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빙자 문란하고 지저분한 놀음



 
최근 일부 청소년들의 집단 성폭행·구타·절도 행각 등 범죄 수위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런 행태는 고등학교로 진급하거나 청소년 딱지를 떼는 순간인 ‘졸업식 현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으로 발생한다. 과거 졸업식에서 밀가루를 뿌리거나 계란을 던지는 등의 행위는 애교에 불과했다. 최근엔 졸업자의 교복을 강제로 찢고 수심 2m의 바닷물에 빠트리는 등 졸업 축하를 빙자한 문란하고 지저분한 그들의 ‘놀음’은 이제 정도를 지나치고 있는 수준이다. 청소년들의 졸업식 뒤풀이 현장 실태를 취재했다.

2월은 ‘졸업의 달’이다. 중학생은 한층 더 성숙해진 고등학생으로, 고등학생은 청소년이라는 딱지를 떼고 사회로 한 발자국 나서게 되는 뜻 깊은 달이 바로 2월이다. 그러나 일부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일그러진’ 졸업식 뒤풀이현장은 부모와 지인들의 축하를 무색하게 할 만큼 선정적이고 지저분하다.
 
졸업식 아닌, 난장(亂場)식
 
졸업 축하를 빙자한 이 행사(?)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졸업자의 교복을 물리적 힘을 이용해 벗기고 막무가내로 찢어버린다. 옷을 찢긴 학생들은 속옷 차림으로 자랑스럽게 거리를 활보한다. 전쟁터에 참여해 훈장을 받은 군인처럼 그들의 발걸음은 기세등등하고 자랑스럽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계란, 밀가루, 케첩 등 끈적거리거나 미끈거리는 식용품들을 신체에 투척하여 SF영화에 나오는 ‘괴물’처럼 일그러뜨린다. 졸업식이 아닌, 난장(亂場)식이다.

졸업시즌이 되는 매년 2월마다 청소년들의 문란한 졸업행태는 언론과 여론을 통해 항상 지적되고, 교육당국에도 이를 제재할 것을 당부 받고 있다. 그러나 매년 지적되는 만큼, 반어적이게도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A중학교의 관계자는 “문란한 졸업식 뒤풀이는 워낙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기 예방하기 쉽지 않다”며 “학생답게 졸업식을 치를 것을 교육하고 있지만 교외에서 친구들끼리 어울려 난장 졸업파티를 하는 것은 손 쓸 도리가 없다. 졸업하면 학교와는 끝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듣지 않는다”고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졸업식이 성대하게(?) 펼쳐지고 있다. 지난 5일 서울 금천구의 A중학교 인근에서 벌어진 졸업식 뒤풀이현장 동영상이 인터넷에 빠른 속도로 퍼지면서 올해도 어김없이 막장 졸업식 뒤풀이가 재탕될 것이라는 우려를 갖게 했다.

‘말로만 듣던 요즘 졸업식’이라는 제목의 1분 20여초짜리 동영상에서는 25~30명의 남녀학생들이 한 여중생을 둘러싸고 강제로 옷을 벗긴다. 여중생이 저항하자 몇 명이 더 몰려들어 강제로 옷을 찢기에 이른다. 옷을 찢겨 황급히 속옷을 가리는 여중생의 얼굴에 나머지 청소년들은 케첩을 뿌리고 크게 웃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옷을 벗기려는 선배 여고생의 말에 피해 한 여중생은 “네 언니, 스스로 벗을께요”라고 대답한 것.

가혹행위 수준의 이 동영상에서는 졸업 뒤풀이인지 아니면 집단 성폭행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엽기적이다.

