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김병건 선임기자] 보수(保守)라는 단어를 찾아보았습니다. 좋은 미풍양식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진짜 보수들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을 보호하고 사회의 규약을 지키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합니다.

통상 보수라고 하면 안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안보 또한 사회를 지키기 위한 필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비유를 하자면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고 재건축을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진보, 충분히 고쳐서 사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수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쉬운 도식일 것입니다.

필자는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혹여 지난밤 곡차를 과음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서울대 법대 수석졸업, 사법시험 또한 우수하게 통과해 판사가 되고, 10년 후 미국으로 가서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 그리고 국내에 로펌의 효시인 법무법인 세종 설립에 참여하고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세계한인변호사회 회장까지 지내셨던 분의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상상하기도 힘든 단어였습니다. 

"아스팔트가 피로 물들 것", “내란 상태로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들이 그분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막말과 고함은 그냥 부수적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재판부에 대한 신뢰는 없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가 참여한다는 소위 태극기 집회는 어떤가요? 이제는 군이 나서야 한다는 반(反)헌법적인 주장이 난무합니다. 이쯤 되면 몇몇 강성 친박 의원을 제외하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원은 한낱 ‘양아치’ 내지는 ‘폭력배’, 잘해야 ‘빨갱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전체 집단에서 한 가지 정도는 잃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식의 주장에 영국의 대표적인 지성인이자 철학자인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는 ‘열린사회의 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전체주의적 발상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보수는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전체주의’나 ‘독제정권’을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똘레랑스(tolerantia)를 강조하는 프랑스가 유독 2차 세계대전 이후 수많은 독일 부역자를 처단했던 근거는 소위 ‘앵 똘레랑스(Un tolerantia)’라고 합니다. 

즉,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거나 보편적 인류애에 대한 도전은 관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앵 똘레랑스의 범주에는 전체주의 신봉이나 독재정권도 물론 포함됩니다.

기억

필자는 ‘태극기 집회’를 바라보면서 걱정되는 상황이 데자뷔처럼 다가오는 뉴스가 있습니다. 외신에 관심이 많으셨다면 기억하는 분들도 많을 겁니다. 2004년부터 2005년, 태국 방콕의 소위 ‘노란 셔츠’ 시위대는 부정선거와 관권선거 등 ‘탁신 정부’의 정치적 탄압에 저항했습니다. 시위대는 방콕 국제공항을 점령합니다. 태국의 주요 수입원인 관광산업은 마비됐고, 2006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탁신 총리는 축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잠깐이었습니다. 탁신 총리를 추종하는 농민과 노동자 계층은 탁신의 색인 ‘붉은 셔츠’를 입고 시위를 시작합니다. 이들은 2009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진 ‘파타야’에서 열리는 ‘아세안 지도자 회담’이 열리는 호텔을 습격합니다. 수많은 아시아 지도자들은 호텔방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결국 회담은 취소가 됩니다.

이후 태국은 탁신의 여동생이 집권하게 되면서 10만개 이상의 웹사이트는 폐쇄되고, 언론들은 정파적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평가를 내놓고 있습니다. 물론 ‘노란 셔츠’와 ‘붉은 셔츠’ 시위대 간 물리적 충돌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노란 셔츠’ 시위대는 2010년 봄까지 반정부 시위를 다시 진행합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고, 심지어 수류탄을 시위대에게 던지는 참극이 벌어집니다. 시위대는 해산됐지만, 2011년 총선에서 탁신 총리의 여동생이 이끄는 정당이 과반을 넘는 의석을 차지하면서 다시 집권하게 됩니다.

그런데 총리가 된 탁신의 여동생 집권기간 내내 ‘노란셔츠’ 시위대는 전국적으로 저항을 이어가고, 결국 2014년 군부 쿠데타에 의해 축출됩니다. 이후 군부는 총리였던 탁신의 여동생에게 쌀 수매 비리가 있다고 하여 우리 돈으로 1조원이 넘는 벌금을 그에게 부과합니다. 이에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붉은 셔츠’ 시위대는 연일 거리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태국의 이런 정국의 불안은 주변 국가에게는 기회가 되었고, 다른 인도차이나 국가들이 수많은 외화를 유치하고 산업시설을 키워가는 동안 태국은 밑도 끝도 없는 정치적 불안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위협

필자는 오전에 동료 기자로부터 하나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강성 친박 쪽에서 야권 유력 대선주자에 대한 테러를 모의하고 있다는 비교적 구체적인 내용입니다.

이 메시지는 테러 목표가 이전 박근혜 대통령의 ‘커터칼 사건’처럼 우발적 상해 정도가 아닌 ‘완전 제거’가 목적이라는 이야기와 심지어 야권 유력 대선주자 테러가 성공할 경우, 테러리스트의 가족까지 보호해 준다는 ‘의인 프로그램’까지 있다고 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극우세력에 의한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우리 사회는 극우주의자들에 의한 테러까지 걱정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안정을 바라고 전통을 중시하면서 헌법적 가치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그래서 더더욱 공화주의자의 모습과 공동체주의자의 모습을 가진 건전하고 합리적인 보수의 사람을 찾기가 더더욱 힘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이것 또한 우리시대의 슬픔의 한 자락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유독 우리나라 극우주의자들은 개신교를 신봉하는 것 같아서 성경의 한 구절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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