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당사자인 기자가 10일 오전 신설동역 10번 출근 인근 노점상에서 달걀빵을 굽고 있는 모습.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사상 최악의 AI(조류인플루엔자)가 덮쳤다. AI 여파는 달걀 파동으로 이어졌다. 관련 재료를 사용해야 하는 모든 업종에 비상이 걸렸다. 체험에 나선 달걀빵 노점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았다.

한 겨울 추위와 싸우며 하루벌이에 나서고 있는 그들. 천정부지로 치솟은 달걀 값이 생계를 위협하고 있다. 일터로 향하는 노점상인의 발걸음이 무겁다.

추위

지난 10일 오전 8시. 이날 서울의 아침기온은 영하 7도를 기록했다. 한파가 몰려온다는 일기예보에 두꺼운 패딩 점퍼로 중무장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작정하고 몰아닥친 추위에 중무장도 속수무책이다.

노점상 체험을 위해 서울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로 향했다. 달걀빵 노점상인 강모(69/남)씨가 장사 준비에 한창이다. 강씨 역시 추위에 단단히 중무장한 모습이다. 출구를 나서자마자 또다시 동장군이 온몸을 휘감았다. 하루 종일 동장군에 맞서 달걀빵을 팔 생각을 하자 왠지 위축이 됐다.

“오늘은 덜 추운 편이야.” 강씨가 위로가 아닌 진심을 말했다. 그는 “지난해 같은 경우 영하 10도 이상 떨어진 적도 많았다. 준비해 놓은 반죽이 얼어 버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위로 아닌 위로에 군말 없이 장사를 도울 채비에 나섰다. 이정도 추위는 일도 아니라는 강씨에게서 추위와 싸워야 하는 노점상인의 애환이 짙게 묻어나왔다.

도전

기자는 어려서부터 달걀빵을 좋아했다. 체험을 하면서 달걀빵도 얻어먹고 만드는 법도 어깨너머로 배워볼 요량에 설렜다. 하지만 달걀빵 하나 만드는 데도 많은 노하우와 기술이 필요했다. 강씨는 달걀빵만 20여년을 만들어온 그야말로 달인이다.

반죽을 만드는 법도 노하우가 있다. 그것은 업무상 비밀. 하루 체험으로는 봐도 모른다. 굽는 데도 반죽의 양과 틀 안에서의 현란한 기술이 동반돼야 했다. 예쁜 모양과 적당한 색감의 달걀빵은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었다. 기자가 만든 달걀빵은 차마 팔 수 없는 상태다. 기자의 입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가 보여 많이 만들어보지 못한 채 영업(?)에 집중해야 했다.

이날 신설동역 10번 출구 앞은 어느 때보다 한산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출근길에 달걀빵을 사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강씨는 판매에 의욕을 보이던 기자에게 “올해 들어 지나는 사람도 줄어들고 판매도 부진하다”고 토로했다. 경기 탓인지 나라가 혼란해서인지는 알 수 없다. 노점상인의 입장에서는 손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불안한 미래인데 원인을 알 수 없는 한적함은 노점상인의 마음을 더욱 공허하게 만들었다.

대란

달걀빵은 생각처럼 잘 팔리지 않았다. 원인은 가격 때문이다. 달걀 파동이 있은 후 가격을 1개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올렸다. 강씨는 “달걀 한판에 5000원이었다. 그런데 AI이후 9000원으로 뛰었다”면서 “달걀 값이 두배 가까이 오르면서 달걀빵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날 손님 중 상당수가 1500원으로 오른 달걀빵 가격에 흠칫 놀라는 모습이었다. “1500원이에요?”라며 놀라는 반응을 보일 때마다 강씨는 즉석에서 할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3개 4500원이면 4000원에 해주는 것. 뒤돌아서는 손님에게는 1개 1000원에라도 팔려고 애를 썼다.

강씨는 “가격을 안 올리면 남는 게 없고, 올리면 안 팔리고 난감한 상황”이라며 “우리 같은 장사는 겨울 한 철인데 하필 이런 일이 터져버려서 걱정이다”고 하소연했다.

오전 내내 판 달걀빵은 10개 남짓. 생각보다 심각하다. 다가오는 손님에게 연신 인사를 하며 또 와 달라고 부탁하고 맛있는 달걀빵 냄새도 솔솔 풍겨봤지만 무용지물이다. 강씨는 하루에 많으면 10만원, 한 달에 15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린다고.

아침 7시에 거리로 출근해 밤 10시까지의 노동치고는 그리 많은 돈은 아니다. 이날도 기자와 둘이 열심히 팔려고 해봤지만 수중에는 몇 만원 들어오지 않았다.

인생

이러다 보니 좁은 노점 안쪽에 앉아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더 길어졌다. 추위 속에서도 따끈한 인생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강씨는 부산에서 일을 하다 30년 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처음 서울 생활을 하면서 공장에서 일을 했다. 남는 시간에 부업으로 시작한 게 지금의 노점상이었다. 20년 넘게 수십군데 장소에서 밤빵, 달걀빵, 오방빵 등 다양한 빵을 구워 팔았다. 그는 노점상 빵 장사의 산증인이다.

강씨는 “예전에는 조폭들한테 자릿세 명목으로 담뱃값깨나 쥐어줘야 장사를 할 수 있었지만 요새는 그런 것이 없어져서 편한 점도 있다”며 “오늘 하루 충실히 살아가면 그걸로 감사한 일 아니겠느냐”고 피력했다.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아들이 열심히 살았으면 하는 바람. 그는 “다른 건 필요 없다. 다만 아들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사상 초유의 조류독감 사태를 촉발한 무능한 정부. 그 무능함에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소상공인들의 애환도 늘어간다. 노점상인 체험은 우리 정부의 무능함이 국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를 느끼게 해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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