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 동원 강제 할당해 농협 ‘잔치’


 

▲ 지난 10월 13일 전국농협노동조합은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음" 행사를 규탄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농협은 자체가 파워다. 농협이 힘이 센지, 대통령인 내가 힘이 센지 아직 모르겠다.”
지난 2003년 2월 4일 대통령 당선 뒤 전국 순회 토론회를 가진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지역 대토론회에서 “농협은 전국 각지에 조직을 두고 있어 그 자체가 파워”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표현대로 현재 농협중앙회는 설사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다. 신용사업은 물론이고 경제사업까지 집어삼켜 비대해 질대로 비대해진 농협중앙회. 그 이면엔 농민의 ‘피눈물’과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 이에 본지는 5차례에 걸친 기획시리즈를 통해 농협중앙회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한다.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가 주최하고 농협중앙회·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관한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가 지난 10월 13일 오후 2시, 서울 송파구 잠실동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화려한 개막식을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와 ‘1사1촌 운동’에 참여한 기업인·마을 대표, 각계 인사 등 8만 여명이 대거 참석했으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 설치된 농촌 체험관을 연결해 TV생중계 했다.

행사에 앞서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도시민들과 농촌마을 주민, 그리고 기업체와 각급 단체 임직원들이 함께 한 이번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는 도시민에게는 농업농촌의 소중함을 농업인에게는 도시민들의 고마움을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름뿐인 ‘농촌사랑’

이보다 앞선 지난 10월 10일 오전 11시 30분, 지역농협 소속 노동조합인 전국농협노동조합(이하 농협노조)은 서울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신축청사 앞에서 “농협중앙회가 기획하고 있는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규탄한다”며 “농민을 기만하는 생쇼는 집어치우고 우리 지역농협 노동자들과 함께 민족농업사수 투쟁에 앞장서자”고 말했다.

이날 농협노조 선재식 위원장은 “수확기를 코앞에 두고 있어 한창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농협중앙회는 어떤 영문인지 서울 잠실에서 대규모 행사를 진행하려 한다”며 “이 행사를 위해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에 지도문서를 발송, 교통비를 대줄 테니 할당된 머릿수를 채우라고 윽박지르고 있다”고 성토했다.

선 위원장은 이어 “농업관련 정국은 현재 매우 위급한 상황”이라며 “농민이 보유하고 있는 쌀 재고량이 넘쳐나 농심이 썩어 가는 가운데 농협중앙회가 언제 한번 삶의 벼랑 끝에서 농약을 마셔야 하는 우리 농민 형제자매를 위로한 적 있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그는 또 “협동조합은 사업의 목적이 영리에 있지 않고 경제적 약자간의 상호부조에 있음은 백과사전에도 나와있는 상식적인 내용”이라며 “농협중앙회가 이름 값을 제대로 할 때까지 우리는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농협중앙회 농촌지원부 오세헌 단장은 “어느 기업이든 큰 행사를 기획할 땐 시기를 잘 맞춰서 하는 것이 기본 아니냐”며 “행사를 진행하면서 비가 오거나 한다면 누가 오겠느냐”고 대수롭지 않는 듯 이야기했다.

지역농협 노동자 강제 참석 여부와 관련해 오 단장은 “말도 안 된다”며 “이들 농업인들은 이번 행사가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참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이번 행사에 사용된 행사지원비 및 진행비와 관련해 “그런 것에 대해 말을 한다는 것 가체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회사 내부 사항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못박았다.

전국농민총연맹 서정길 부의장은 “농민이 살아야 농협이 산다는 것을 농협중앙회는 똑똑히 알아야 한다”며 “지역농협노동자와 농민들만의 일방적 희생만을 강요하는 농협중앙회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사무금융연맹 곽태원 위원장 또한 “협동조합은 절대 금융기관이 아니다. 적자가 나는 한이 있어도 농민을 지원해야 하는 것이 협동조합이 해야 할 일”이라며 “농협중앙회는 잔치를 벌일게 아니라 농민의 편에 서서 농업을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하연호 최고위원은 이날 “쌀값이 3만원대로 떨어져 농민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축제가 웬 말이냐”며 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대해 규탄했다.

“농사짓지 말고, 행사 참여해”

농협중앙회가 대규모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준비하면서 일선조합장은 물론 이장들까지 동원해 참여를 독촉하고, 신원조회를 하는 등 각 지역농협에 ‘초청대상 할당인원수’까지 배정해 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0월 12일, 본지는 농협중앙회가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대규모 행사를 앞두고 지역농협에 ‘이번 행사에 참여해야할 할당인원’이 명시돼 있는 ‘농협중앙회 내부 지도문서’를 긴급 입수했다.

이 내부 문서에는 버젓이 농협중앙회장이라고 적혀있어 정대근 농협중앙회장이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자신이 개최한 행사를 성황리에 마치기 위해 묵인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지난 8월 초부터 준비해 왔다.

