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계획 실패로 뒤바뀐 생사”


광주에서 의문의 사망사건이 발생됐다. 20대 여성이 차량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숨진 채 발견된 것. 당초 경찰은 단순한 사고사나 자살로 생각했으나 이내 착각임을 깨달았다. 숨진 여성의 가방에서 ‘살인계획서’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살인계획서에 따르면, 그녀는 질식사를 위장한 살인을 계획 중이었고, 자신은 산소마스크를 이용해 죽음의 위기에서 모면할 생각이었다. 정황상 숨진 여성이 살인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도리어 본인이 변을 당한 셈이다. 그녀가 살해하려 했던 남자는 “죽을 뻔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사건 발생 직후까지 함께 차량에서 숙면을 취했으나 결정적인 순간 그 남자는 겨우 빠져나왔던 것. 이로써 사건은 마무리 단계에 돌입해야 하지만 의혹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숨진 여성이 살해하려했던 남자의 진술이 쉽게 납득할 수 없어서다. 경찰 역시 수사를 확대하고 나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유품에서 동업자 살해방법 기록한 문서 12장 발견돼 파문
살인계획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도리어 변을 당해 질식

사건이 발생한 것은 지난 13일이었다. A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이날 오후 8시께 광주 동구 용산동 모 테니스장 인근 도로에 주차된 포텐샤 승용차 안에서 숨진 서모(28)씨를 발견했다. 발견 당시 서씨는 운전석과 보조석 사이 뒤쪽에서 엎드려 한쪽 손을 뻗고 있었다. 머리에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나 산소통은 이미 비어있던 상태였다. 사용하지 않은 산소통 8개가 뒷좌석 바닥에 놓여져 있는 것으로 보아 서씨는 산소통을 교체하기 위해 뒤쪽으로 손을 뻗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차량 소유자이자 사건의 신고자인 A(41)씨는 자신 역시 “죽을 뻔했다”고 말했다. 술에 깨기 위해 목욕탕을 다녀왔더니 서씨가 숨져 있더라는 것. A씨에 따르면 그는 12일 저녁 서씨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두 사람이 얽힌 채무관계에 대해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차량이 발견된 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한 식당에서 두 사람은 술을 마셨고, 이때 A씨는 서씨가 권한 요구르트도 마셨다. 물론 서씨도 요구르트를 3개나 마셨다.


“목욕탕 다녀와서 보니 사망”


하지만 이후의 상황에 대해 A씨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술을 마시면서 너무 졸렸다. 한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정신을 차려보니 승용차 운전석이었다”고 말했다. 운전석 문이 열리지 않자 조수석 문을 통해 가까스로 빠져나온 A씨는 서씨를 차량에 그대로 두고 목욕탕을 다녀왔다. 차량 밖으로 빠져나올 때 열쇠를 두고 나왔고, 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 “서씨가 설마 죽을 줄은 몰랐다”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그러나 숨진 서씨의 가방에서 A4용지 12장 분량의 문서와 비닐을 발견되면서 사건의 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서씨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문서에는 질식사를 위장한 살인계획이 담겨 있었던 것. 살해 대상도 서씨가 사망 전까지 함께 있었던 A씨였다.

경찰 조사 결과 서씨는 보험설계사 일을 해오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안경점 운영을 준비했다. 당시 안경테 공장을 운영하고 있던 A씨와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서씨의 꿈은 이내 산산조각이 되고 말았다. A씨의 공장이 부도가 났기 때문이다. 덕분에 투자한 돈 4,000여만원도 모두 잃었다.

결국 서씨는 신용불량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A씨에 대한 원망이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 이후 서씨는 A씨에게 생명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 역시 서씨의 요구로 아내를 보험금 수령자로 해 생명보험 2건을 계약한 사실을 인정했다. 결과적으로 서씨는 A씨에게 투자한 돈을 생명보험금을 통해 되받고자 살인을 계획했던 것. A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서씨는 컴퓨터로 작성된 문서에 군데군데 볼펜으로 수정하면서 심혈을 기울였다.

서씨가 구상한 살해방법은 간단했다. 첫째, A씨에게 수면제가 든 요구르트를 마시게 한다. 둘째, 차량에 히터를 틀어놓고 드라이아이스를 놔둬 질식사 시킨다. 이를 위해 차량 문이 열리지 않게 한다. 혹 실패하면 비닐을 씌워 숨지게 한다. 셋째, A씨가 숨지고 나면 A씨 명의로 가입한 2개의 생명보험에 보험금 2억5,000만원이 지급된다. 이 계획대로라면 서씨는 2년 전 잃은 돈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서씨는 A씨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함께 차에 머무는 동안 산소마스크를 착용해 죽음을 모면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질식사를 피하기 위해 산소마스크를 쓰자. 경찰수사에 잘 대응하자”라는 내용이 문서에 적혀있었던 것. 그러나 서씨는 산소마스크를 쓴 채 사체로 발견됐다. 정황상 서씨가 살인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도리어 본인이 변을 당한 셈이다. 산소마스크를 쓰고 잠이 든 서씨가 용량이 작은 산소통의 산소가 떨어지는 바람에 질식사한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의혹은 여전하다. A씨의 진술에 의문점이 끊이질 않고 있다. 가장 먼저 A씨는 서씨의 살인계획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서씨에게 빚을 지고 있는 A씨가 생명보험 가입을 서씨로부터 강력하게 권유받았던 만큼 이를 수상히 여길 수 있었을 터. 살해동기가 성립되기 때문에 경찰 역시 서씨가 살인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계획이 탄로돼 본인이 위험에 처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A씨의 진술에서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차량에서 일어나 목욕탕을 갈 때 “서씨가 산소마스크를 쓴 것을 보지 못했느냐”는 경찰의 물음에 A씨가 “모르겠다”고 답한 부분이나 “차량 밖으로 나올 때 열쇠가 안에 있고 문이 열리지 않아 서씨를 그대로 두고 술을 깨기 위해 목욕탕을 다녀왔다”는 얘기가 터무니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보험금 둘러싼 미묘한 관계


더욱이 주차된 차량 문은 밖에서 저절로 잠길 수 없다는 점에서 A씨가 거짓으로 진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A씨가 서씨의 죽음을 방관했다는 설명이다. 서씨의 가족들도 이를 수상히 여기고 있다. A씨에게 받을 돈이 이자를 포함해 1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A씨가 서씨의 살인계획을 알지 못했다하더라도 A씨의 부인은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게 경찰의 생각이다. 문서에 따르면 서씨는 보험 수령금 일부를 받는다는 가정 하에 살인계획을 실행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즉, 보험금 수령자인 A씨의 아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경찰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씨의 유품에서 살인계획서가 발견된 것은 사건의 발단을 의미할 뿐 죽음의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선 서씨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밝히는 게 관건이다.

경찰은 서씨의 사체에 외상이 전혀 없어 질식사로 추정하고 있지만, 제기되는 의혹이 많은 만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하는 한편 병원에서 치료 중인 A씨에 대해서도 향후 다각적인 조사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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