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인간 소모품

석양이 붉은 생生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며 서산마루에 걸려 있었다. 청운은 길가의 녹슨 깡통이나 돌멩이를 차며 천천히 동대문에서 청량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전처럼 맥 빠지지 않고 오히려 들뜬 기운을 억누르려는 표정이었다.

경찰서나 순경을 봐도 움츠러들지 않고 보란 듯 조금쯤 뻐기는 태도를 내보이기도 했다. 그때 마침 어디선가 애국가의 음율이 장중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행인들은 마치 인형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서 가슴에 손을 올렸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청운은 그냥 깡통을 차면서 생각에 잠겨 걸어갔다. “야, 임마! 너 이리 좀 와!” 굵은 목소리가 청운을 불러 세웠다. 돌아다보니 순경이었다.

“왜 그러죠?” “뭐, 왜냐구?” “예.” “얌마, 너 북한에서 내려온 간첩 아니야?” “웃기지 마슈.” “애국가 앞에서는 대통령 각하께서도 엄숙해지시는데 감히 너 따위가…….” “난 그런 형식적인 애국이 아니라 진짜 애국하러 목숨 걸고 떠나는 몸이우. 씨팔, 나라가 나라답게 대해 줘야 애국가도 부를 마음이 생기지.”

“이 자식 이거 미친 놈 아냐?” “그래, 미쳤다고 칩시다. 그러는 아저씨는 왜 엄숙하게 경례하지 않고 경망스레 딱딱거리시우?” “응? 그렇지!…… 너 거기 잠깐 서 있어. 경례 끝나고 어디 보자!”

순경은 갑자기 로봇처럼 부동자세로 서서 가슴에 손을 얹었다.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청운은 녹음된 성우의 맹세문을 들으며 계속 걸었다. ‘이 땅, 이 나라는 과연 내게 무엇을 주었는가? 조국과 민족이라…… 흠, 너무 거창스러운 느낌이 드는군. 그저 이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이 겁먹지 않고, 굶주리지 않고, 자신의 작은 꿈이나마 꿀 수 있는 나라라면…….’

중요한 생각을 하는 순간 억센 손아귀가 어깨를 턱 거머쥐었다. 청운은 흘끗 돌아보았다. 아까 로봇같이 엄숙히 경례하던 그 순경이었다. “너 쓴맛 좀 봐야겠다.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수갑을 채워 연행하겠다. 만약 반항할 시엔 이 권총이 네 이마를 박살낼 것이다!”

“애국하러 가는 사람을 막다니 우습네. 흐흐…….” “이 자식이 정말 미쳤나 보군. 농담이 아니야!” 순경은 권총을 들어 청운의 머리를 바로 겨냥했다. “또 지랄하면 나도 더 못 참는다. 이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넌 개돼지의 시체와 비슷해지는 거야. 대한민국의 위대하고 장엄한 전진을 훼방 놓는 놈들은 즉결처분에 처한다! 상부의 지침이니 날 원망하진 마라.”

청량리의 추억

순경은 자신의 누르께한 얼굴로 지을 수 있는 가장 험악한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최후통첩을 했다. 이마에 작은 땀방울이 돋아날 정도로 진지하고 심각한 모습이었다. 청운은 입을 쩝 한번 다셨다.

“쏘더라도 이걸 본 뒤에 쏘슈.”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신사로부터 받은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뭐야, 이게? 꼼짝 말고 가만 서 있어!” 순경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명함을 받아 들곤 쓱 훑어보더니 천천히 신음을 흘리며 돌려주었다. 갑자기 그의 눈엔 연민의 기색이 떠돌면서 목소리도 너그러워졌다.

“잘 가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 순경은 악수를 청했다. 청운이 그의 손을 잡자 순경은 열정적으로 흔들어대면서 머리도 세차게 끄덕였다. 그 바람에 모자가 벗겨져 떨어져 버렸다. 드러난 대머리에 석양빛이 한 점 비쳐 반짝거렸다.

