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장성요양병원 참사 1주기인 2015년 05월 28일. 불이 났던 나눔병동 3006호실에 국화 한송이가 놓여 있다.(사진=뉴시스)

스프링클러 설치 비율 50% 불과…허가제 전환 절실

주무부처 실태조사 부실…대피훈련 등 예방 노력해야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2014년 5월28일 새벽 3시. 김정현(50/남/인천광역시)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라남도 장성 효사랑요양병원에 모셨던 아버지가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보였다.

당일 오전 8시20분 도착한 현장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환자 20명과 간호조무사 1명이 숨지는 끔직한 참사였다.

유가족들과 현장에 머물며 사건 수습을 하는 과정은 분노와 허탈의 연속이었다. 총체적 부실이 사고를 키웠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화재 발생 당시 의료진은 간호조무사 1명뿐이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의 대피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의료법 위반이다.

더욱이 사망 원인인 유독가스가 발생한 것은 콘크리트 시공이 아닌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화재 시 대피 공간인 비상구는 잠겨 있었다.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소화기 11개 중 8개는 캐비닛 안에 들어 있었다.

사회적 분노가 점증됐다. 허술한 관리가 안타까운 희생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더욱이 솜방망이 처벌은 유가족들을 분노케 했다. 유가족에게 지급된 보상금은 1인당 3000만~6000만원에 불과했다.

또 해당 요양병원 이사문 이사장은 징역 3년(대법원), 관련 공무원은 1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는데 그쳤다.

김정현씨는 “아버지가 국가의 허술한 관리감독으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면서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끝까지 책임을 회피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김씨처럼 화재 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양재영(71세/남/광주광역시)씨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교훈이 되는 사고였지만 요양병원 관리시스템은 여전히 허술하다”고 지적했다.

실태

유가족들의 얘기처럼 교훈이 될 사고였지만 요양병원은 안전은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국내 요양병원 중 절반이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 화재 발생시 초기 대응에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관리감독도 여전히 소홀했다.

2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1424개 요양병원 중 소화용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곳은 절반인 712개로 집계됐다.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화재 후 소방설비법이 개정돼 2014년 7월 이후 신축된 요양병원은 스프링클러와 자동화재속보설비, 자동화재감지장치 등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규정했다.

기존 요양병원의 경우, 2018년 6월까지 스프링클러 설치기 유예됐다.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4월24일 정부합동안전점검단이 19개 요양병원 현장을 직접 확인한 결과, 위험요소 117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대체로 야간 근무자가 적어 상황이 발생하면 대처에 어려움이 예상됐고, 일부 요양병원은 비상구에 디지털 잠금장치가 달려 있거나 집기로 막아놔 비상시 신속하게 이용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허술한 관리감독도 여전했다.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원의 신설과 폐업 등 기본적인 정보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또 기존 요양병원 스프링클러 설치가 내년까지 법적으로 유예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신민경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 주무관은 이에 대해 “요양병원 실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짧게 언급했다.

신명희 사무관 역시 “빠른 시간 내에 소화용 스프링클러를 전국 요양병원에 설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놨다.

시민단체는 다중 공공이용시설의 안전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관리감독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간사는 “요양병원 등 민간에 맡겨 놓은 다중 공공 이용시설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며 “요양시설은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성요양병원 유가족들이 2015년 5월 28일 화재 참사 1주기 추모식을 열고 있다.(사진=뉴시스)

우려

장성 효사랑요양병원 사고 이후 안전대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지만 제2, 제3의 효사랑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9일 오후 8시55분께 대구 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나 입소자 40여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불은 요양시설 일부를 태운 뒤 15분 만에 꺼졌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뻔 했다.

이밖에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요양병원내 소방시설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합상가에 입주해 있는 요양병원도 안전사각지대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소 한 관계자는 “소방 설비를 잘 갖추고, 훈련이나 점검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전기나 불을 많이 사용하는 음식점, 주점이 같은 건물에 있는 것 자체로도 화재 위험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화재가 발생하면 연기와 유독가스가 위층으로 가는데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많은 요양병원은 빠른 대피가 더욱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복합상가에 병상이 있는 병원을 설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민안전처는 지난해 5월 산후조리원이 있는 건물에 주점 등 화재위험시설이 들어올 수 없게 하는 ‘다중이용 화재 취약 건축물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현재 노인요양병원 등 병원은 이 같은 대책에서 비켜 있다.

일선 소방서의 한 관계자는 “복합상가에 입주한 요양병원의 경우, 평소에도 방화문을 닫아두고 소방시설 점검과 대피 훈련을 상시적으로 실시해 위험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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