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서울 근교에서 모였다. 터 잡고 철원에 사는 친구들과 서울, 수도권에 흩어진 친구들이 모처럼 갖는 모임이다. 참석자 명단을 사전에 보니 30년 넘게 보지 못한 친구들 이름도 눈에 띄었다. 

대다수의 사람이 모임을 앞두고 뭘 입고 나갈까 고민한다. 방송과 강연을 하는 필자는 복장에 꽤 신경을 쓰는 편이다. 게다가 성격도 소심해 무엇을 입을지 며칠전 부터 고민하거나, 운전 중 구김이 가는 게 싫어 차에 싣고 다니다 갈아입기도 한다. 논에 나가는 복장으로 모임에 나오는 일명, 패션 테러리스트 친구들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임을 앞둔 옷 고민은 담대(?)한 남성에 비해 여성에게 특히 심한 편이다.

‘지’ 자로 끝나는 여러 고민이 있어 무엇을 입을지, 찰지, 낄지, 멜지와 심지어 모임에서 외투를 벗을지 까지 고민한다. 지천명이 넘어도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낯을 많이 가린다. 봄도 멀지 않았고 실내가 따뜻함에도 한 친구는 두꺼운 외투를 벗지 않는다. 살이 쪄서 창피하다는 게 그 이유다. 살 빼고 다음에 날씬한 모습으로 나타날 거라고 하자 짓궂은 동창놈이 얼굴은 어쩔건대? 라고 맞받아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반갑다고 들이대는 셀카 또한 그 여성에겐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자신이 비만하다고 느낄수록 움츠러들고 무엇인가 회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젊은 여성들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귀여운 척 볼 바람을 빼지만, 볼살이 창대한 중년 여성은 그것도 쉬운 게 아니다. 이래서야 어디 인생이 즐겁고 모임이 기다려지겠는가? 대중 앞에 당당하게 표현하고 고민은 집에 가서 해도 될 텐데 타인의 가슴에 스밀 정도로 난처함이 느껴진다. 그 여자 동창 땀띠라도 나지 않았는지 걱정스럽다.

그러고 보니 필자가 남의 여자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취향이 까다로운 필자는 본인의 옷을 직접 고르는 편이다. 물론 옷을 잘 입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 옷만 사 들고 가기 미안해 여성복 매장을 기웃거리는데 사실 남성들은 여성의 옷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특히 55나 66으로 대변되는 여성복 치수는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다. 그럴 땐 옷가게 주인의 체형을 살피거나 주위에 아내와 비슷한 체격이 있는지 둘러본다. 아내와 비슷한 체형의 소유자가 발견되면 턱 짓으로 조심스레 가리킨다. 

이전엔 다소 통통한 여성을 고르면 되었지만, 이제는 많이 통통한 여성을 찾아내야 한다. 팔아야 하니 옷가게 주인은 자꾸 자신의 체격과 아내를 비교해 보라고 종용한다. 주로 가슴과 복부 부위를 관찰해 정답을 내야 하는데 이게 영 대답이 곤란하다. 비슷하다고 하지 않으면 둘 중의 한 사람은 뚱뚱하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크기를 결정짓고 계산을 하려면 점주는 결제를 뭐로 할 거냐 물어 온다.

옷값을 결정짓는 요소가 상표나, 재료, 공정이 아니라 카드냐, 현금이냐에 달려 있는데 1~2만 원은 예사로 차이가 난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대, 여섯 장을 척척 꺼낼 여력이 되지 않으면, 카드회사와 가맹점의 수수료를 대신 부담하는 봉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신용카드를 쓸 경우엔 가격도 제대로 깎을 수 없다. 

한국인도 이렇게 당하는데 중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은 오죽하랴. 집에 와서 아내에게 옷을 입혀 보니 매장에서 마네킹이 걸치고 있던 옷이 맞나 싶다. 밝은 조명 아래 마네킹이 입고 있을 땐 정말 예뻤는데 말이다. 분명 같은 옷인데 색감도 떨어지고 자세도 잘 나오질 않는다. 남편의 성의를 봐서 뭐라 하진 않지만, 아내는 썩 표정이 좋질 않다. 끓는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은 필자가 내민 영수증이다. 

남자가 여자 옷 사러 갔으니 바가지를 썼네, 어쩌네! 잔소리를 한다. 듣기 싫어 안방으로 도망친 후 낮에 산 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 본다. 근육이 울퉁불퉁하고 키가 늘씬한 오빠 마네킹은 거기에 없다. 그저 그 옷을 벗겨 내 옷이라 입고 있는 후줄근한 장년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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