청운은 거리가 먼 줄도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생각에 잠겨 걸었다. 여덟 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거렁뱅이로 헤매 다닌 길이었다. 눈물겨운 삶이기도 했지만 어찌 보면 보잘것없는 잡초 인생이기도 했다.

‘아, 선감도에서 말 못할 고생을 겪었으면서도 난 여전히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어린애 심보를 마음속 깊숙이 지니고 있어. 엄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었단 말이야. 이젠…… 이번 기회를 통해 치졸한 소년에서 벗어나야만 해. 나 스스로 성장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하느님이 도와주려 해도 안 될 것 같아.’

그는 정신병자처럼 홀로 중얼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끔흘끔 바라보며 혀를 쯧쯧 찼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동안 나 자신만을 생각한 것 같아. 내 아집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하찮은 한 목숨 생존경쟁이나 하면서, 뭔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는 살지 못했어. 이번 기회에 누추한 나를 한번 죽여 다른 것을 위해 던져 보자! 그러면 혹시 다른 내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청운은 어느덧 청량리역 광장 앞에 서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리고 불빛들이 켜져 밤과 동거를 시작했다. 작은 불빛 한 점 속에서 수많은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어둠도 부드러운 베일인 양 정겨웠다.

청운은 시계탑 오른편을 흘끗 살펴보고 나서 왼쪽으로 걸어갔다. 허름한 식당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걸똘만이로 돌아다니던 한겨울, 소박한 꿈을 하나 꾸었다면 그건 따스한 식당에 들어가 푸짐한 돼지국밥을 먹는 일이었다. 이제 그럴 수가 있다! 소주도 한 잔 곁들여서…….

그런데 식당 간판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순간 청운은 딱 멈춰 섰다. 불현듯 이상스런 고독감이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치밀어 올라왔던 것이다. 식욕은 사라져 버리고 쓸쓸한 정신만 저녁바람에 흩날렸다.

‘난 왜 여기 서 있는 걸까? 대체 무엇 때문에 여기에……? 물론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그곳이 한번 들어가면 다시 살아나오기 힘들다는 바로 그 무서운 곳이 아닌지 모르겠어. 선감원에서도 귓가로 들은 적이 있었지. 하긴 뭐 실상은 직접 겪어 봐야 알겠지만…….’

청운은 발길을 돌려 고개 숙인 채 역전 광장을 이리저리 거닐었다. 어둠은 불빛 속에서도 점점 짙어졌다. 외로움을 못 이긴 듯 그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따뜻한 방이 있어. 함께 가 재미있게 놀지 않을래, 응?”

어떤 여자가 속삭이며 청운의 곁으로 다가붙어 팔을 꼈다. 진한 분냄새와 아양 섞인 콧소리가 아니라도 그녀가 어떤 신분의 존재인지 청운은 이미 짐작할 만했다. 그는 별도 없는 어두운 허공을 응시했다.

“뭘 그래? 자기도 외로운 늑대 같은데…… 슬픈 해어화의 이야길 한번 들어 줘 봐.” “해어화가 뭔데요?” “아이참, 무식하긴. 가르쳐 주면 나랑 갈 거지? 해어화解語花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뜻이야.”

그제야 청운은 눈을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분을 발랐음에도 부석부석한 피부를 가릴 수 없는 얼굴에, 큰 눈은 웃고 있었으나 정기가 없고 메마른 입술엔 거품이 일어나 있었다. 원래 체형이 그런지 굶어서 그런지 모르게 빼빼 마른 몸매였다. 가끔 한 번씩 폐가 찢어진 듯 이상스런 기침 소리를 냈다.

청운이 가만히 있자 여인은 물고기의 입질을 느낀 낚시꾼처럼 부드럽게 그의 팔을 끌고 588번지 쪽으로 데려갔다. 좁고 지저분한 골목 양옆으로 홍등가가 죽 늘어서 있었다. 유리창 속의 인형 같은 여인들이 붉은 등불 아래서 사내들을 향해 요염한 미소를 던졌다. 정육점의 불빛과도 같은…….

