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비린내의 시작…“국가를 위해 봉사하라”

제2부 인간 소모품

다시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되었다. 지친 몸을 깃들일 만한 자그마한 둥지 하나 찾을 수가 없었다. 영세한 공장지대를 기웃거려 보기도 했으나, 주민증을 보자거나 학력이나 경력 따위를 시시콜콜 따지듯 물어 보는 탓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쳇, 일만 잘하면 될 텐데…… 왕궁이나 되는 듯이 뭘 그렇게도 허세를 부린담.” 그래서 청운은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막노동을 해 가며 겨우 연명했다. 어린 꼬맹이 시절에 각설이 타령을 부르며 길바닥을 전전하던 설움보다 더 낫다고 할 것도 없었다. 일거리가 늘 있는 게 아니어서 굶는 적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때처럼 구걸을 할 수도 없고, 깡패들을 따라다니고 싶은 맘도 없었다. 어떻게든 해서 자리가 잡히면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헌책방에서 검정고시 강의록을 우선 한 권 사 검게 물들인 군용 잠바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틈틈이 읽곤 했다.

표지를 들치면 이런 글귀가 희미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캄캄한 밤하늘의 저 별들이 아름다운 건 그곳에서 저마다 독특하게 피어나려 애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 때문이다. 황량한 저 사막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아득한 그 어딘가 맑은 샘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별이나 사막이나 혹은 인간을 진정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현실이 삭막해서 그런지 혹은 앞날이 캄캄해선지 모르지만, 그 시 구절을 읽으면 청운은 자신의 내면속에 걸려 있는 검은 거울을 보는 것만 같았다. 미래는 비칠 듯 말 듯 어른거리는 그림자 같을 뿐 결코 보이지 않았다.

‘난 마치 샘물도 없는 황막한 사막을 헤매는 폐인 같아.’ 심한 갈증이 입보다는 마음속으로 몰려왔다. 그래서 굶주림에 지쳐 노숙을 할 때에도 머릴 들어 밤하늘을 쳐다보며 별들에게 얘기를 걸곤 했던 것이다.

“나도 그곳으로 가고 싶어. 난 지금 수많은 지옥 중에서도 춥고 배고픈 지옥을 지나 고독지옥 속에 있어. 그곳엔 어떤 존재들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군. 얼굴 모습이나 생김새나 입은 옷이 서로 좀 다르면 어때? 마음이 따뜻하면 다 통하지 않을까 싶어.”

미친 척 중얼대다가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다음날 다시 주린 배를 안고 거리를 배회할 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몰려왔다. 설령 굶어 죽지 않더라도 어떤 야수가 갑자기 목덜미를 물고 흔들어 죽인 후 자신의 살을 뜯어먹을 것만 같았다. 마치 자기가 미친 들개가 돼 비틀비틀 도시의 시가지로 내려온 듯 불안스럽고 초조한 심정이었다. 차라리 다시 그 무서운 선감도의 지옥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을 지경이었다.

“차라리 지옥 속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자. 음…… 그러니까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군. 저기 저 도인은 붉은 천을 목에 걸고 하늘 위의 천국과 땅 속의 지옥을 설교하는군. 아, 하지만 바로 이 땅 이 나라에 지옥과 천국이 있지 않을까 싶어. 저 예쁜 소녀는 아름답게 미소 짓는군. 아아, 천국 사람과 지옥 사람이 한 찰나에 만나 스쳐 지나가는군.”

청운은 굶주림에 지쳐 비틀거렸으며 헛소리를 하는 기색이었다. 아직 꽤 차가운 바람이 길게 자란 그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그는 헐떡거리면서도 길바닥에 주저앉지 않고 계속 걸었다.

단팥빵

제기동 시장 앞에서 한 사내가 중얼중얼 씨부리고 있었다. 벌겋게 단 화덕 위의 석쇠엔 껍질이 벗겨진 뱀들이 놓여 소리 없이 입을 쩍쩍 벌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산 몸뚱이에서 기름이 방울져 떨어지며 지글거렸다. 단말마도 못 지른 채 질긴 목숨이 끊어진 뱀이 노릇노릇하게 익으면 사내는 집게로 집어 대나무 바구니에다 가지런히 담았다. 그러고는 입으로는 계속 떠들며 마대자루에서 산 뱀을 꺼내어 대가리에서부터 단숨에 껍질을 벗겨내렸다. 핏물이 배어난 뱀의 몸뚱이는 불 위에 놓이기 전 사내의 팔목을 감으며 파르르 떠는 것처럼 보였다.

