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가상의 딸’에 지극정성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부부가 생후 3개월 된 친딸을 굶겨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무엇보다 이 부부는 친딸을 굶겨 죽인 대신 온라인 게임 상에서 키우는 ‘가상의 딸’ 캐릭터에 더욱 집착, 애지중지했다고 알려져 충격은 더욱 커지고 있다.
 
게임이 우선, 딸은 뒷전
 
지난 4일 경기 수원 서부경찰서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돼 생후 3개월 된 딸을 폭행하고 굶어죽게 한 혐의(유기치사)로 남편 김모(41·무직) 씨와 부인 A(251·무직)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2008년 초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만나 결혼을 한 김씨 부부는 이전부터 게임에 중독돼 있었고, 하루에 최소한 6~12시간가량을 PC방에서 보내왔다. 이 같은 생활은 결혼을 해서도 바뀌지 않았다. 서로 무직이었던 부부는 처가살이가 눈치 보여 A씨가 임신하자 수원시 세류동으로 이사를 갔다.

임신한 뒤에도 PC방에 출근 하다시피 한 A씨는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연기와 함께 생활해 왔다. 딸이 미숙아로 태어난 것도 이같은 환경의 탓이 크다.

안타깝게도 김씨 부부에게는 딸아이보다 게임이 중요했다. 지하단칸방에 살던 이들은 저녁이면 딸을 혼자 내버려둔 채 PC방에 갔고 새벽이나 아침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갓난아기에게는 분유를 하루에 6~8번 을 먹여야 하는데, 비정한 김씨 부부는 하루 한 번만 분유를 먹였다. 배가 고픈 탓에 아기는 심하게 울어댔지만 누구 한명 보살펴줄 사람이 없었다. 게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기가 울고 있으면 김씨는 시끄럽다며 아기를 폭행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아기는 영양실조로 서서히 말라갔다. 지난해 9월 24일, 이날도 김씨 부부는 밤새 게임을 하다 집으로 돌아왔고 딸이 굶어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생후 3개월만이다. 겁이 덜컥 난 부부는 경찰서에 신고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아기가 ‘미라’처럼 말라서 죽어있는 점을 의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했다.

부검결과 사망의 원인은 영양실조 아사로 밝혀졌다. 누구보다 아기가 굶어죽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김씨 부부는 처갓집으로 도주해 5개월간 잠적했지만 지난 3일 서부경찰서에 의해 잡히고 말았다. 경찰조사에서 부부의 진술을 들은 담당관들은 “처음에는 부부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의심했다”며 “어떻게 게임 캐릭터를 키우려고 친딸을 죽게 내버려 뒀는지 이해가 안간다”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친딸이 굶어 죽을 동안 N게임사의 ‘프리우스’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가상의 딸’을 양육하며 실제 딸보다 더욱 지극정성을 쏟아 붓고 있었던 것이다. 프리우스는 롤플레잉(역할수행) 게임으로, 레벨이 10이상이 되면 이용자가 ‘아니마’라는 소녀 캐릭터를 데리고 다니며 키울 수 있게 된다. 부부는 아니마에게 아이템 샵에서 현금을 들여 옷과 장신구, 무기 등을 사주며 정성껏 키워왔고 인터넷 블로그에는 육아일기까지 써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아니마에게 들였던 노력의 반만 딸에게 쏟았어도 아기는 굶어죽지 않았을 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그때는 게임에 미쳐있었다”며 “육아 스트레스 때문에 온라인 캐릭터에게 더욱 집착했던 것 같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는 법. 결국 온라인 캐릭터에 집착한 비정한 부부는 나란히 경찰서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김씨 부부를 검거한 강력4팀 관계자들은 “이렇게 딸을 키울 생각이었으면 차라리 낳지나 말지, ‘온라인 딸’은 정성껏 키웠으면서…”라며 혀를 찼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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