아련한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으면서 지나버린 인생의 조각으로 안내한다. 이 소설집을 읽는 일은 조각보 속 풍경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는 일이 될 것이다.

“산다는 일은 어쩌면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아주 짧은 순간 마주쳤던 사람들조차 깨알 같은 흔적 하나씩을 남기고 돌아선다. 너무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다, 사랑의 끝까지 가본 사람에게 그 작은 흔적들은 커다란 흉터나 상처가 되어 버린다. 사랑이란 날카로운 칼을 상대에게 쥐여 주고 자신을 찌르지 않기를 바라는 어리석은 마음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사랑에 관한 짧은 노래’ 중에서)

화려한 원색의 신구상주의 화가 황주리가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를 냈다.

그동안 다양한 글쓰기로 뛰어난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 온 황주리의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매혹적인 ‘그림 소설집’이다.

돌아보면 멈춰 있는, 이미 흘러가 버린, 손쓸 수 없어 아련한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렇다고 ‘착한 글’이 아니다. 신파도 아니고, 낡지도 않았고, 촌스럽지도 않다. 시답잖은 기억도, 깊은 상처를 남긴 기억도 조각보처럼 이리저리 꿰매어져 하나의 삶을 이루고 있다. 조각보 속 풍경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게 하는 건 보석 같은 문장들이다.

화가 황주리는 캔버스뿐만 아니라 사물에 더 자주 그림을 그린다. 돌 위에, 의자 위에, 안경 렌즈 부분에, 사진 위에. 빈 도자기를 찍은 사진위에 이미지를 더한다. 사물에 온기와 생명을 불어넣어 주려는 그림처럼 이 책도 저자의 관조적이면서 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삶의 순간들에 관한 고독한 일기인 동시에 다정한 편지처럼 읽힌다. 글과 그림이 빚어내는 공감의 하모니는 평안한 위로를 선사한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잊히는 게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새 서서히 잊히죠. 그리고는 몸에 있는 옅은 점처럼 그렇게 마음에 남게 마련이죠. 그 기억이 좋으면 좋은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나쁘면 나쁜대로. 남남이 되어 버린 우리들 사랑의 기억은 마치 오래전에 꾼 악몽 같아요. 기억하기도 싫은데 또렷이 기억나는 나쁜 기억이기 일쑤죠. 그 누구의 것인들 그렇지 않겠어요."('스틸 라이프' 중에서)

저자의 그림이 담긴 책 표지는 두 종류다. 해바라기 속에 다양한 사람들이 묘사된 밝고 화사한 컬러와 입맞춤하는 모습에 선인장이 포개진 흑백 표지다.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하면 두 표지 책 가운데 하나가 랜덤 발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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