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김성주 성주그룹 대표, 가운데는 김해련 송원그룹 대표, 오른쪽은 한성숙 네이버 대표.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생존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방탄보다 두껍다는 ‘유리천장’. 여성 고위 임원은 손에 꼽을 정도. 최고경영자(CEO)는 언감생심이다. 각종 악조건에서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유리천장’을 보기 좋게 깨트린 이들이 있다. 이들의 주 무대는 패선과 IT업계다. 자유로운 업무 환경과 여성의 장점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한 것. 경제비사 제14탄은 대한민국 사회 속 다양한 분야의 여성 CEO들의 현주소에 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 여성 CEO들은 특유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기업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다. 비교적 규모가 큰 그룹을 이끌고 있는 성주그룹 김성주(62) 회장부터 중견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송원그룹의 김해련(56) 회장까지 여성 CEO가 이끄는 회사의 규모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성주그룹을 이끌고 있는 김성주 회장은 대한민국 대표 여성 CEO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지난 18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더욱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대성그룹 故김수근 회장의 막내딸이지만 재벌2세로서가 아닌 자수성가로 지금의 자리에 오른 것으로 유명하다. 김 회장은 이화여고 졸업 후 연세대학교에서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후 1983년 영국에서 국제 협력관계 전공을, 1985년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독기

그는 대개의 재벌2세들과 달리 가난한 유학시절을 보내야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사업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집안의 도움을 뿌리치고,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공부했다. 귀국 후에도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혼자 힘으로 대성산업 패션사업부를 설립(1988년)해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게 된다.

전화기 한 대와 책상 하나로 시작된 대성산업 패션사업부는 기획·마케팅·영업 등 모든 분야를 김성주 회장 혼자 책임졌다. 김성주 회장은 ‘서구 스타일의 소매 경영 기법’을 도입한 사업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고자 했다.

해외 유명 상표가 백화점 매장을 통해 소개되는 게 아니라 브랜드마다 독립되면서도 특색 있는 매장을 통해 유통·판매되는 방식의 사업이다. 유통방식은 더 간단해지고 서비스의 질은 올라가는 사업 모델을 채택함으로써 김성주 회장의 사업은 승승장구하게 된다.

이후 1990년 성주그룹이 설립되면서 글로벌 명품 패션브랜드인 Gucci, Sonia Rikyel, YSL과 영국 내 최고 패션 유통회사인 Marks & Spencer를 국내에 런칭했다. 이후 성주그룹은 한국 패션산업을 이끄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2005년에는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독일에서 탄생한 가방 브랜드인 MCM을 전격 인수해 글로벌 시장에 안착하게 된다. 현재 한국 및 이태리 공방에서 제작한 명품을 전 세계 35개국에 수출하며 한국 패션 산업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는 있었다. 김 회장이 사업을 시작할 당시인 1990년대만 해도 수입품에 대한 거부감, 특히 해외 유명 상표는 곧 사치·과소비라는 인식이 심했다. 이에 김 회장은 제품을 수입하는 것을 넘어 기술 등을 함께 들여와 라이선싱을 통한 역수출을 하는 등 국익에도 기여하며 부정적 인식을 없애갔다.

또 지난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여성 리더를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캠프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재계 인사의 정치 참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로 인해 그룹 매출이 급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약속한대로 성주그룹 회장으로서 일선에 복직해 그룹 재건에 앞장섰고, 2014년에는 대한적십자사 총재에도 선출되는 등 사회적 비판을 조금씩 없애갔다.

국내 못지않게 해외에서도 유명한 MCM 브랜드를 더욱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키면서 김성주 회장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속의 여성 CEO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안목

기초소재 중견기업인 송원그룹 김해련 회장은 29세 때 창업을 시작해 25년 이상 CEO의 위치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 리더다. 그는 故김영환 송원그룹 전 회장의 외동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십 년 동안 기업을 탄탄하게 꾸려가고 있는 능력 있는 여성 CEO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뒤 1989년 한국에 들어와 여성복 브랜드 ‘아드리안느’를 설립했다. ‘아드리안느’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사세를 확장했지만 김 회장은 국내 최초의 온라인 패션몰 ‘패션플러스’를 개설하면서 에이다임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인터넷 시대가 도래 할 것이라는 김 회장의 안목이 빛났던 순간이다. 이후 2010년 패션플러스의 매출액은 800억원에 달했다. 이듬해 패션플러스는 국내외 1500개 유명 브랜드를 유통하는 대형 패션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하지만 김해련 회장은 2014년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부친이 숙환으로 별세하면서 패션 사업 일체를 정리하고 송원그룹의 회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는 취임 이후 2020년까지 송원그룹의 매출을 1조원 이상으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송원그룹은 2015년 아연 소재를 생산하는 SBC를 인수했다. 또 지난해 말 자외선 차단제에 들어가는 나노산화아연 생산을 시작하기도 했다. 나노산화아연은 kg당 약 4만원으로 고부가가치를 실현할 소재로 손꼽히는 물질이다.

