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자 동경에 지성인 황폐화


우리나라 대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 진학률이 80%를 넘어설 정도로 대학교육이 보편화됐지만, 정작 교수와 학생 등 이해 관계자들은 대학교육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취업에 연연한 나머지 대학의 중요한 역할인 연구와 교육은 뒷전에 놓인 셈. 게다가 국내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학업을 중단하는 대학생마저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학의 내실은 더욱 심각하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으로 꼽히는 서울대는 물론 서울의 주요 대학들에서도 각종 비리와 의혹으로 구설에 올랐다. 이에 대학 구성원들은 크게 동요하고 있는 상황이다. 논란을 빚고 있는 대학들의 현실태를 보고한다.


부적격 당선·담합· 횡령·사찰의혹으로 점철된 지성의 전당
교내 구성원들의 소통 단절 심각, 학교와 학생간 맞고소 불사


법인화를 앞둔 서울대는 제25대 서울대 총장 선거와 제54회 총학생회장 선거의 잇단 파행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투표율 조작 논란에 시달리던 총학생회 선거는 지난 2일로 세 번째 무산되는 결과를 낳았고, 총장 선거에선 지난 3일 행정대학원 오연천 교수가 유효투표 과반인 52.3%를 얻으며 선거 1위에 올랐으나 임명 과정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오 교수가 1987년부터 2001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5건 11편이 학술지와 정기간행물 등에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렸다. 오 교수 역시 내용을 덧붙이거나 낱말 표현을 바꾸는 식으로 논문을 재탕한 사실을 일부 시인했다. 이에 따라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다음달 중순까지 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만약 이중게재가 사실로 인정될 경우, 오 교수는 낙마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서울대 총장 선거 ‘후폭풍’ 예고


문제는 서울대 총장 선거에 출마한 다른 후보 또한 자질을 둘러싸고 의혹이 제기돼 왔으나 공론화되지 않은 채 대학 측에서 이를 조용히 덮으려 했다는 것이다. 오 교수와 함께 총장 후보에 올랐던 법학부 성낙인 교수 역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총 5건 10편이 이중게재 됐다는 의혹을 받았다. 더불어 논문을 중복 게재해 연구비를 부정 수령했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상황. 결과적으로 총장 후보에 오른 3명 중 2명의 후보가 의혹을 받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서울대에선 후보자들의 자질 검증은커녕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를 보여 왔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상당수 교수들은 여전히 이 문제를 묵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따라서 서울대는 향후 ‘부적격 당선’이라는 새로운 논란과 함께 후폭풍이 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부당거래 논란에 휩싸인 한양대와 홍익대는 서로 미묘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야산을 둘러싸고 거액의 시세차익이 밝혀지자 건설사와 서로 담합을 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는 것. 당초 6만1,274.8㎡에 이르는 이 땅은 한양대 재단인 한양학원의 소유였다. 재단 전입금 확충 등을 위해 매각을 검토하던 한양학원은 2006년 8월18일 중소 건설업체인 S사와 H사에 41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두 건설업체는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왔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난 후 상황은 달라졌다. 건설업체는 그해 11월28일 한양학원에 잔금을 치르고 소유권을 넘겨받자 당일 홍익대 재단인 홍익학원에 다시 578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당시 홍익대에선 부족한 대학 부지를 확보하고 부속고교를 이전하기 위해 매입에 나섰던 것. 결국 한양학원 부지가 홍익학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건설업체는 168억원의 차익을 올리게 됐다.

이 같은 첩보를 접한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지난달 해당 건설업체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고, 현재 자금의 흐름 등을 조사하고 있다. 두 대학 역시 조사 대상이다. 물론 한양학원과 홍익학원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부동산 거래과정이 상식에 어긋난다는 게 검찰 측의 설명이다. 즉, 건설업체가 어느 한 대학과 차익을 나누는 약정을 했을 것이라는데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는 것이다.

