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취업‧육아 등 전방위적 개선 필요 봇물
세대별‧직종별 모두 “정치 안정” 한 목소리

격랑에 휩싸인 대한민국. 탄핵정국은 국론을 분열시켰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민낯을 드러낸 정치를 개탄했다. 10대부터 60대까지, 시장 상인부터 전문직 종사자까지. 세대와 직종을 불문하고 “정치 안정”이 시급하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교육과 취업, 결혼, 육아, 팍팍한 살림살이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현장에서 우리 이웃이 토해내는 대한민국 정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민주신문=강소영 기자]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정치권에 대해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하루 빨리 정상화가 돼야 한다는 외침과 함께 ▲교육 ▲육아 ▲경기 회생 등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국민들은 또 대한민국 정치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개탄했다. 또 차기 정권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현실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본지가 7일부터 12일까지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별, 직업별로 다양한 계층의 국민 50명을 만나 대한민국 정치 현주소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 결과, 이들 모두 앞서 언급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세대별로 보면 10대는 틀 안에 갇혀 창의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교육현실에 대해 토로하며 “대학에 가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였다. 20대는 대학 등록금과 취업에 대한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정치권의 일자리 정책은 양질의 일자리라기보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데 그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사회 진출 연령이 높아지면서 30대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특히 결혼 적령기의 30대 여성들은 아이를 낳기가 무섭다며 정치권에서 나오는 육아 정책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40대는 자녀 교육과 결혼에 대해, 50대와 60대는 명예퇴직과 노후에 대해 적지 않은 고민을 하고 있음을 토로했다.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돈’과 결부돼 있었다. 누군가는 ‘돈’과 ‘정치’가 어떤 연결고리로 묶여 있는 것이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삶에 대한 자조(自嘲)로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50대 한 여성은 “국회를 보면 한심하다. 결국은 좌와 우로 나뉘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면서 “국민은 없다.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고민이 깊다. 대한민국 정치는 실종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암울한 미래

7일 오후 4시께. 5호선 우장산역에서 주택가 쪽으로 들어가는 상‧하행 2차선 도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 학교 밀집 구역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양떼처럼 교문을 빠져나왔다. 팔짱을 끼고 무리지어 저마다 ‘하하호호’ 하며 교문을 나서던 기자의 학창시절을 떠올렸건만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워 보였다.

수연이(가명,여/19)는 이제 막 고3이 됐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 상황을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자 그는 “학생들은 자기주장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학생들에게도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저희 집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편인데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한다”며 “우리가 보기에도 세상이 어지러워 보이는데 과연 지금 정치인들이 잘하고 있으면 이런 세상이 왔을까 싶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3 남학생 정군(가명)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정군은 “만18세 선거권에 관심이 있다”면서 “선거연령이 낮아지면 한 표를 행사함으로써 학생도 자신의 의견을 나타낼 수 있는 것 아닌가? 당연한 권리인데 그걸 국회에서 동의하네 마네 하는 것이 웃기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지난해 말까지 선거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점쳐졌다. 그러나 올해 1월 이를 반대하는 보수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법안 개정은 어느새 유야무야되는 눈치다. 반대하는 이들은 “공부에 매진해야 한다”, “독자적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이에 대해 정군은 “비선실세를 키운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건 어른들이 아니었냐”고 지적했다.

현재 187개국 중 144개국에서 18세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고 외국에서는 실제로 어린 나이에 정치로 나가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이는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정군은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던 유관순 열사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학생이라고 해서 공부만 하란 법은 없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군과 같은 반 친구인 유군(가명)은 “대학을 들어가는 것도 문제지만 대학 등록금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군은 “주변 친구들의 누나나 형들을 보면 다들 과외하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정신이 없더라”며 “대학에 가도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버려야 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만약 대학에 가면 제 관심사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좋긴 하다”면서도 “두 살 터울 형의 대학 등록금으로 부모님이 고민하시는 걸 보면 손을 벌릴 수도 없을 것 같아 조금 막막하긴 하다”고 말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소득 8분위 이하 대학생 중 ‘든든 학자금’ 미상환자는 2012년 1104명에서 2015년 7912명으로 7배 정도 늘어났다. ‘든든 학자금’은 취업 후 상환하는 방식이지만, 미상환자는 여전히 늘어나고 있다. 이는 결국 대학교 졸업과 취업을 위해 학자금을 빌린 이들이 든든하지 않은 미래에 놓여있다는 방증이다.