여인은 그곳을 지나 좀더 으슥한 곳으로 청운을 끌고 갔다. 흐릿한 30촉짜리 전구가 걸려 꽃샘바람에 흔들거리는 후미진 쪽방 지대였다. 청운은 여자의 분냄새를 맡으며 어느 한 곳으로 들어갔다. 쭈그러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여자들이 웃으면서 말했다.

“저 언니 오늘 횡재했네. 어떻게 저런 새신랑을 모셔 왔을까?” “사랑도 좋지만 새서방이 폐병에 걸리진 않아얄 텐데.” “죽음도 불사코 다가온 열애…… 아, 얼마나 멋질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어둠을 흔들었다.

여자는 그런 소리들이 싫다는 듯 청운을 앞세워 데려가며 아무 대꾸 없이 뒤에서 침묵의 장막을 치려는 모습이었다. 여자가 이끄는 대로 방안으로 들어서자 딸깍 하며 흐릿한 알전구가 켜졌다.

콩기름을 먹인 종이 장판 한쪽에 분홍빛 이불이 깔려 있었다. 여자는 청운을 끌어 앉혀 다리 위에 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낡아빠진 소형 티브이를 켰는데 흐릿한 포르노 영상이 잠시 나오다가 꺼져 버렸다. 여자는 그 고물을 탁탁 두드리다가 청운이 별 관심을 보이지 않자 꺼 버렸다.

“자기야, 몸 녹이면서 잠시만 기다려, 응?” 여자가 상체를 구부린 채 방문을 나서며 말했다. 검정치마 밑의 종아리가 희고 가녀렸다. “저기요…… 소주 한 병 부탁해요.” 여자는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좀 출출하니까 고기보쌈도 한 접시 시켜 주세요.” 여자의 눈이 좀 커졌다. “그건 비싼데…….” “하하, 걱정 마세요.” 청운은 주머니에서 지폐를 꺼내 여자에게 한 장 건네었다. “알았어요.”

마지막 욕정

여자는 살짝 웃고는 나갔다가 하얀 수건 속에 콘돔을 숨겨 들어왔다. “이게 뭐죠?” “혹시 필요할 것 같아서…….” “하하하!” 갑자기 청운은 미친놈처럼 웃어대더니 콘돔을 집어 입에 대고 바람을 불어 넣었다. 점점 부풀어 올랐다. 청운은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를 써고 숨을 불어넣었다.

“그만, 그만, 그만!” 여자가 팔을 날개인 양 흔들며 소리쳤다. 청운은 한 숨결 더 불었다. 눈시울에 눈물 한 방울이 맺힌 순간 허연 풍선은 뻥 소리를 내며 터졌다. 여자가 손톱으로 꼬집어 버렸던 것이다.

“하하!” “호호호!” 두 사람은 웃어댔다. 얼마 후 술과 안주가 배달돼 오자 여자는 마치 안방마님처럼 바지런을 떨며 신문지 위에 한 상 잘 차렸다. “한 잔 드시와요, 새 낭군님.”

여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잔을 채웠다. 찰랑거리는 투명한 소주를 청운은 단숨에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여자에게 잔을 건네곤 찬 소주를 부었다. 여자는 여윈 두 손길로 잔을 받들어 잡곤 입술로 가져가 꼴깍꼴깍 천천히 마셨다. 찬 바깥 바람 속에 있다가 온기 속으로 들어와서 그런지 어쩐지 모르지만 그녀의 눈망울엔 물기 한 점이 맺혔다. 그게 눈물인지 소주 방울인지 청운은 알 길이 없었다.

“자기야, 긴밤 놀 거지?” 여자가 다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청운은 대꾸 대신 술잔을 비웠다. 여자의 눈에 아양의 빛이 일었다. “그러려면 계산부터 먼저 좀 해줄래, 응? 불독 년이 하두 지랄을 해대서…….”

