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25일 동대문 화상경마장 내부 전경.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2015년 기준 화상경마장을 찾은 인구가 1300만명을 넘어섰다. 중복 인원을 감안하더라도 엄청난 수치다. 

실제로 서울에만 10곳, 전국적으로 40개의 화상경마장이 성행하고 있다. 기자도 경마에 문외한이다. 이에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화상경마장을 찾아 직접 체험해보고 실상을 알아보기로 했다. 

그곳엔 ‘도박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천태만상으로 인해 ‘몸살’을 앓는 사람들도 있었다.

풍경

12월25일 오전 11시께 지하철 1호선 신설동역 10번 출구 인근은 경마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하철 역사를 나오자마자 경마정보지를 판매하는 수많은 노점상이 눈에 들어왔다. 

한 권에 1000원짜리 경마지는 그날 출전하는 말과 기수, 예상 순위에 관한 정보들을 빼곡히 담고 있다. 기자도 ‘대박의 꿈(?)’을 품고 경마정보지 한 권을 구매했다.

이곳에서 수년째 경마지를 팔고 있다는 A(50대/여)씨는 “지금 자리가 다 매진돼 못 들어간다”며 “오후 1시30분쯤 취소된 좌석을 판매할 때 운이 좋으면 표를 구매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동대문 화상경마장은 3000석 이상의 좌석이 있다. 그러나 아침부터 매진 행렬이다. 경마에 빠진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안에서는 과연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중독

몇 시간 동안 주변을 서성인 끝에 오후 1시쯤 경마장 1층 매표소에 들어가 줄을 섰다. 

기자처럼 늦게 온 사람들이 언뜻 봐도 100명은 돼 보였다. 기자 뒤에 줄을 서 있던 한 60대 남성에게 슬쩍 말을 걸어봤다. 이 남성은 신설동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으며 자신의 경마인생이 30년이라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처럼 어릴 적에 경마로 3000만원을 딴 적이 있다”며 “그게 시작이었다”고 회상했다. 30년 경력과 경험에 놀라는 기자에게 “3000만원을 딴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많이 잃었으니까”라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산을 탕진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경마에 빠져 주말이면 거의 이곳에서 산다고. 경마를 오래 하다 보니 경마동호회처럼 매번 같이 오는 사람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이 60대 남성은 “주말에 여기 한 번 들어오면 정신없이 하루가 가버린다”며 “같이 온 사람 중 돈을 딴 사람이 있으면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 다 써버리기 일쑤다”고 말했다.

게임

화상 경마란 말 그대로 TV화면으로 경마를 보면서 베팅을 하는 것이다. 오전 11시 첫 경기를 시작으로 매 30분마다 경주가 펼쳐지기 전 베팅을 하면 된다. 

최소 1000원에서 10만원까지 베팅할 수 있다. 실제 경주는 2분 내로 끝이 나지만 그 전까지 경마객들의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된다. 

경마 경기가 나오는 스크린과는 별도로 수십개의 TV에서는 베팅 확률·베팅액이 실시간으로 집계돼 전송된다. 기자도 몇 천원을 들여 베팅에 참여해봤지만 실력 때문인지 운이 없어서인지 전부 잃고 말았다.

화상 경마장 분위기는 굉장히 험하다. 표를 사는 입구에서부터 “XX”이라는 욕이 난무한다. 줄을 서던 한 남성은 자신의 앞에서 표가 매진되자 안내직원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여직원들의 표정은 순간 경직됐지만 기자가 쳐다보자 ‘늘 있는 일’이라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특히 경마 경주가 시작되고 말들이 결승선을 들어와 순위가 발표되면 수백명의 사람들이 각자만의 욕설과 한탄, 한숨을 내뱉는다. 그 사이엔 환호성과 기쁨의 포효도 가끔 섞여 있다. 

기자 뒤에서 욕설을 내뱉던 한 남성은 “으휴, 내가 왜 경마를 시작해가지고!”라며 지인에게 한탄을 쏟아냈다. 이에 일행으로 보이는 남성은 위로는커녕 “내가 그 말 찍지 말랬지!”라며 역정을 냈다.

동대문 화상경마장 매표소. 오전부터 전층 전좌석이 매진된 모습.

문제

경마로 돈을 잃은 사람들은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인근 포장마차를 찾거나 상가로 이동한다. 

주변 상인들의 시선은 극명히 갈렸다. 인근 고깃집에서 일하는 한 직원은 “경마객들도 손님으로 오곤 해 매출에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전체 손님 중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적다”고 말했다.

주변 커피숍 직원 안모(25/여)씨는 “경마객들은 보통 나이 드신 아저씨들 혹은 거친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술 먹고 돌아다니는 사람들끼리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어 불안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경마객들이 상권에 도움이 되면서도 건전한 동네 분위기 조성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날은 아니지만 기자도 이 일대를 지나다가 시비가 붙은 경마객과 이를 말리는 경찰의 대치 상황을 종종 목격한 적이 있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지정좌석제 시행으로 입장인원의 과밀화를 해소하고 있으며 자체적으로 질서유지·미화 인력을 투입해 주변 관리에 만전을 다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지침들이 잘 지켜져 경마가 건전 사행사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기자가 만나본 경마객과 경마장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이런 데 오지 마라”는 당부를 전했다. 도박에 빠지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본인들은 그 늪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경마장 내에서 그들이 내뱉은 진심어린 한탄과 욕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사회가 그들에게 희망고문을 하는 것은 아닐까. 대박의 꿈을 안고 오늘도 경마장으로 향하는 그들의 활기찬 뒷모습이 왠지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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