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인간 소모품

〈전편 이어서〉

청운 같은 어린 나이에 그런 참혹한 인생길을 걸어왔을진대, 외로운 눈길에 그 창녀가 혹시 천사나 선녀로 보였다고 해서 헛되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너무 야멸 차지 않을까. 왜냐하면 천사나 선녀란 꼭 외양이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억 속의 슬픈 박꽃 누나에 대해 회상하던 청운은 쓴 소주의 맛에 취했는지 선감학원에서 겪은 고통스러웠던 얘기를 처음 본 창녀에게 늘어놓았다.

일제시대에 세워져서 수많은 불우 청소년들과 독립투사의 자손들을 끌어가 교육시켜선 전쟁터의 총알받이나 일본군 병사들의 성노리개로 썼다는…… 그리고 해방 후엔 고아나 부랑아를 잡아들여 하루 15시간씩 가혹한 강제노동을 시켰던 그 지옥…… 특히 5.16 군사 쿠데타 후엔 새롭고 밝은 나라를 만든다며 조금만 수상쩍거나 누추해 보여도 즉각 잡아갔다. 심지어 집과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그런 억울한 경우를 당했는데, 그건 수용되는 아이 한 명당 경찰관이나 구청 공무원에겐 살인자를 잡은 것보다 높은 고과 점수가 부여되고 선감학원 측엔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처음엔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어찌 그런 희한스런 일이 있겠느냐며 고갤 흔들었다. 하지만 청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체험으로부터 나왔음을 느끼게 된 그녀는 찰랑거리는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밭은기침이 따라 나왔다.

“하긴 참 악마가 함께 사는 요지경 세상이긴 해. 콜록콜록…… 내가 뭐 요조숙녀는 아니지만, 아직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요 모양 요 꼴로 시들어 버렸으니, 콜록…….” “어쩌다가…….”

청운은 더 물을 수 없어 소주만 마셨다. “나도 사실은 한이 많은 년이야. 옛날에 일본 놈들이 처녀들을 끌고 가서 정신댄지 뭔지 시켰다고 지랄을 해쌌는데…… 실은 이 나라 이 땅 사람들이 더 악독한 것 같아…… 호호호, 놀라지 말어. 난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이 나라에서도 골수파인 저 경북 대구 지방의 양반 선비 가문에 태어난 몸이야. 그런데 호호,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니? 사촌오빠란 자가…… 여고생의 순결성을 강제로 더럽혀 놓았어. 뒷동산에 밤 주우러 가잔 말에 속아 따라간 내 잘못, 내 잘못인 건 알아. 하지만 그 후엔…… 사촌오빠는 징그럽게 웃으며 협박했기에 난 눈물을 글썽이며 추악한 그의 요구를 들어 줄 수밖에 없었어.”

여자는 술잔 속의 투명한 액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더니 훌쩍훌쩍 울며 천천히 비웠다. “얼마 후 임신 사실이 들통 나고…… 아기가 누구 씨인지 밝혀지자, 집안에서는 비밀회의를 열었던가 봐. 지금 내가 질질 짜는 건, 강제로 지워진 아기 때문이 아냐…… 그 옛날의 사대부 양반이니 선비의 후손입네 자랑하는 집안 어른들이…… 쥐새끼 같은 종손을 살리기 위해 나를 화냥년으로 몰아 고향 땅에서 내쫓아 버린 거야. 엄마마저도 지엄한 가문의 명을 차마 거역하지 못해 울면서 내 등을 떠밀어내더군…… 내가 이 세상에 부대끼면서 느낀 건, 그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야. 우릴 같은 사람이 아닌 도깨비로 보는가 봐. 호호, 그러면서 왜 기웃기웃 찾아오는지…… 자기들도 도깨비보다 못한 지푸라기면서…… 그들 자신은 고려 조선 사대부 양반의 핏방울을 받은 대한민국 국민이고 나 같은 년은 뽁을 가진 인형이라고 생각하나 봐. 이 나라마저도 우리를 하나의 국민이 아니라 더러운 화냥년이라고 여기는 건, 아마 고조선 때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게 아닌가 싶어.”

