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규 자살 이후 심경에 변화”

 
안산 상록경찰서 강력 1팀. 잦은 외근과 야근에 지쳐 있는 듯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날카롭게 번뜩이고 있는 한 형사가 기자를 맞이했다. 그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형사’라는 것을 알아 챌 만큼 당당한 풍채를 지닌 그는 지난해 1월, 서울 서남부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은 ‘연쇄살인범’ 강호순(42) 씨를 직접 검거한 한춘식(39) 경위다. 지난 19일, 2009년 한 해 동안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을 되짚어 보며 강 씨의 현재 근황에 대해 물었다.
 
-강호순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몇 번이나 만나봤나.
“세 번 찾아갔지만 그 중에서 두 번을 만날 수 있었다. 모두 수사접견을 목적으로 만났다. 3월 접견에서는 미제사건으로 기록된 2004년 충북에서 실종된 여성의 유골이 발견돼 여죄를 확인하기 위해서 찾아갔고, 8월에는 그가 몰던 무쏘 차량의 포기각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폐차해도 되겠냐’고 물으니 ‘어차피 탈일도 없을 텐데 마음대로 하라’며 흔쾌히(?) 대답했다. 무쏘는 그가 부녀자들을 살해한 주요 장소다. 지난해 12월에는 개인적으로 면회를 갔었는데 강호순이 가족 외에는 만나지 않겠다고 해서 거절당했다. 그렇지만 가족이 찾아오는 것 같지는 않다.”
 
-강호순의 두 아들에 대한 근황은 알고 있나.
“두 명다 남자인데, 한 명은 중학생이고 다른 한명은 고등학생이다. 어떻게 보면 강호순의 아들도 일종의 간접적 피해자다. 아들 두 명은 아버지의 범죄내용에 대한 세세한 부분들을 모두 알고 있다. 현재는 가평 쪽에 있는 이모 집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동네 인근 주민들이 경기도 서남부 연쇄살인범이 강호순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은 동네에서 살 수가 없다. 강호순도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된다는 것을 알고, 자식들이 피해 받을 것이라는 걸 알았을 때 당황스러워 했다. 한동안 시무룩해 했다. 강호순에 따르면 두 아들은아마추어 레슬링 전국대회에 출전해 상위권에 입상할 정도로 운동을 잘한다고 한다.”
 
-수개월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강호순에게 변화된 점이 있나.
“일단 많이 수척해졌다. 5kg이상은 살이 빠진 것 같았다. 말수도 줄었다. 경찰조사 때까지만 하더라도 농담이나 인면수심 대답을 많이 했었는데 그런 것들이 없어졌다. 물론 수사접견 자리였고 강호순 주위에 교도관들이 있어 농담할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확실히 의기소침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도 특유의 여유로운 모습과 뻔뻔한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보통은 미세하게라도 떨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형판결 확정을 받은 지 시간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담담해 하는 것 같았다.”
 
-교도서 내에서 ‘왕’처럼 지낸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다.
“강호순이 교도서에서 생활하는 소식은 전해 듣지도, 알 수도 없다. 원래 교도서가 내부의 일은 잘 누설하지도 않을뿐더러, 정남규 자살이후로 사형수들의 생활이나 심리상태 등이 알려지는 것을 더욱 경계하고 있다. 다만, 모 일간지 기자가 교도관과 인터뷰 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기사에서는 강호순이 밥도 한 끼 거르는 일 없이 꼬박꼬박 챙겨먹고, 운동도 성실히 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다른 수감자들에게 ‘위엄’을 부리며 ‘왕’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했는데, 사실인지의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알고 있는 강호순은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만한 위인도 아니고, 그런 주변머리도 없다.”
 
-그래도 상당히 똑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혀 똑똑하지 않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조리 있게 말하는 척하다보니 언변이 뛰어나 보일 뿐이다. 또 자신에 대한 허세와 과장이 심해 머리가 좋아 보일 뿐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범죄와 관련해서 만큼은 상당히 치밀하고 지능적이었다. 강호순은 살인을 저지르기 전, 또는 저지르면서 범죄에 관련된 책, TV프로그램, DNA, 경찰 수사 관련 방송 등을 찾아보며 자료를 수집했고 연구해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 적용시켰다. 특히 증거를 인멸하는 부분에서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피해 여성들이 저항할 때 손톱에 긁혀 자신의 DNA가 묻어 있을까봐 피해자들을 땅에 매장할 때 모두 손가락을 절단한 채로 묻기도 했다. 수사망을 좁혀 들어갈 때도 전화내역 수사에 한 번 밖에 걸리지 않았다. 검거 뒤에 강호순의 진술을 통해서 알았을 정도다.”  
 
