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원수로 갚은 노숙자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인면수심’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평소 무료로 숙식을 제공받고 매달 10만원씩 용돈도 타 쓰던 한 노숙자가 선량한 집주인 일가를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아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 경찰서는 자신을 무시한다고 논쟁을 벌이다 집 주인 최모(54) 씨와 그의 어머니 장모(91) 할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노숙자 강모(46)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엄동설한 추위에 자신을 재워주고 먹여주던 지인 최씨의 집에서 술을 먹던 도중 매달 주던 용돈 10만원을 제때 주지 않았다고 말다툼을 벌이다 홧김에 최씨를 살해, 내친김에 그의 어머니까지 살해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조사한 영등포 경찰서 강력3팀의 한 관계자는 “도와주고 싶어도 언제 발등 찍힐까 무서워해야 되는 세상”이라며 혀를 찼다.

3년 전인 2007년 중순경, 집 없이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강씨는 가끔 일용직 노동일을 하며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우연히 공사현장에서 최씨를 만나게 된 강씨는 종종 술자리를 가지며 친분을 쌓아갔다.

최씨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한 다가구주택의 지하 1층에 10평 남짓한 원룸에서 90대 어머니 장씨를 모시고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집은 있었지만 딱히 직업이 없던 최씨는 영등포역 인근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강씨, 또 그의 동료들과 가깝게 지내며 세월을 보냈다. 집과 영등포역을 오가는 ‘반 노숙자’ 생활을 한 것이다.

노숙생활을 하며 점점 친분이 두터워지던 강씨와 최씨. 겨울이 되자 갈 곳 없다는 강씨의 하소연을 들은 최씨는 2007년부터 3년 동안 강추위가 찾아 올 때면 자신의 집에서 재워주고 식사를 제공했다.

그러던 강씨는 지난해 9월경부터 아예 최씨의 집에 눌러앉게 됐다. 작은 지하 원룸 방에 세 명이 살게 되자 집은 비좁아졌다. 석 달 동안의 불편한 생활에, 오히려 신세를 지고 있는 강씨가 다혈질적으로 변해갔고, 최씨에 대해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강씨는 최씨에게 “100만원만 주면 지금보다 훨씬 큰 집으로 이사하게 될 것”이라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수치심을 느꼈다. 또 예전보다 밥을 잘 안 챙겨 준다고 느낀 강씨의 불만은 계속 커져만 갔다.

사건은 지난 7일 발생했다. 최씨의 집에서 자주 술을 먹던 강씨는 그날도 과음을 해 만취상태가 됐다. 강씨는 “왜 매달 주던 용돈 10만원을 안 주냐. 나를 무시하냐”며 그 동안 쌓여왔던 불만이 폭발했다. 심한 말다툼이 오갔고, 화가 난 강씨는 집에 있던 흉기를 이용해  최씨를 수차례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사건현장을 목격한 최씨의 어머니 장씨까지 봉변을 당했다. 강씨는 장씨를 이마, 복부 등을 찌르는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강씨는 모자를 살해한 다음 서둘러 집을 빠져나갔지만, 경찰에 붙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최씨의 집을 자주 드나들던 지인이 모자의 시체를 발견, 곧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최씨의 주위 사람들을 통해 노숙자 강씨가 몇 달간 이들과 함께 생활했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경찰은 사건 이틀 만인 지난 9일 강씨를 영등포역 인근에서 붙잡았다.

지인들에 따르면 최씨는 정이 많은 성품으로 추위에 떨고 있는 강씨를 내버려 둘 수 없어 선행을 하려 했던 것이 오히려 화근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영등포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발견 당시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면식범 소행으로 판단하고 피해자 집을 드나들던 사람을 상대로 수사를 해 강씨를 검거했다”면서 “강씨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말했다.

강씨는 경찰조사에서 “최씨의 집에 살면서 모자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만이 쌓여갔다”며 “특히 최씨가 돈이 있다고 깔보는 것 같이 느껴져 만취가 된 상태에서 홧김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영등포경찰서 측 관계자들은 “참으로 무서운 세상”이라면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어도 배신당하거나 ‘믿는 도끼에 발등이라도 찍힐까봐’ 함부로 나서지도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부디 이번 사건이 안타까운 사람들을 도우려는 심성 고운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실감나는 연기 위해 염산 마셔
황당사건- 술값 대신 목숨 건 ‘엽기남’

술값을 안내기 위해 물에 염산을 희석시켜 마신 30대 엽기남이 경찰에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8개월간의 징역 선고를 받았다.
지난 2일 서울북부지방법원에 따르면 30대 남성 A(32)씨가 B(여)씨가 운영하는 주점을 찾은 것은 지난해 8월경. A씨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양주 3병과 안주 등 약 54만원어치를 해치웠다. 새벽 4시까지 연거푸 술을 들이키던 A씨는 주점에 손님이 빠져나가고 주인이 청소를 시작하려고 하자 갑자기 배를 움켜쥐더니 바닥을 뒹굴었다. A씨는 “너희가 준 이상한 물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책임지라”고 소리 질렀고, 곧바로 응급실로 후송됐다.
그런데 사태를 마무리하기 위해 주점에 남아 있던 주인 B씨는 A씨의 자리에서 수상한 ‘물건’을 발견하게 됐다. 바로 염산이 담긴 500㎖ 생수통. 술값을 내기 싫었던 A씨는 실감나는 연기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염산을 물잔에 섞어 몇 잔을 마셨던 것이다. 속은 것을 알아차린 B씨가 응급실에 서둘러 전화했지만, 이미 A씨는 위세척을 마치고 도주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미 특수강도·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경력이 있었던 용의자는 경찰에 집요한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했고,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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