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4월 어느 날, 사람들은 368명이라고 했다가 164명이라고도 했습니다. 며칠 뒤 또 174명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돼 172명이라고 했습니다. 세월호라는 배가 기운 이후 일곱 번 이상 번복됐습니다. 이름이 아닌 숫자로 누구의 아들이고,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딸은 그냥 숫자로 불려 지기 시작 했습니다. 숫자너머 사람은 진도바다의 안개처럼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숫자는 이름이 되어 돌아왔지만, 부모는 ‘시위꾼’이 되었고 이웃들은 곧바로 ‘종북세력’이라는 사상범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12월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출발한 탄핵심판의 열차는 안국동 헌법재판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현장 기자들은 3월10일 헌재의 탄핵선고일을 ‘1차 D-Day’라고 정의했습니다. 탄핵선고 이후의 정치지형과 방향이 급속도로 변할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에서, 조기 대통령선거라는 프레임으로 급속하게 변화될 것이고 만약 탄핵이 기각되면 야당은 무리한 탄핵추진에 따르는 후폭풍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대선주자들은 몇 일간 극도로 말을 삼가며 행동거지를 조심했습니다.

‘2차 D-Day’는 대선 직후라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2차 D-Day’ 이후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합니다. 인수위가 없는 새로운 집권의 시작입니다. 새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과 청와대 참모진들과 임기를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려

남파간첩과 난수표 같은 복잡한 정치일정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헌재의 결정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선고 전날까지 박 전 대통령은 탄핵 결정 이후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헌재 최후변론에서 “앞으로 어떠한 상황이 오든 혼란을 조속히 극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 것이 전부입니다. 승복하겠다는 명시적인 선언이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박 대통령이 탄핵 결정에 불복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자신의 그동안의 약속들을 저버리는 행동을 계속 해왔습니다. 오죽하면 헌재에서 조차 “피청구인은 대국민담화에서 진상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 이 사건 소추와 관련한 피청구인 일련 언행 보면 법 위배 행위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헌법 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다”며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 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 행위라고 봐야한다”라고 박 전 대통령의 말과 행동의 다름을 지적하고 감정과 직위가 가지는 엄중함을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극우세력들은 ‘내란’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의거’라는 한 세기가 지나버린 단어까지 회자되는 상황입니다. 사람들 간에는 오직 적대만 있을 뿐 상대가 사람이라거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계념은 없는 듯합니다. 언제부터 우리 헌법이 부정되어졌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간혹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판결을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반대의 의견이나 유감의 의견을 게재할 뿐, 그것이 불복은 아니었습니다.

혼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총칭되는 극우세력은 헌법재판소 심리기간 내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재판관들에 대한 테러를 모의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사를 하던 특검의 집 앞까지 가서 폭력적 시위를 했습니다.

세상은 어지러웠고 복잡하고 오직 미움과 질시만 있었을 뿐, 권한만 정지된 정치인 박 전 대통령은 윤음(綸音)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들거나 혼란을 잠재우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 긴 침묵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야만적 폭력에 대한 암묵적 동의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여 극우주의자들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가치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저들이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가 필요했었는지, 그들이 자유롭게 거리에서 반(反)헌법적 주장조차 할 수 있는 언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는, 그 가볍고도 무거운 권리가 어떤 세월의 강을 건너 왔는지 모르는 듯합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는 날 ‘날은 좋았습니다.’ 국회에서 바라보는 한강물은 햇살을 받아 물비늘은 반짝였고, 그 물은 바다로 방향을 잡습니다. 그중 일부는 남쪽 바다 어딘가로 갈 것입니다. 다시 4월은 오고 있습니다. 그해 평화로운 남쪽 바다에서는 멀쩡했던 배가 뒤집어졌고, 누구는 평형수를, 누구는 고박을 이야기 했고, 다른 어떤 사람은 골든타임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잠수부는 물에 들어가지 못했고 하늘에는 조명탄만 난무했습니다.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homas Stearns Eliot)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없는 뿌리를 깨운다”고 노래합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오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그 배안에는 아직도 사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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