사건현장 인근의 2층집에서 캠코더로 촬영한 것으로 예상되는 이 동영상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 퍼졌고 다음날 각 방송사의 9시 뉴스를 장식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서울 금천경찰서는 지난 8일 사건현장에 있던 가해자 학생 2명을 경찰서로 소환해 경찰조사를 벌인 결과 피해 여학생은 그날 중학교를 졸업했고, 가해 학생들은 같은 학교 졸업생과 선배 고교생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날 피해 여성은 총 3명이었다. 가해 학생 중 한명은 “그날 있었던 일은 학교의 ‘전통’으로 매년 졸업식마다 반복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동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이 ‘10대들이 이런 행위를 하다니 믿을 수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는 현실을 그들은 ‘전통’이라고 한다. 네티즌들의 의견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매년 이어지는 전통일 뿐”
 
A중학교 졸업식과 같은 날 제주시의 K고등학교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졸업식 뒤풀이가 발생했다. 학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졸업식에 찾아와 면도칼 등으로 강제로 옷을 찢고 바다에 빠트린 것.

지난 5일 고모(15) 양 등 7명은 학교 졸업식이 끝난 뒤 교문을 나섰지만 모교를 졸업한 여고생(17) 3명과 남학생 2명이 이들을 막아섰다. 선배들은 따라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한 뒤 학교에 1km쯤 떨어진 인적이 드문 포구로 끌고 갔다. 그곳에서 선배들은 미리 준비해둔 면도칼과 가위 등으로 여중생들의 교복, 스타킹, 심지어는 속옷까지 찢어버렸다. 이후 선배들은 액젓과 물엿, 마요네즈를 후배들의 온 몸에 뿌리며 강제로 먹이기도 했다.

뿐만이 아니다. 선배들은 반 나체상태의 여중생들을 선착순달리기를 시켜 1등부터 차례로 포구 앞 바다에 강제로 빠트렸다. 영하기온에 수심이 2m가 넘는 바닷물에 빠진 여중생들은 배에 달린 밧줄을 붙잡고 빠져나오려 했지만 선배들이 발 등으로 밀어 나오지 못하게 막았다. 10분간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뒤풀이는 다행히 물질작업을 마치고 탈의실로 돌아오던 해녀들에 의해 마무리되었다. 이후 졸업식 뒤풀이 현장에서 경찰이 발견한 교복과 스타킹 등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치 훼손됐고, 구석에는 빈 액젓·마요네즈 통 등이 버려져 있었다.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서부경찰서는 지난 10일 가해 여고생 3명을 소환해 경찰조사를 벌였다. 경찰조사에서 여고생 B양은 “우리도 선배들에게 똑같이 당했다”며 “졸업식 뒤풀이는 매년마다 열린 관행이다. 결코 강제로 빠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부모들은 충격에 빠졌고, 딸의 말과는 정반대되는 어이없는 발언이라고 반발했다.

가해 여고생들의 처벌을 원하는 부모들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고, 경찰은 가해 고교생들을 차례로 불러들여 사법처리할 계획이다. 

제주서부경찰서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실제로 벌어지는 졸업식 뒤풀이 가혹행위는 언론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비일비재한 일이고,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고 혀를 찼다. 관계자는 “청소년들의 문란한 졸업식 뒤풀이 현장이 언론에 밝혀지게 되는 것은 정도가 심한 경우이거나 지나가던 행인에게 사진·동영상이 찍히게 될 때”라며 “경찰서에 처벌요청이 들어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더 많다. 10대가 10대 같지 않은 게 요즘 현실이다”고 세태를 지적했다.

청소년들의 졸업식 뒤풀이가 일그러진 형태로 변한 것은 4~5년 전부터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문화를 가장 빨리 흡수하는 연령층이 10대들인 만큼, 그동안 억압받았던 학교생활의 마지막 분출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경찰 및 교육자들은 지속적인 정신교육을 통해 조기에 예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그러나 졸업식 뒤풀이는 매년 더욱 발전된 형태로 선보여진다. 때문에 경찰 및 교육 당국은 ‘조기예방 해야 될’ 것 이라는 말만 되풀이 할 것이 아니라 이를 효율적으로 근절할 만한 실질적이고 획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일각의 주장이 신빙성을 갖는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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