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보다 배꼽 큰’ 뇌물 의혹



2009년 12월 25일 광주 남부경찰서는 구의회 A의원에게 배달해야 될 돈 상자를 실수로 앞집으로 전달해 덜미를 잡힌 광주 모 시립도서관 계약직 직원 이모(52·여) 씨를 소환해 인사청탁용 뇌물 수수인지 조사, 지난 4일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씨는 A의원 이외에도 광주의 한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B(35·여) 씨에게도 같은 금액의 돈 상자를 배달한 것으로 밝혀졌다.
 
돈상자 잘못 보냈다가 덜미
 
경찰에 따르면 이씨가 A의원에게 돈을 배달한 날짜는 2009년 12월 4일. 이씨는 현금 500만원이 들어있는 돈 상자를 남구에 위치한 A의원의 집으로 보내려 했지만 주소를 잘못 기재하는 바람에 앞집으로 전달해 버렸다. 돈 상자를 건네받은 집 주인은 이를 경비소에 맡겼다.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알아챈 이씨는 경비실로 찾아가 상자를 돌려받을 것을 요구했지만 경비원은 돈이 들어있다는 이유로 이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이씨는 상자를 돌려받기 위해 경찰에 스스로 신고했다.

또 이씨는 지난해 11월 22일에도 동사무소 직원 B씨에게도 500만원이 든 돈 상자를 전달했지만 B씨는 이튿날 이 돈을 이씨에게 돌려줬다. 공공근로 계약직으로 여러 차례 일한 경험이 있던 이씨는 공무원인 B씨와 업무상 마주치며 인연을 만들었고 개인적인 안부전화나 모임 등을 가졌던 사이다.

경찰은 광주 모 시립도서관에서 6개월 계약직 직원으로 근무하는 이씨가 올해 초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서 남구청이 공고한 ‘의료급여관리사’ 인력채용을 노리고 두 명의 인사에게 뇌물을 전달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찰은 이씨를 소환하는 한편, A의원과 B씨에게 건네려 한 돈 상자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인사청탁용 뇌물 수수라고 판단했다. 또 A의원과 사전교감을 했을 가능성, B씨와의 관계 등에 대해 집중 수사했다.

경찰조사 결과 사건은 의문점만을 남겨놓았다. 세 명의 진술은 엇갈렸고, 특히 이씨의 행동 중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혹만 ‘모락모락’
 
여기서부터 의문점은 시작된다. 첫번째 의문점은 이씨가 의료급여관리사에 채용됐을 경우 받게 될 예상연봉과 그가 전달한 돈 상자의 액수가 상식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계약직 연봉은 보통 1,300~1,600만원 사이. 이씨가 A의원과 B씨에게 전달한 금액이 1,000만원이라는 것을 상기시켜보면 사실상 1년 치 연봉의 2/3 가량을 건네준 것이다. 상식적으로 투자대비 수익성(?)이 이해타산과 맞지 않는다.

그는 왜 자신이 받을 연봉에 비해 그토록 많은 액수의 뇌물을 건넨 것일까. 남부경찰서 지능수사팀에 따르면 이씨는 그다지 형편이 넉넉한 편도 아니라고 전했다.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이씨는 가족도 없이 독신으로 살고 있다. 아마 예상연봉 대비 지나치게 많은 금액인 1,000만원의 뇌물을 건넸다는 것은 이씨가 ‘일’ 한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두고 사는 것 같다”고 생각을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씨가 원하는 최종목표는 ‘일자리’가 아닌 더 큰 ‘무엇’ 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증거는 나오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두 번째 의문점은 이씨와 A의원, B씨 간의 관계다. 경찰은 A의원이 이씨와 사전교감이 있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A의원은 “안면도 없는 사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씨의 휴대폰 전화통화 내역 상에는 A씨의 사무실에 수차례 전화를 시도한 흔적이 남아있었지만, A의원의 휴대폰 통화내역에서는 이씨와 관련된 전화번호가 검색되지 않았다. 경찰은 증거를 찾지 못했고 이씨의 일방적인 구애(?)로 판단. 지난 3일 A의원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렸다.

남부경찰서는 증거가 없어 A의원에게 무혐의 판정을 내렸지만 일부 관계자들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 이씨가 사전교감 없이 막무가내로 거금 500만원을 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게다가 7급 공무원인 B씨는 이씨가 구하려는 일자리와 직접적으로 연관돼 있지 않았고 동사무소 내에서도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 아님에도 불구 거금을 건넸다는 것 역시 의문점으로 남는다.

6일 현재, 경찰은 이씨가 뇌물을 또 다른 인물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는 한편,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기도 하다. A의원과 B씨는 ‘자신과 상관없는 일’, ‘이씨가 단독적으로 벌인 사건’이라는 진술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씨 역시 시원한 답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수사는 장기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짙다.

과연 잘못 전달된 ‘사과상자(돈상자)’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지, 경찰의 수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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