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뉴시스

유엔 협약 위반 논란 혹독한 검증 등 첩첩산중  
설 민심 1차 분수령…'개헌' 고리로 연대 가능성

[민주신문=강인범 기자] "정권 교체가 아니라 정치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 12일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1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일성이다. 사실상 대권 도전을 공식화 한 것이다. '촛불'로 대변되는 광장 민심을 강조했으며 자신의 약점으로 거론되는 권력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반 전 총장의 대권 도전에 따라 대선판이 변화무쌍해졌다. 유엔 협약 위반 논란과 본격화 할 혹독한 검증까지 그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단 설 민심이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개헌을 고리로 한 제 3지대와 연대 가능성 등 양분된 진보와 보수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는 포용력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대선 태풍의 눈 반기문 전 총장이 돌아왔다. '충청 대망론'의 상징과도 같은 그가 정쟁에 뛰어들면서 유력 대선 주자들이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귀국 일성에서 반 전 총장의 대선 전략이 엿보인다. 정권 교체가 아닌 정치 교체를 강조했다. 진보와 보수진영 모두를 아우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는 게 중론이다.

반 전 총장이 대권 경쟁에 뛰어들면서 대선판 자체가 변화무쌍,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정국으로 정권교체에 한 걸음 더 다가섰던 야권 입장에서는 경계대상 1호다. 반 전 총장의 행보에 따라 유력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 전 대표와 민주당의 대권 플랜에 상당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약세를 면치 못했던 국민의당과 존재감이 미미했던 손학규 전 민주당 고문도 반 전 총장을 고리로 한 '제3지대' 연대로 분위기를 반전시킬 기회를 맞았다. 반 전 총장 귀국에 맞춰,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은 같은 듯 다른 분위기다. 

국정농단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두 정당은 반 전 총장 카드가 상당히 매력적이긴 하지만 동상이몽에 가깝다. 

새누리당은 친박 청산에 실패한 후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어, 반 전 총장의 선택지에서 지워졌다고 볼 수 있다.

깨끗한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 바른정당도 반 전 총장과의 연대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국민 여론이 차갑다는 점에서 연대 등의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중론이다.

반 전 총장이 대선 태풍의 눈이 맞지만 그의 정치 행보가 쉽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유엔 협약 위반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친인척 비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한 유력 인사는 이에 대해 "일단 캠프 구성이 중요하다. 어떤 인물들이 반 전 총장을 보좌하느냐에 따라 향후 정치적 행보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 뒤 "유엔과 비리가 1차 관문이다. 이 부분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내놔야만 국민이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제3지대

MB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은 13일 한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이 기존 정당과 바로 연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설 이전까지는 제3지대에서 홀로 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전략으로 갈 것 같다. 이후 다른 세력과 연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빅텐트론'이 실현되면 대선이 민주당 단독 세력과 제3지대 연합 세력의 대결 구도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한편 반 전 총장 캠프에 곽승준·이동관 전 수석, 이상일 전 의원 등 친이계 인사가 대거 포진해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정치권에 새로운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며 "캠프를 꾸리려면 과거 큰 선거를 치러본 유경험자들이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제3지대와 연결고리는 '개헌'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3지대에서 7공화국 탄생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12일 충남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은 당장 해도 된다"며 "핵심은 대통령의 무소불위 권한을 분산하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계에서 제3지대라고 하지만 전 '개혁세력'이라고 표현한다"며 "반 전 총장이 개혁세력과 저에게 관심을 갖는다면 만나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열어 놨다.

손 전 대표를 비롯해 제3지대에선 최근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한 이재오 전 의원이 대표적 개헌론자이다. 

또한 정의화 전 국회의장 역시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손학규 전 대표에 대한 러브콜을 지속하고 있고 국민의당은 최근 당 강령에 개헌추진 의사를 규정할 계획이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역시 반 전 총장 귀국에 맞춰 '분권과 협치의 권력구조 개편'을 명분으로 대선 전 개헌 추진에 대한 공감대를 피력한 상태다. 개헌이 차기 대선을 관통할 핵심 의제로 부상한 상태로 정략적 개헌은 반대한다는 친문진영과 나머지 정치세력과 사활을 건 이전투구가 예고되고 있다.

문재인(왼쪽)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신한류플러스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열린 '함께여는 미래-18세 선거권 이야기'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여론

반 전 총장이 조기 대선이라는 변수가 발생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얼마나 세를 불릴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반 전 총장 귀국 즈음에 맞춰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의 공고한 '벽'은 재확인 됐다.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은 지난 10∼12일 전국 성인 1007명에게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문 전 대표를 꼽은 응답자가 31%로 가장 많았다. 