여자는 눈물 자국으로 더러워진 얼굴로 구슬피 웃었다. “우리 조상이라는 양반 사대부 분들의 추악한 위선은 아마 기네스북에 올려놔도 금메달 감이 될 거야. 옛날에 말야, 조선시대의 돈 많은 양반 중엔 겉으론 성인군자인 척하면서 밤엔 예닐곱 살짜리 어린 소녀들을 품고 잤다잖아. 그리고 더 큰 쾌락을 위해 그 가엾은 소녀들의 이빨을 생으로 다 뽑아낸 뒤 부드러운 입으로 펠라치오를 하도록 시켰대.”

격정

“펠라치오가 뭐예요?” 청운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음, 그건 우리가 쓰는 전문용어야. 남자의 페니스를 빨아 주는 거지 뭘.” 멀리서 통행금지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었다. 청운은 허리를 한번 추스려 세웠다. “그래도 난 이 나라를 위해 내 서글픈 생명을 던지고 나갈 거예요. 그런 가짜 사이비 나라가 아닌 진짜 우리나라를 위해…….”

“호호, 너무 진지해서 어렵네.” “그래요. 내 마음속에도 여러 가지 추한 욕망이 있겠지요. 그래도 내 말의 반반쯤은 인정해줘요.” “어머, 얼굴까지 붉어지네. 호호, 이 창녀 왕국의 여왕이 아무런 사심 없이 그대의 맑은 충성심을 인정하노라.”

그리고 입술을 내밀어 청운의 볼에 키스를 했다. 부드럽고 촉촉한 생명의 감촉이었다. 청운은 전혀 경험이 없는 숫총각처럼 그녀의 이마와 눈과 코와 입술과 볼에 입을 맞추었다. 여자가 키스를 받는 채로 쟁반을 밀쳐 버리곤 방구석에 깔린 노란 이불 위로 그를 이끌었다. 청운이 그녀의 스웨터를 밀어 올리고 가슴에 입술을 대려 하자 여자는 잠시 반항하는 듯 하더니 곧 더 세게 사내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청운은 빈 젖을 오래도록 빨았다. 닳아빠진 여체 같은데도 여자가 자꾸 간지럽다며 몸을 비비꼬는 바람에 좀 성가셔진 청운이 중얼댔다.

“너무 그러네. 가짜는 싫어.” “뭐가 가짜야? 가망 없지만…… 미래의 아기를 위해 깨끗이 남겨 두려는데…… 알랑 들롱은 여주인공의 몸을 가지고 놀 수 있는데도 잠시 만지고 말잖아. 그게 멋있는 거야.”

그러면서도 직업의식을 잊지 않았는지 청운을 보듬곤 허약한 허벅지를 슬쩍 벌렸다. 청운은 치솟아 오르는 정력을 주체치 못해 아랫도리를 폭력적으로 움직였다. 헐떡이는 신음소리에 섞여 그러렁거리며 울리는 폐 속의 소리를 들으면서 죄의식을 느끼면서도…….

검은 선글라스

바람이 아직 꽤 차가웠다. 아직 새벽 어스름이 걷히기 전이었다. 청운은 역전식당에서 해장국밥 한 그릇을 사 먹은 뒤 광장을 거닐며 시계탑과 반대편 구석에 붙은 헌병분소를 번갈아 바라보곤 했다.

집결 시간인 6시까지는 아직 10분쯤 남아 있었다. ‘갈까, 말까?’ 청운은 고민에 빠져 망설였다. 인생의 갈래길 앞에 서서 막상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을 맞딱뜨리자 공포감이 턱없이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그냥 발길을 돌려 도시의 뒷골목을 떠돌거나 또는 산천을 방랑하며 꿈속의 무릉도원인 고향을 찾아가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발을 떼려는 순간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선글라스 사내의 언약이 화려한 만화경萬華鏡으로 펼쳐지며 가슴을 뛰게 했다.