사내가 눈을 들어 청운을 쳐다보며 만병에 특효라며 빙긋 웃었다. 사내의 눈은 탁하고 동공이 노르무레한 게 영락없이 뱀의 눈을 닮아 있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보다 더 영물이여. 안 먹으면 손해랑께.”

청운은 고개를 흔들며 발길을 옮겼다. 저 앞에 벽면이 온통 하얀 고층 건물이 서 있었다. 긴장이 갑자기 풀려 버렸는지 터덕터덕 걸으며 서글픈 웃음을 흘렸다. 그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매혈, 즉 피를 파는 곳이었다. 얼마 후 청운은 아까보다도 더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그곳 계단을 걸어 나왔다. 하지만 조금쯤 밝은 얼굴로 단팥빵 봉지를 뜯고 있었다. 이어 빵을 한입 베어 물려는 순간이었다.

“어이, 젊은 피가 아깝지도 않나?”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은 빵을 입에서 떼며 곁눈질로 살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신사가 옆에서 보일락 말락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회색 양복 위에 검정 코트를 걸친 세련된 모습이었다.

“상관 마슈.” 청운은 빵을 뜯어 먹으며 대꾸했다. “금이나 다이아몬드보다 더 고귀한 피를 왜 그렇게 몇 푼 헐값에 내버리나? 죽는 길도 많다만 살 길도 많은데…….” 청운은 무심한 척 가장하면서 슬쩍 상대방을 살폈다. 혹시 경찰이나 선감학원에서 온 사감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사내는 허연 이빨을 내보이며 빙긋 웃었다.

“어이, 노다지 한번 캐보지 않을래? 아무려면 피 팔다 죽는 것보다 황금덩이 속에 묻혀 죽는 게 낫지 않겠어?” “혹시 사기꾼 아니슈?” 그러자 사내는 정색을 했다. “그런 소리 마라. 난 대통령을 보좌하시는 분의 한 심부름꾼일 뿐이야. 이건 국가를 위한 일이란 말야.”

“예?” “순진하긴. 네가 선감학원에 도망친 놈이란 사실도 이미 알고 있다. 흐흠, 생각이 있으면 조용히 따라오고 안 그러면 당장 꺼져.”

사내는 세련되고 당당한 폼으로 걸어갔다. 청운은 주위를 살폈다. 도망칠까, 저 자를 따라갈까? 그는 다급히 머리를 굴렸다. 일단 도망가자! 그는 발을 떼었다. 그런데 문득 머릿속에 선감학원에서 겪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는 마치 낚싯바늘에라도 걸린 듯 천천히 뒤따랐다.

“까짓것, 죽든 살든 어차피 지옥이긴 마찬가지야.”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정장 사내는 길가의 라일락 다방 앞에서 힐끗 뒤돌아보더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다방 안으로 들어갔다. 마담과 레지 아가씨의 인사를 못 본 척 그는 구석 자리로 가서 털썩 퍼져 앉았다.

“어이, 편히 앉으라구. 내가 뭐 저승사잔 아니니 겁먹지 말구. 여기 칼피스 두 잔 가져와!”

사내가 느긋이 말했다. 검은 선글라스 위에 불빛과 다방의 풍경이 반사되곤 했다. 청운은 상대의 그런 겉꾸밈새 혹은 비밀스런 위장을 무시하듯 고개를 숙여 버렸다.

“제가 선감도에 있었다는 건 어떻게 알았죠?” 사내는 입귀로 슬쩍 미소를 띄웠다. 그리고 명함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중앙무역공사 동대문지구 영업과장’이란 직함이 찍혀 있었다.

“쉽게 알 수가 있지. 죄인의 냄새가 나거든, 흐흐…… 그것보담 우리가 모든 죄인을 감시하고 있다는 편이 더 정확하겠군.” “난 죄가 없어요! 억울하게 끌려간 것도 원통한데…….” “흠,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사실은 그닥 중요치 않아. 그런 곳에서 썩었다는 게 문제지.”

“난 썩지 않았어요. 최면술사처럼 조작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래, 물론 지난 일보다 미래가 더 중요해. 사실 말이지만, 선감학원 출신들도 내가 몇 명 다뤄 봤어. 깡다구가 있지, 하하. 멀리 부산에 있는 형제복지원에서도 애들이 지원해서 올라온다구.”

