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12일 귀국했습니다. 지난 연말까지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존재감과 대권을 향한 의지를 내보였습니다.

많은 지지자들은 현 정국에서 보수의 중심축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환영했습니다. 어쩌면 지난 10년간의 보수정치에 회의를 품었던 대다수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나는 보수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라는 말도 못할 지경이 되어버린 현 정국 앞에서 그는 ‘메시아이고 구원자’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메시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도착과 동시에 보수 언론을 비롯하여 수많은 언론사로부터 집중을 받았습니다. 그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그가 도착하는 장면은 여러 방송에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습니다. 보수정당에서는 그의 귀국을 환영했고 자당에 입당하여 대통령에 출마하기를 간곡했습니다.

반기문씨는 90년대 이후 주미대사·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외무부 장관의 이력에서 보듯이 우리 사회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엔사무총장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더라도 어찌되었건 10년간 인류를 위해서 노력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고위 공무원이었고 외교관이었습니다. 외교관이라는 특수한 직업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의견을 과감하게 말하거나 행동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세간의 사람들이 그를 ‘미꾸라지’라고 조롱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보수의 메시아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어떤 정치적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집권하면 무슨 정책을 집중적으로 육성할지, 세계8위 규모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할지 등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가 ‘예수’인지 ‘싯다르타’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국민들 20%정도는 그의 신도(信徒)임을 자처합니다.

지난 10년

반기문씨가 유엔사무총장 재임 시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지도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아이티 콜레라 참사입니다.

아이티 국민의 약 8%가 콜레라 의해서 죽었는데, 문제는 콜레라 청정국인 아이티에 유엔군이 전염병을 발생시키고 유엔사무총장은 무려 6년이 지나서야 사과한 것입니다. 게다가 보상에 대해선 유엔은 외교관의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하면서 거부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큰 사건은 스리랑카 내전 당시 무고한 시민 4만명이 반군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군에게 학살당했던 그 때, 그는 ‘우려’라고 대응을 했고 유엔 직원 철수 조치로 인해 '주둔에 의한 보호'라는 유엔 고유의 능력을 상실하게 했습니다(*주둔군에 의한 보호-유엔 직원이 현지에 주둔하면 현지인들의 비인도적 행위가 상당히 줄어든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리아 내전 대응은 사실 최악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진행형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아랍의 봄’ 이후 시리아에서 사망한 사람은 대략 31만명 정도라고 합니다. 지금도 매해 50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중해를 건너다 죽어가고 있고, 가슴 아프게도 그들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입니다.

또한 시리아 내전 초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해서 ISIS라는 테러단체가 활동 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웠고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 알레포는 지옥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종심

반기문씨의 우리 나이는 74세입니다. 나이 70세에 대해 논어 위정편에서는 종심(從心)이라 했습니다. 종심의 근본 뜻은 마음대로 하고자 해도 절대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바로 이 종심은 나이 70에 되어서 자신을 알게 되었다는 뜻일 겁니다. 반기문씨는 자신 스스로도 ‘뱀장어’라는 표현도 하셨고, ‘어떤 비난도 피해갈 자신이 있다’라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지는 함의는 ‘비난을 피하거나’, ‘대단히 우려스럽다’로 해결되는 자리가 아닙니다. 남들이 다 비난을 해도 그 정책이나 일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고 정의를 위하는 일이라면 정적들의 비난을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자리입니다. 억울해도 참고 묵묵히 해야 할 일이 참 많은 자리입니다.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욕(知基榮, 守基辱, 爲天下谷)’이라고 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 영광을 누리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하지만 욕됨을 알지 못하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은 개인으로도, 사회에게도 재앙에 가깝습니다.

몇 일전 대통령의 뇌물수수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영장실질심사를 거친 결과 영장이 기각되었습니다. 필자는 판사의 영장기각 사유와 변호인단의 변호 논리, 특검팀의 영장청구 서류의 일부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판사의 영장 기각은 법리적으로는 틀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20대에 우수한 성적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20대부터 의전을 받았던 소위 이사회의 엘리트 집단이나 기득권 집단이 과연 사회의 정의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모든 범죄자는 불구속 수사를 받아야 함이 원칙이고, 자신을 변호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2015년 노동자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량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서 노동자 해고를 반대하고 청년실업 문제를 촉구하며 세월호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자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를 하고 노동권을 지켜달라고 요구하던 한 사나이, 그 사나이는 아직도 차가운 감옥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나이를 ‘한상균’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철학

인생 칠십 고희. 사람들은 축하의 의미로 고희연을 합니다. 두보의 곡강이수 제2수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필자는 곡강이수 제1수 중 ‘일편화비감각춘 풍표만점정수인(一片花飛減卻春 風飄萬點正愁人)-한 조각 꽃이 져도 봄빛이 깎이거니, 바람 불어 만 조각 흩어지니, 시름어이 견디리’라는 구절을 좋아합니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님은 지금 우리 나이로 74세입니다. 그동안 이사회의 엘리트로 사셨다면 이제는 한 조각 작은 꽃잎에도 마음을 두실 때라고 생각 합니다. 동년배들은 OECD 국가 중 최고의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주실 마음은 없으신지요? 손자 같은 젋은이들도 일자리가 없어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꼭 대통령이 되고 싶은 이유를 설명해주시길 바랍니다. 그 대답이 정치적 레토닉 ‘정치교체’라는 생소한 단어는 아니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그런 생소하고 생경한 정치적 레토닉에 지쳐 있습니다. 무엇이 ‘녹색 성장’이고 무엇이 ‘창조 경제’이며, ‘새정치’라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이 ‘경제 민주화’ 인지 레토닉만 가득할 뿐입니다. 더 이상 기다려주기에는 우리의 삶이 너무 위태롭기만 합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