문득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검정고시 영어 강의록에 나온 것이었다. 노란 숲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한 길을 택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 길을 걸으면 결국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 두었다.

훗날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이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어찌할까? 시계탑의 바늘은 점점 6시를 향해 올라갔고, 서서히 여명이 어스름을 걷어내고 있었다. 뜸하게 들려오던 차량의 굉음이 차츰 심해지고 행인들의 발소리도 잦아지며 도시의 하루가 열렸다.

청운은 아랫입술을 한번 깨문 후 집결 장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녕!” 그는 누구에게 보내는지 모를 작별인사를 작게 중얼거렸다. 헌병 분소 한옆에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와 함께 타올랐고, 그 주위에 입성이 누추한 네댓 명의 새파란 청년들이 저마다 독특한 표정을 지은 채 어깨에 힘을 넣거나 건들거리고 있었다. 침묵을 지키는 애들도 있고 벌써 말을 터서 시시덕거리는 치들도 보였다. 장발족에 수염을 텁수룩히 기른 놈, 광대뼈 위에 칼자국 같은 흉터가 난 얼굴들이 모닥불빛을 받아 괴상하게 번들거렸다. 헌병 분소 안엔 전등불이 켜져 있고 근무자도 보였지만 문은 꽉 닫힌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도 추레한 몰골들이 하나 둘씩 계속 모닥불 앞으로 모여들어 열댓 명 가까이 되었다. 시계는 이미 6시를 넘어섰다. “씨팔! 대한민국 철도청 시계가 틀린 거야, 헌병대 시계가 틀린 것이야?”

스포츠형 머리에 눈썹이 굵은 사내가 모닥불을 향해 침을 찍 내쏘며 불평했다. 청운은 혹시 공동운명체가 될지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좀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하지만 불꽃은 바람결에 수시로 이리저리 자신을 비틀며 사람들의 얼굴을 제멋대로 채색하고 있었다.

‘알려고 하면 일년이 걸려도 알지 못한다. 가만히 두고 보면 한 달 안에 알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청운은 무심히 불꽃을 바라보았다. 너무 깊이 빠르게 알려고 하면 사람 마음의 불꽃 속에서 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곳에서든 설령 알지 않으려 해도 열흘쯤 지나면 반나마 알게 되는 건 우리가 같은 인간이기 때문일까? 물론 서로 안다는 것 자체가 허구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여명이 밝아올수록 모닥불빛은 희미해졌다. 그제서야 헌병 분소 문이 열리더니 선글라스를 끼고 군용 점퍼를 걸친 중년 사내가 걸어나왔다. 그는 짧은 머리에 모자를 쓰지 않았고 견장에도 계급장이 붙어 있지 않았다. 모닥불 가에 둘러선 새파란 젊은이들을 한번 슥 살펴본 그는 굵직한 목청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점호를 하겠다. 호명하면 조용히 손만 들어라. 그리고 저쪽으로 가서 차례대로 줄을 지어 앉아라.” 선글라스 사내는 서류를 들고 한 명씩 호명을 하는 동시에 손 든 본인을 흘끗 살폈다. “윤청운!”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윤청운, 없나?”

중년 사내의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청운은 자기 이름이 불리길 기다리고 있었으면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스스로 아호雅號를 짓는 기분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불러 주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더구나 공적인 자리이니만큼 ‘윤용운’이란 본명이 불리리라고 자가당착적으로 착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착각을 언뜻 알아챈 건 서너 사람이나 더 호명돼 나간 다음이었다.