이밖에 송원그룹은 휴게소 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미 문막·군산·서산·홍천 등 10여 개의 고속도로 휴게소 사업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동강휴게소를 추가로 인수하며 사업 확장을 노리고 있다. 현재 김 회장은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과 사업 재정비에 열을 올리면서 송원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IT

대한민국 여성 CEO 중에는 유독 IT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수적인 성향이 남아있는 산업·재계보다 다소 자유롭고 깨어있는 사내 분위기라는 특성이 유리하게 작용한 것.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새로운 수장에 오른 한성숙(51) 대표이사는 김상헌 전 대표의 8년 장기집권을 깨고 여성으로서 당당히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여성이 대형 포털의 CEO를 맡은 것은 한 대표가 처음이다.

한 대표의 이력은 조금 특이하다. 그는 컴퓨터 잡지 ‘민컴’에서 전문지 기자로서 일을 시작했다. 6년 가까운 기간 동안 컴퓨터 산업 전반에 관한 취재를 하면서 업계의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을 갖추게 됐다.

이후 나눔기술이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회사를 거쳐 엠파스에서 일하면서 IT 분야의 전문가가 돼 갔다. 이후 네이버로 자리를 옮겨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에게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타트업 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지만 리스크가 큰 IT 업계에서 꾸준히 버티며 성장했다. 불확실함 속에서도 28년간 업계의 진화를 몸소 체험하면서 같이 성장해 온 것이다. 그 결과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 한 대표는 IT 업계의 여성 신화라 불릴 만하다.

한빛소프트의 김유라(42) 대표도 IT 업계에서 소위 잘 나가는 여성 CEO다. 지난해 포켓몬고 열풍이 불 때 한빛소프트가 이와 유사한 게임을 출시할 것으로 알려져 주가가 상승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지난해 3월 한빛소프트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는 김기영 한빛소프트 이사회 의장의 여동생이다. 김 의장은 한빛소프트의 모회사 격인 티쓰리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다. 한빛소프트는 이른바 ‘남매경영’을 하는 셈이다.

김 대표는 한국외대 무역학과 재학시절인 2001년 티쓰리엔터테인먼트 마케팅 팀장으로 일하면서 IT 업계의 실무를 익혔다. 온라인 게임 ‘오디션’의 성공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2009년 티쓰리엔터테인먼트가 2009년 한빛소프트를 합병한 뒤 온라인사업본부장을 맡았다. 한빛소프트 부사장을 거쳐 지난해 3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한빛소프트는 1999년 김영만 사장에 의해 설립됐다. 이후 블리자드의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의 판권을 따내면서 성장하게 된다. 설립 당시 직원이 17명에 불과했지만 4년 만에 직원이 200여명으로 증가하는 등 급성장했다. 2008년 김기영 전 대표가 선임된 후 8년간 회사를 경영하다 김유라 대표가 수장 자리를 맡게 됐다. 김 부사장은 오빠인 김 전 대표의 경영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여성만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이란 기대를 받고 있다. 현재 한빛소프트는 모바일 게임, 캐릭터 사업뿐만 아니라 AR·VR 등 다양한 분야로의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박지영 전 컴투스 대표, 오른쪽은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위기

한때 유명세를 떨친 여성 리더였지만 지금은 그 자리에서 물러났거나 물러날 위기에 처한 여성 CEO들도 있다.

박지영(44) 전 컴투스 대표는 IT 업계의 유명 여성 CEO였다. 그는 1998년 남편인 이영일 부사장과 함께 컴투스를 설립했다. 2007년에는 한국 모바일게임회사 최초로 상장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게임 시장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컴투스는 부진한 실적을 거두게 된다. 이에 박 대표와 이영일 부사장 등은 게임빌과 최대주주 변경 및 경영권 양수도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컴투스를 매각했다.

현재 박 대표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다. 하지만 컴투스는 글로벌 오픈마켓을 통해 전 세계에 다양한 장르의 모바일 게임들을 출시하고 있다. 현재 애플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을 중심으로 160개 이상의 국가에 서비스를 시행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출시된 ‘서머너즈 워’는 현재까지 누적 매출 6000억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또 전 세계의 쟁쟁한 게임과의 경쟁에서도 글로벌 대표 RPG로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컴투스는 앞으로 유럽, 남미, 동남아 등 신흥 게임 시장 개척에 나설 계획도 가지고 있다.

스팀청소기 신화로 유명한 한경희생활과학의 한경희(54) 대표도 회사 경영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한경희 대표는 2003년 스팀청소기를 출시해 1000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여성 CEO 신화를 써 내려갔다. 2005년에는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하면서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2014년부터 영업 손실에 빠지며 위기가 시작됐다. 이후 2015년 순손실 300억원대를 넘기며 완전자본잠식 상태가 됐다.

설상가상 한경희생활과학은 2014년 탄산수제조기업 SDS의 사기 행각에 휘말려 거액의 소송을 벌이는 등 위기 요인이 산재해 있다. 이에 한경희생활과학은 지난 1월 워크아웃에 돌입한 상태다. 회사측은 구조조정 차원에서 이뤄진 워크아웃이라는 입장이지만 이미 기울어진 사세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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