밥그릇 싸움

대학을 갓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이송이(가명,여/24)씨는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토익 문제집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취업준비생으로서 가장 막막할 때는 “집안의 눈치”라며 “곧 정년을 앞두고 퇴직하실 아버지의 눈치가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정치 이슈에 대해 묻자 “기본적으로 살아가는 것에 있어 먹고 사는 게 문제지 않나, 정치인들은 먹고 살만하니 밥그릇 지키겠다고 싸우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그걸 지켜볼 겨를이나 있겠나”라며 “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잘 안돼서 토익점수부터 올려야겠다 싶었다”면서 눈길을 토익책으로 가져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청년층(15∼24세)의 실업률은 10.7%로, 전년(10.5%) 대비 0.2%p 올랐다. 청년층 실업률은 2011년 9.6%에서 2012년 9%로 떨어졌다가 2013년 9.3%, 2014년 10%, 2015년 10.5%에 이어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실업률과 미취업자 비율이 상승하면서 취업을 포기하는 이들도 늘고 있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대선후보들도 젊은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일자리 공약을 앞세우며 저마다 ‘일자리 대통령’을 외친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월18일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4차 포럼에서 “의료, 교육, 보육, 복지 등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부터 늘리겠다”고 밝혔다. 또 노동시간 단축,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80%까지 끌어올리는 ‘공정임금제’ 시행 최저임금의 점진적 인상 등을 내걸었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5년 한시적 고용보장 계획을 실시하고,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에게 대기업 임금의 80% 수준을 보장‘하는 안을 내놨다. 또한 안 전 대표는 정부 재정을 투입해 공공일자리를 늘리자는 문 전 대표의 공약에 대해 “옳지 않은 주장”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시장을 지낸 바 있는 안상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예 ‘일자리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대선 출마를 했다. 안 의원은 ‘300만 개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일자리 도시 건설’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슈퍼우먼

서울 통인시장 근처 옷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김연희(가명.여/32)씨는 패션 관련 업체에서 3년을 근무하다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는 “결코 쉽지 않다”며 “만약 100군데 이력서를 내면 연락 오는 곳은 5군데가 될까 말까”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차기 대통령이 일자리 정책 같은 청년 정책은 확실하게 해줬으면 좋겠다”며 “여자로서 육아 정책도 안 들여다볼 수 없더라. 회사에서 육아휴직도 못쓰게 하는 경우도 봤고, 제 나이 또래들은 대부분 아이들을 집에 혼자 두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근데 엄마들은 일도 하고 아이 양육도 해야 하고 살림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해도 아이는 낳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말처럼 양육과 살림, 일을 병행하는 이들을 슈퍼우먼이라고 칭한다면 대선주자인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노동정책 공약으로 ‘슈퍼우먼 방지법’을 내놨다. 이는 맞벌이부부 시대를 넘어 맞돌봄 시대에 여성과 남성의 역할 구분이 없는 공동책임을 내포하고 있다. 출산휴가를 120일, 현행 유급 3일인 배우자 출산휴가를 30일로 확대하고, 육아휴직 급여를 통상임금 60%로 인상, 상한을 150만원으로 현실화하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강서구에 위치한 한 미용실에서 1년째 근무 중이라는 이수민(가명,여/31)씨는 최근 결혼을 고민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쉽지 않은 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3년 사귄 남자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는데 남자친구 부모님이 사시는 집으로 들어갔다가 돈을 모아서 나오기로 했다”며 “알콩달콩 둘이 살고 싶은데, 집이 남아돌아도 너무 비싸 내가 살 집은 없더라”고 푸념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변하라고 뽑아준 것 아니냐. 사람들 일자리가 없으니 돈이 없고, 그러니 집을 살 수도 없고 결혼도 못하고….N포 세대를 만든 8할은 잘못된 정치에 있다고 본다”고 비판했다.

새로운 출발

안국역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정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면서도 “광화문 사거리에서 촛불과 태극기집회가 자신들의 주장만 옳다고 하는데 참 그렇더라”며 “대통령을 만들어 놨는데 그렇게 뭉개야만 하는지도 가슴이 아프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잘못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좋은 쪽으로 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마음이 아닐까”라고 언급했다.

만나본 사람들 대부분은 정치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과 함께 하루 빨리 나라가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나타냈다. “잘못한 것은 벌을 받아야 한다.”, “빨리 정리하고 경제부터 살려라.”, “이제 정치는 신경 끄고 싶다.” 등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은 봄날의 새싹처럼 움을 틔우고 있었다.

통인동에서 화장품 매장을 운영하는 정전희(가명, 여/40)씨는 광화문에서 청와대 앞으로 행진하는 촛불행렬을 보면서 “탄핵정국이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하고 무심하던 젊은 세대들을 서울 한 가운데로 모이게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상황이 좀 혼란스러워도 정권이 바뀌어서 지금 어지러운 사태를 다 깨끗이 해결했으면 좋겠다. 정치는 생물이라 변화와 변수가 있다지만 나라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제주도에 터를 잡고 살고 있는 예술가 겸 사업가인 이선희(여/32)씨는 대선 정국에 대해 “선거철만 되면 다 달콤한 말로 공약을 내건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오르면 책임감이라는 말은 온데 간데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 성산 쪽에 제2공항이 생긴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 배경에도 최순실이 연결돼 있는 것 같다고들 수군댄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상황임에도 추측이 난무하면서 사실화 돼가는 상황”이라며 “이런 현실을 벗어나서 희망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으로 들릴 수 있는 날들이 왔으면 좋겠다. 살맛나는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고 밝혔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