-다른 사형수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지금 말한 치밀한 범죄수법이 다른 사형수들과의 차이점이다. 보통 범죄자들은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거나 자기 딴에는 치밀하게 범죄를 계획한다고 생각해도 연쇄살인으로 이어지기 전에 들통 난다. 또 다른 범죄자는 경찰에 붙잡히면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표정을 짓거나 조금의 미안한 기색이라도 보이는데, 강호순은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뻔뻔하다. 그는 자신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던 강호순이 무너져 내린 것을 처음 봤을 때는 언제인가.
“검거당시, 경찰조사, 검찰로 송치할 때, 심지어는 사형확정 판결이 났을 때조차 그는 담담해 보였다. 조롱 섞인 말투, 행동들 모두 똑같았다. 그런데 지난해 8월 무쏘차량 포기각서를 받으러 갔을 때는 이전과 확실히 틀렸다. 예전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는 결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심정에 대해서는 얘기 안한다. 교도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 그의 심리에 변화가 생겼는지는 알 수 없다. 그때는 정남규가 자살하기 전이어서 사형과 관련된 문제는 아닌 듯 싶다.”
                                     
-정남규 씨 자살 이후 강호순에게도 심리적 충격이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나.
“만약에 강호순이 정남규의 자살소식을 들었다면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워낙에 외부와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소식을 못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한 신문 기사에서 서울구치소 관계자가 말하길 ‘강호순은 심리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태이며, 비로소 자신도 언제든지 사형이 집행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강호순도 사람이라면 자신이 죽는 것만큼은 무서울 것이다.”  
 
-강호순 같은 범죄자가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또 마지막으로 경찰로서 새해 포부에 대해 말해 달라.
“범죄자들이 보통 말하는 ‘가정환경’과 ‘주변환경’이 살인자 인격을 만들었다는 말은 다 합리화일 뿐이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정에서도 범죄자가 나올 수 있고, 불화가정 출신이라도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우리는 사건이 벌어지면 최대한 빨리 잡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또 험악한 세상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될 소지가 있는 사람들은 항상 돌발 상황에 잘 대처할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생활하고 위험요소가 최대한 적어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올해도 열심히 뛰어다니겠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강호순은 누구
잔인하고 지능적인 ‘연쇄살인마’

범죄수법 학습, 죄의식 없는 전형적 사이코패스
경찰 조롱 “살인 하고픈 날 있다” 충격 발언도
지난 2009년 한 해 동안 국민을 가장 경악케 한 사건은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경기 서울 서남부 일대를 중심으로 부녀자 10명을 살해한, 일명 ‘강호순(42) 사건’이다.
훤칠한 외모의 소유자인 강 씨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에서 여성을 꾀어내 차량에 태운 뒤 스타킹으로 목을 조르거나 흉기를 이용해 살해, 이후 인근 야산에 매장하는 수법을 사용해 왔다. 특히 그는 집에 불을 질러 장모와 처를 살해하기도 했다.
‘완전범죄’를 위해 피해 여성들의 손가락을 모두 절단한 채 매장하는 잔인함과 치밀함을 보였다. 교재를 통해 범죄수법 등을 직접 공부하고, 실제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접목시키는 등 지능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06년 9월, 정선군청 여직원 살해를 시작으로 2년여 만에 10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강 씨는 2009년 1월 24일 자신이 근무하던 한 마사지 숍에서 수사망을 좁혀오던 경찰에게 검거됐다.
그는 경찰에 검거될 당시 태연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유유히 경찰서로 향했다고 알려져 충격을 줬다. 경찰조사에서도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았을 것 같은 뻔뻔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진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에게 일말의 죄책감이나 반성하는 기미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문책하는 경찰에게 강씨는 “허수아비 같은 경찰이 나를 잡을지 몰랐다”며 “경찰을 다시 보게 됐다”고 조롱 섞인 말로 응수했다. 또 경찰이 사체 수색작업에 나가기 전 그는 “시체가 어디 있는지 내가 가르쳐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형사들이 제대로 대답하라고 짜증을 내면 강씨는 생글거리며 “나에게 화풀이 하지 말고 형사과장을 나에게 데려 와라.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직접 죽여주겠다”고 말해 주변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강씨는 자신이 죽인 피해 여성들의 사진을 보며, 죽이게 된 경위와 내용, 시체가 묻혀 있는 장소들을 일일이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 여성을 유혹하는 일에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렇게 꾀어내 살인을 했다”며 “살인을 하고 싶은 날이 있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데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스타킹으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다만 죽어가는 과정을 보기 싫어서 숨이 멎을 때까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2009년 8월 3일 사형이 확정돼 현재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찬>
 
 
 

강호순 모방범죄 일당 검거
강남 부유층 여성 납치 후 성폭행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부녀자 10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마 강호순(42) 씨의 범죄를 모방해 강남 부유층 여성을 성폭행한 20대 일당 3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지난 2009년 8월 18일 서울 서초경찰서는 강남에서 귀가 중이던 여성을 납치해 금품을 빼앗고 집단으로 성폭행한 혐의(특수강도 등)로 방모(27) 씨등 3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방씨 일당은 초등학교 동창 사이로 강호순의 범죄행각을 모방해 강남 부유층 여성을 납치하기로 공모했다.
지난 8월 14일 방모씨 일당은 서울 서초구의 골목길에서 귀가 중인 여성 A씨를 폭행 후 납치. 이어 차량에 태운 후 손과 발, 입을 청 테이프로 묶은 뒤 충남 천안시의 한 야산으로 끌고가 현금 40만원을 갈취하고 집단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행 당시 방씨는 피해 여성에게 “우리는 강호순의 후배이고 강호순은 우리의 우상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고 밝혀졌다.
방씨 일당은 이외에도 취객 등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200여만원의 금품도 빼앗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배기열 부장판사)는 방씨 일당의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며 방씨에게 징역 13년을, 나머지 두 명에게는 각각 징역 10년과 8년형을 선고했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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