‘시도지역본부별 초청 대상자’ 문건에 따르면 ▲경기(지역), 7390명(자매결연 마을, 농업인, 기관, 단체 할당 인원수), 610명(각 지부장, 지점장, 조합장, 지도여성복지담당 할당 인원수), 8000명(각 지역본부별 총 할당 인원수) ▲강원, 3693, 307, 4000 ▲충북, 3717, 283, 4000 ▲충남, 5491, 509, 6000 ▲전북, 4524, 376, 5000 ▲전남, 6873, 627, 7500 ▲경북, 6854, 646, 7500 ▲경남, 6955, 546, 7500 ▲제주, 별도검토, 별도검토 ▲부산, 2908, 92, 3000 ▲인천, 2913, 87, 3000 ▲울산, 1937, 63, 2000 ▲서울, 별도검토, 168, 별도검토 ▲대전, 1936, 64, 2000 ▲광주, 1935, 65, 2000 ▲대구, 2407, 93, 2500명으로 농협중앙회는 각 지역농협에 공문을 띄워 총 6만 4000명의 지역농협 노동자들을 강제 참석토록 했다.

농협중앙회 언론홍보팀 전상배 과장은 “회장님 이름으로 공문이 발송됐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소리”라며 “각 해당 부서에서 공문을 발송했으면 했지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발뺌했다.

잔치마저 농민희생으로…

지난 8월 25일 농협중앙회에서 지역농협으로 일괄 발송한 지도문서 가운데 농협중앙회가 ‘○○군지부’로 보낸 문건에는 ‘관련호에 의한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적극 참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로 시작해 ‘○○군 초청대상 총 520명, 참석 대상자 명단 9월 5일까지’라고 끝맺었다. 조합별 초청인원 수는 조합원 비례에 의해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농협경남군지부에서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참석해야 할 초청인 할당 수는 사무소별로 ▲창녕(사무소명), 77(할당인원 수) ▲남지, 40 ▲고암, 40 ▲성산, 40 ▲대합, 40 ▲이방, 40 ▲유어, 40 ▲대지, 40 ▲계성, 40 ▲영산, 77 ▲부곡, 40 ▲군지부, 2로 총 516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위원장은 농협중앙회가 지역농협에 일괄 발송한 지도문서와 관련해 “농협중앙회는 이미 일선조합장은 물론 이장들까지 동원해 농민들에게 행사참여를 독촉하고, 신원조회를 하는 등 난리법석”이라며 “‘빗자루도 손을 빌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바쁜 추수철에 ‘아닌 밤에 홍두깨’도 아니고 갑작스럽게 10만명을 모으라는 것은 철딱서니 없는 일”이라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문 위원장은 이어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추수철에 농민들을 동원하는 것이 아닌 농협중앙회가 ‘쌀협상국회비준’과 ‘쌀값폭락’에 대해서 어떠한 입장표명과 노력도 없었다는 것”이라며 “농협중앙회는 지금이라도 엉뚱한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연기하고 쌀협상국회비준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라”고 촉구했다.
박지영 기자
pjy0925@naver.com


“농협중앙회, 돈 잔치 그만”

전국농협노동조합 선재식 위원장 인터뷰

지난 10일 오전, 서대문구 농협중앙회 신축청사 앞에서는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규탄하는 전국농협노조 결의대회가 열렸다. 다음은 이번 대회를 주관한 전국농협노동조합 선재식 위원장과의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결의대회를 열게 된 계기가 뭔가.
▲농협중앙회의 기만적인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농민과 지역농협을 희생양 삼아 돈놀이하는 맛에 중독된 농협중앙회가 그 거대한 도농상생 한마당을 펼치는 데는 또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 부었겠는가. 그 돈은 결국 농민과 지역농협노동자들의 피와 땀이다. 그래서 더더욱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농협중앙회 신관 앞에 설 수밖에 없었다.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에 대한 농협노조의 입장.
▲처음에 농협중앙회가 잠실 주경기장에서 10만여 명을 모아놓고 ‘농촌사랑’을 외친다고 했을 땐 그냥 ‘어이없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에 공문을 띄워 ‘이 행사에 높으신 분들 참석하니까 옆에서 들러리 서라’며 ‘버스를 대줄 테니 머릿수를 채우라’고 강요했다. 이 바쁜 농번기에 뜬금 없이 농촌사랑을 외치기 위해 왜 엄청난 돈을 들여 이런 생색내기 행사를 준비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 ‘의도’가 뭔가.
▲이번 ‘농촌사랑 도농상생 한마당’ 행사는 농촌사랑범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정대근 농협중앙회장·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장)가 주최하고, 농협중앙회(정대근 회장)가 주관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경제 5단체 대표, 정·관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하는 이번 행사를 통해 정치적 야심이 있는 정대근 회장은 ‘눈도장’을 찍으려는 속셈 아니냐.

-농협중앙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지금 농업관련 정국은 매우 위급한 상황이다. 농촌과 농민은 박물관이나 갤러리에 모셔져야 할 구시대의 유물처럼 취급되고 있다. 농촌중앙회가 진정 농촌을 사랑하고, 도시와 농촌이 상생하기 원한다면 잠실에서 돈 잔치를 할 것이 아니라 지방농협 노동자와 농민들과 함께 힘을 합쳐 자꾸 홍콩에서 수입쌀을 사먹으라고 강요하는 WTO를 박살내야 할 것이다.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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