“예?” “놀라지 말고 그 차나 마셔.” 사내는 찻잔을 들어 혀를 축였다. 청운은 저도 모르게 따라 하려다 멈추었다. “어쨌든 군대는 가얄 것 아냐. 군대 물을 먹어 봐야 철부지 소년에서 성인다운 청년이 된단 말야. 더군다나 여긴 일반 부대가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특수부대거든.”

청운은 잔을 들어 검붉은 빛이 도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달콤 쌉쌀한 맛이 은근히 향기와 함께 뇌 속으로 스며들며 기묘한 환상을 자아낼 듯했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나 같은 부랑인을…… 삐까번쩍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선감도란 소리 때문에 자꾸만 꺼림칙했던 것이다. “흠, 거긴 잘났거나 돈 많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 한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지극한 애국심과 사명감을 가진 심신이 건강한 사람이 아니면 불격이야.”

달콤한 유혹

“제겐 그런 애국심이 없어요.” “왜?” “외딴섬에 어린애들을 가둬 놓고 죽이는데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는 게 무슨 나라예요! 그렇게 해도 좋다고 면허를 줬다는 얘기도 있어요.”

“지난 일은 잊어버려. 인생만사 희비쌍곡선이야. 그래서 이번엔 우리 국가에서 기회를 주려 하잖아.” “무슨 기회죠?” “잘 들어. 간단히 말하겠다. 너가 만약 민족사업에 동참한다면 국가는 여러 가지 특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 우선 입대와 동시에 모든 전과가 말소된다. 일정 기간 임무수행 후 제대할 때면 깨끗한 유공증명서와 주민증이 발급될 것이다. 주민증 없인 하루도 숨 쉬고 살 수 없는 사회니깐 말야.”

청운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어린 날부터 이때껏 부랑아로 세상의 길바닥을 떠돌면서 얼마나 불안하고 쥐새끼마냥 비루했던가. 인간답게 한번 살고 싶다! 선글라스를 낀 사내는 청운의 속내를 뚫어보는 듯 엷은 미소를 입가에 띠곤 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정보망을 가동해서 네 고향과 부모를 찾아 준다. 그 정돈 쉬운 일이야, 허허허.” “정말인가요?” “흥분하지 마라. 그런 특혜들은 입대 후 주어진 임무를 완벽히 수행해냈을 때 가능한 것이니까 말야.”

청운의 눈빛이 좀 흔들렸다. 그는 어항 속을 부유하는 금붕어들을 바라보다가 곧 시선을 들어 창 밖 저 멀리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사내의 목소리가 어딘지 더 유들유들해졌다. “고민할 게 없는데 뭘 그러냐? 일반 군부대보다 교육과 훈련이 빡세다는 사실은 미리 알려 주니까 아예 한꺼번에 심사숙고한 뒤 결정해라. 일정 훈련이 끝나면 특수요원으로 임명돼 영화에 나오는 007처럼 멋지게 활동하며 살 수 있다. 한 명의 특수요원이 되는 순간 국가의 명령 외엔 아무도 너를 건드릴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돈이 아니겠나? 차곡차곡 쌓아 놓은 월급과 특별 상여금을 제대 시에 합산해 고급주택 열 채를 살만한 1억(요즘 액수로는 100억쯤)원을 일시불로 지급해 준다. 또한 원한다면 공무원으로 특채돼 마치 암행어사처럼 근속할 수도 있어. 느긋이 팔도강산과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자신의 영광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사실 청운은 돈 같은 건 크게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10만원이나 100만원이라고 했다면 좀더 구체적으로 욕심이 생겼을까? 1억원이란 거액은 현실성을 넘어 화려한 환상의 꽃불놀이처럼 느껴졌다.

속지 않으려면 미리 욕심을 자제해야 한다. 그런 환상엔 별 관심이 없었으나 ‘고향’과 ‘암행어사’란 얘기엔 은근히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었다. “해보겠습니다.” 청운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봉 잡은 거라구, 그것도 국가의 봉황 깃을…….” 사내는 모처럼 두 입귀를 활짝 올려 웃었다.

“그럼 오늘은 어디 여인숙에 들어가 조용히 지내고, 내일 아침 6시까지 청량리역의 시계탑을 기준으로 왼편 구석에 붙은 헌병 출장소 앞으로 나와. 알았지?” 사내는 지갑을 꺼내더니 지폐 몇 장을 뽑아 건네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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