한양학원은 이에 대해 “매각한 땅은 도시계획상 대부분 공원용지로 지정돼 있어 법인 자체 개발 및 이용이 불가한 무수익자산이었다”면서 “한국감정원의 평가를 거쳐 교육인적자원부의 허가를 받은 뒤 매각했고, 일정시간이 지난 뒤 처분재산 사후관리를 위해 해당 부지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았을 때 홍익학원에 570억여원에 팔린 것을 알았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이번 사건은 교지확보가 절실한 홍익학원과 최초 매수인인 건설업자간 담합에 의해 이뤄진 사안”이라면서 “우리 법인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홍익학원도 즉각 반박했다. 경찰 조사 등을 통해 합법적 거래임이 밝혀진 만큼 문제가 있다면 최초 거래자인 한양학원과 업체 측에 있는데 공연히 우리 법인이 엮여 불쾌하다는 게 홍익학원 측의 입장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될수록 양측 대학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두산그룹 인수 뒤 중앙대 구조조정 논란


중앙대는 기업식 구조조정에 따른 내홍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반대 집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에 대해 무더기 징계를 추진하면서 학생과 교수, 동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것. 앞서 중앙대는 반대 집회 중 교직원과 실랑이를 벌인 총학생회 김주식 교육국장을 퇴학처분했고, 타워크레인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인 노영수 독문과 학생에게 공사 지연을 이유로 2,469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뿐만 아니다. 한강대교에 올라 고공시위를 벌인 김창인, 김표석 철학과 학생을 상대로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이에 총학생회는 지난 3일 본관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집단 삭발식을 단행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중앙대분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학내 문제를 징계와 처벌로 풀려고 하는 대학본부의 반지성적인 인식과 처사를 우려한다”면서 “학생들에 대한 퇴학과 손해배상 청구를 중단하고 학생 자치활동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멈추라”고 주장했다.

중앙대 민주동문회와 이내창열사추모사업회도 기자회견을 열고 “두산그룹 인수 뒤 학생회의 활동을 존중하고 학생회, 교수, 교직원 3주체가 협조해 대학 발전을 논의해온 아름다운 전통이 깨졌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중앙대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과 교수, 동문들까지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 만큼 중앙대는 앞으로 더욱 험난한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대와 숙명여대 역시 구설에 오른 상태다. 세종대는 교직원이 공금을 횡령해 검찰이 수사에 나섰고, 숙명여대는 반정부 집회에 참여하거나 학교에 비판적인 글을 남겼던 학생들의 신상자료 등을 모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찰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라 대학의 도덕성과 자율성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양대와 홍익대의 부당거래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는 세종대의 교직원 공금 횡령 수사도 함께 맡아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 대학 시설과 직원 서모씨는 2005년부터 3년여 동안 각종 교내 공사에 쓰인 돈을 부풀리거나 하지 않은 공사의 대금을 업체에 지급하는 수법으로 공금을 빼돌렸다.

뿐만 아니다. 시설 공사 업체 선정 과정에서 특정 업체에 공사를 몰아준 흔적도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3월에서야 밝혀졌다. 그간 세종대는 재단 내 다툼과 학내분규 격화 등으로 불안정했으나 최동호 전 세종사이버대 총장이 이사장으로 선출되면서 5년 만에 학교가 정상화되자 의문점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5년 공백을 메우는 과정에서 학교재단 측은 2005년 이후 유독 건물 관리비가 많이 지출된 것을 의심하고 건물 관리비 지출 명세 등의 자료와 함께 검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학교 관계자는 “관련 서류만 들여다봐도 돈이 새나가고 있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면서 “대개 비리를 감추기 위해 교묘한 수법을 동원하는데, 단기간에 학교 공금을 빼돌리는 데 거침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사실관계 확인에 나선 검찰은 최근 사표를 내고 잠적한 서씨를 출금금지시켰다.


주인 없는 사찰 문건에 교직원과 학생 ‘끙끙’


숙명여대는 상대적으로 사태가 진정된 모습이다. 지난해 11월 한 학생이 학생회관 1층 복도에서 학교 직원이 사무실 이사 과정에서 버린 것으로 보이는 ‘문건’을 발견하면서 촉발된 사찰 논란은 현 한영실 총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히려 한 총장은 “이런 일은 교육적 차원을 벗어나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나 또한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조사해서 당당히 밝히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다. 문제의 문건은 전임 총장인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이 재직하던 때에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당사자인 이 이사장 역시 “보고를 받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 전혀 모르던 일이다. 학생문화복지팀에서 학생 동향 파악 및 학생 보호 등을 목적으로 자체 제작한 자료라고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모든 책임은 학생문화복지팀이 떠안으면서 논란이 종식된 셈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