“아까 부른 윤청운 여기 있습니다!” 손을 들고 외치자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졌다. 선글라스 사내는 싸늘한 일갈로 그런 소란을 제압했다. “너 이리 나와.” 청운이 나가자 구둣발이 정강이뼈를 세게 찼다.

“너 같은 놈을 일반 군대에서는 고문관이라고 부르지. 그러나 우리가 가는 곳엔 그런 시시껄렁한 것이 없다. 왜냐? 덜된 놈은 죽기 때문이다. 싫으면 잡지 않을 테니 당장 떠나라! 이건 이 꺼벙이뿐만 아니라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된다.”

꺼져 가는 모닥불처럼 아무도 별 말이 없었다. ‘에라, 좋다. 거절하는데 굳이 갈 필요가 없지. 내 길을 가자. 더 낭만적인…….’ 청운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긋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시커먼 두 동물 같은 게 큰길 쪽으로부터 역 광장으로 시근벌떡거리며 달려왔다. 앞에 선 놈은 도망자고 바짝 뒤따르는 놈은 추격자인 모양이었다.

“도둑 새키! 잡히는 순간 살인난다!” 두 사내는 시계탑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돌며 도망과 추격을 계속했다.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헉헉대며 달릴 뿐이었다. 서너 바퀴나 돌았을까, 도망자의 동작이 슬로비디오처럼 느려졌으나 추격자도 마찬가지였으므로 아직 잡히진 않았다. 도망자는 마침내 심장이 터져 버릴 만큼 헐떡이면서 진로를 바꿔 헌병 분소의 모닥불 쪽으로 부나비처럼 양팔을 퍼덕거리며 달려왔다. 그러더니 마치 골인 지점을 통과한 마라토너가 감독이나 동료의 품에 안기듯 앞에 서 있던 청운의 품속을 파고들며 무너져 내렸다. 곧 이어 추격자의 몸뚱이도 덮쳐 왔다.

청운은 비틀거리면서도 쓰러지지 않고 버텼다. 어쨌든 간에 일제 식민지 때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 준 손기정 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생존경쟁으로 요란스런 청량리 바닥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한 사람들을 쓰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야, 너희들 뭣하는 놈들이야!” 선글라스 사내가 신경질적으로 언성을 높였다. “이 개자식이…… 술이랑 안주랑 아가씨까지 데리고…… 잔뜩 처먹고는 도망을 치잖어요. 이 개놈 새끼!”

추격자는 도망자의 멱살을 꽉 쥐어 잡은 손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그게 사실이야?” “예, 그랬긴 하지만…… 이 웨이터 자식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와서 귀신 오래비처럼 겁을 주며 패려는 바람에…….”

그의 손은 자기 멱살을 잡은 손을 잡아 비틀고 있었다. “웨이터, 사실이야?” “예, 이 개망나니 놈이 말이죠…… 자기가 무슨 비밀 특수부대 요원이라면서 거들먹거리기에 가짜 색출 차원에서 손 좀 봐주려 했어요. 허헛, 개도둑놈 따위가 무슨 특수 요원이라구.”

“술값이 얼마지?” “술값이 문제가 아니죠. 양심 없는 도둑놈이나 사기꾼은 때려 족쳐서 벌레에게 절을 하도록 시켜야 해요.” “알았으니 넌 그 손을 놔. 그리구 넌 이리 좀 와봐.” 그는 더벅머리 녀석의 머리칼 몇 오라기를 잡아끌었다.

“너 왜 사기치고 그래? 죽을래, 응?” “그게 아니고…… 저도 여기 지원서를 썼는데…… 막상 오려니까 왠지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또 좀 쓸쓸해서…….” “흠, 너 이름이 뭐야?” “이충길입니다.” “음, 저쪽 줄로 가 앉아!” 이충길은 갑자기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추격자를 슬금 쏘아보곤 대열에 합류했다. “아니, 도대체 아저씨가 뭔데 저 도둑놈을 놓아 줘요?”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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