이는 지난해 12월6∼8일 조사 때 보다 11%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어 반 전 총장이 20%로 2위에 올랐고, 이재명 성남시장이 12%로 3위였다. 그 뒤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7%, 안희정 충남지사 6%, 황교안 국무총리 5%,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3%, 손학규 전 의원 2%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지난번 조사에 비해 보합권을 기록했다. 다만 12일 오후 귀국했기에 그에게 쏠린 여론의 관심은 이번 조사에서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이 41%로 고공질주를 계속했고, 새누리당이 12%, 국민의당이 10%, 바른정당이 7%, 정의당이 3%를 차지했다. 지지정당 없음은 27%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3일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자격과 관련 걸림돌로 지적된 국내 거주 문제와 관련, "제19대 대통령선거일까지 5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사실이 있다면, 공무 외국파견 또는 국내에 주소를 두고 일정기간 외국체류 여부를 불문하고 피선거권이 있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 자격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전망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유순택 여사와 함께 13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학도의용군 무명용사의 탑 참배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험로

당장 민주당의 파상 공세 등 숱한 난관과 암초가 예고돼 반 전 총장의 행로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그가 이 과정에서 정치적 역량과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면 향후 대권 레이스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반 전 총장을 지지하는 내부그룹에서도 조차 견해차가 표면화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반 전 총장은 '보수'가 벼랑끝까지 몰리게 된 원인을 국민과의 의사소통 실패와 국민의 피부에 와 닿는 개혁성과의 부재로 진단하고 청년층 등 국민과의 대화에 적극 나서고, 공허한 정치담론보다는 민생경제 등 국민의 관심사 해결에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전해진다.

반 전 총장은 귀국 다음날 오전 전입신고를 위해 서울 동작구 사당로 주민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청년실업은 한국도 문제가 있지만 전 세계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심지어 스페인 같은 나라는 40%, 우리나라도 9∼10% 정도이며 실제 체감은 20% 이상 되는 것으로 느끼고 있다"며 "정부 지도자들이 심각한 의식을 갖고 해결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당장 민주당의 반기문 전 총장에 대한 집중 견제도 심상치 않다. 반 전 총장이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반 전 총장 동생 부자의 뇌물 의혹, 유엔 사무총장 재임시 업적, 측근 성향 등 대상은 전방위적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반 전 총장 동생 부자의 뇌물 의혹과 관련해 "반 전 총장 귀국 직전 형과 사촌이 뇌물죄로 기소됐다. 국내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뇌물죄 의혹을 사면서 국제사회 망신을 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친인척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반 전 총장이 귀국해서 대통령 후보로 뛰실 것처럼 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국제 사회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추 대표는 반 전 총장의 측근 세력을 겨냥해 "지난 10년간 나라를 망치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패권과 기득권을 누린 사람들과 무엇을 함께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면서 "반 전 총장 지적대로 우리나라를 총체적 난관으로 몰아간 사람이 반 전 총장 옆에 있는 이명박·박근혜 정권 사람이다"고도 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도 "반 전 총장의 데뷔전은 실패했다. 특별한 비전도 새로운 내용도 없는 메시지로 일관했다"며 "(반 전 총장이) 정치교체를 말했는데 이분은 정치교체보다 옆에 서계신 분들부터 교체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반 전 총장의 행보는 당장 설 민심이 고비다.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개혁을 이루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가 국민들에게 어필 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지지율의 정체현상도 타개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대선이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 연대 가능성이 희박해 짐에 따라 바른정당 국민의당 및 제 3지대 세력 중 어느 진영과 반 전 총장이 손을 잡느냐 여부도 그의 정체성을 판가름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두 번의 대선에선 모두 보수정당이 승리했다. 통상 선거전문가들은 '51 : 49'라는 숫자에 적지 않은 의미를 둔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DJ·노무현 대통령 모두 '51%'의 선택을 얻어 대선에서 승리했다. 

18대 대선 박근혜 vs 문재인 구도에서도 51.6%와 48.0%로 명암이 엇갈렸다. 야권은 이번 만큼은 자신들이 '51%의 주인공'이 돼서 정권교체를 이룰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

반면 반 전 총장은 "대한민국의 도약을 위해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사르겠다"고 외치고 있다. 외연 넓히기와 정치개혁 명분 제시에 주력할 반 전 총장과 대선 후보가 즐비한 야권진영간 대선 주도권 경쟁이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정치권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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