청운은 주머니에서 돈을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 여자에게 쓱 내밀었다.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게 많인 필요 없어. 장난치지 마.” “장난?” 청운은 소주잔을 들어 쭉 들이켰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곤 피 판 값으로 받았던 몇 장만 빼서 주머니에 쑤셔넣은 후 나머지를 밀어 버렸다.

“이걸로 내일 아침에 해장국만 한 그릇 먹으면 땡인걸 뭐.” “왜? 혹시 죽으려고 해?” 여자가 짐짓 놀란 척하며 물었다. “군대엘 가.” 청운은 무인도에서 돌을 하나 바닷물에 던지는 듯이 막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진작에 그럴 것이지. 깜짝 놀랐잖아, 우리 얄궂은 어린 신랑 땜에…… 죽지 말고 잘 다녀와. 변치 않고 여기서 낭군님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응?” 청운은 쓸쓸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둘은 주거니 받거니 잔을 비웠다. 술을 마실수록 청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는데 여자의 얼굴엔 붉은 반점이 돋아나 차츰 범위를 넓혀 갔다. 그리고 간혹 밭은기침을 쏟아냈다. 하지만 몸이 흐느적거릴 즈음엔 홍조만 짙어질 뿐 기침은 잠잠해졌다.

“노래 하나 해보세요.” 청운의 요청에 여인은 의외로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곤 나무젓가락으로 쟁반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밤이 지나고 햇살이 부실 때 빨간 알알이 석류는 웃는데 차가운 별 아래 웃음이 지면서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 가을은 외로운 석류의 계절……

방은 초라했지만 따스했다. 연탄불을 제때 잘 갈아넣은 모양이었다. 연탄가스 냄새마저도 역겹기보다 오히려 향기롭게 여겨지는 시간이었다. 어느 결에 여인은 낡은 회색 외투를 벗어 버려 연보라빛 털 스웨터에 검정 치마 차림이었다. 뒤로 모아 묶었던 머리를 풀어내려 그런지 어쩐지 언뜻언뜻 드러나는 목이 한결 희고 가느려 보였다.

청운 같은 어린 나이에 그런 참혹한 인생길을 걸어왔을진대, 외로운 눈길에 그 창녀가 혹시 천사나 선녀로 보였다고 해서 헛되다고 나무라는 사람이 만약 있다면 너무 야멸차지 않을까. 왜냐하면 천사나 선녀란 꼭 외양이 아름다운 존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추억 속의 슬픈 박꽃 누나에 대해 회상하던 청운은 쓴 소주의 맛에 취했는지 선감학원에서 겪은 고통스러웠던 얘기를 처음 본 창녀에게 늘어놓았다.

일제시대에 세워져서 수많은 불우 청소년들과 독립투사의 자손들을 끌어가 교육시켜선 전쟁터의 총알받이나 일본군 병사들의 성노리개로 썼다는…… 그리고 해방 후엔 고아나 부랑아를 잡아들여 하루 15시간씩 가혹한 강제노동을 시켰던 그 지옥…… 특히 5.16 군사 쿠데타 후엔 새롭고 밝은 나라를 만든다며 조금만 수상쩍거나 누추해 보여도 즉각 잡아갔다. 심지어 집과 부모가 있는 아이들도 그런 억울한 경우를 당했는데, 그건 수용되는 아이 한 명당 경찰관이나 구청 공무원에겐 살인자를 잡은 것보다 높은 고과 점수가 부여되고 선감학원 측엔 정부 보조금이 주어지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처음엔 지어낸 거짓말이라고, 대명천지 대한민국에 어찌 그런 희한스런 일이 있겠느냐며 고갤 흔들었다. 하지만 청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체험으로부터 나왔음을 느끼게 된 그녀는 찰랑거리는 소주 한 잔을 쭉 들이키더니 한숨을 폭 내쉬었다. 밭은기침이 따라 나왔다. 〈다음호 계속〉

 

작가 김영권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