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사악한 왕국

〈전편 이어서〉

홍계관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루어지려던 장소가 바로 아차산 밑이었다. 어명을 받든 산하가 급히 말을 몰고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어명이니 사형집행을 중지하라.” 망나니는 선뜻 칼을 내려치지 못하고 휘두르고만 있었다. 이때 어명을 받든 신하가 달려오며 무엇인가 소리를 지르자 망나니는 집행을 늦추는 것을 책망하는 줄로 생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늦추었다가는 문책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망나니는 즉시 홍계관의 목을 향해 칼을 내려치고 말았다. 오해로 인하여 한 순간 훌륭한 점쟁이의 목이 달아나고 만 것이었다.

“아차!” 모두가 안타까워했지만 이미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 산을 아차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다. ‘참 안됐어. 한 번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하다니!…… 왕의 한 마디에 운명이 달라져 버리는 사람들…… 신도 아닌 사람이 제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같은 인간의 삶을 마구 조져 놓은 곳은…… 바로 지옥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아. 만일 내가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선감원에 안 갔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일 엄마가 사이비 종교에 홀리지 않았다면…… 아, 홀린 엄마가 잘못인지, 홀린 그 노인이 나쁜지 아리송해지는군. 그나저나 대체 엄마는 지금 어디 있을까?…… 새하늘교에 들어온 게 과연 바른 길인지도 아리송해. 본당에 가면 아무래도 찾아보는 데 유리할지도 모르겠지만, 아차 하는 순간 너도 끝장날 수가 있으니 조심해야만 해. 악마들의 소굴일지도 모르니 말야…….’

이런저런 생각을 머릿속에서 굴리는 동안 이윽고 차는 아차산 기슭으로 오르는 울퉁불퉁한 길로 접어들었다. 조금 더 에돌아가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눈앞에 웅장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마음 한 구석이 위축될 정도였다. 오래전 선감도로 끌려가 푸른 산속의 회색 바라크 군群을 보았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곳에서는 죽음의 조종 소리가 영혼을 엄습하는 듯했는데, 이곳에선 장엄한 뜻 모를 미소를 짓는 성싶었다.

입구에는 거대한 철문이 한쪽만 열려 있고, 검푸른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둘이 양쪽에 부동자세로 서 있다가 차를 세웠다. 허리춤에 곤봉 같은 게 매달려 있었다. 운전수가 몇 마디 하자 진입이 허락되었다.

새하늘교의 교리가 동서양의 종교를 통합해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건물들은 일견 양식풍과 한식풍의 장점이 잘 조화되어 멋있어 보였다.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청기와 지붕을 떠받친 크림빛 대리석 팔각기둥과 번쩍거리는 창들은 아차산을 배경으로 마치 거룩한 신전처럼 보였다.

청운을 비롯해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갓 쓸어 놓은 듯 정갈한 마당을 지나 본당 앞의 천령탑으로 갔다. 하늘의 성령을 불러온다는 탑. 미리 교육 받은 대로 발소리뿐만 아니라 숨소리마저 죽여야 했다.

눈앞에 거대한 돌탑이 서 있었다. 다듬잇돌만한 돌을 차곡차곡 쌓은 그 탑은 첨성대 정도의 둘레에 높이는 까마득히 1백 미터 이상 솟아 푸른 하늘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돌은 짙은 검은 색이었는데 신비롭게도 그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그런 것 같진 않았다.

천령탑 앞의 검은 석판 위에 새하늘교의 근본 교리문이 아슴아슴 새겨져 있었다. 사람들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참배하는 동안 청운은 그것을 속으로 읽었다.

“청산(靑山)에 자라나는 생명나무의 씨알을 갈구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이제 마음의 눈을 뜨라. 허울뿐인 진리라는 미명 하에 스스로 구속당했던 과거의 종교 율법의 쇠사슬을 끊고 새로운 마음으로 태어나라.

창조와 진화의 종점은 현재의 인생이 아니다. 원숭이로부터 인간이란 새로운 종족이 진화했듯 죄와 사망을 초극한 인신이 탄생한다. 실로 경이롭게도 성스러운 몸으로 변신한 초인의 등장이로다! 인간이 영혼의 실재와 만나 영생의 존재로 도약하는 위대한 재창조 앞에 우리는 서 있는 것이다. 하늘에 거하는 신이 아니라 지상에서 성소를 찾은 신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바야흐로 영혼의 실재와 만나 껍질을 벗고 우화등선하여 그대들도 모두 새로운 신인으로 탄생하라!”

예전에 고향 집에 찾아든 괴상한 노신사의 입에서 나불나불 흘러나왔던 이른바 성언聖言이었다. 문득 왠지 청운의 두 눈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그는 다른 사람처럼 기도문을 외는 대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다음날부터 청운은 네 성문聖門 중에 남문南門 수비대에 배치되었다. 낮엔 두 사람씩 보초를 섰지만 밤이 되면 각 문마다 5명씩 조를 짜 수비를 했다. 알고 보니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뒤늦은 절규

며칠 후 교주 생일을 기념키 위하여 큰 잔치가 벌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10여 년의 세월 동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급성장한 새하늘교단엔 암종과도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다. 초인이 된다는 신비스럽고 희한한 새하늘 교리에 빠져 고군분투하다가 재산과 가족을 다 잃은 원한 맺힌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울부짖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기미를 포착한 부산 교당의 두목이 남부 방면의 세를 결집하여 본부 교당에 개혁을 요구하며 대항하다가 급기야 성탄신일을 기해 밀고 올라온다는 얘기였다. 그런 까닭에 위기감을 느낀 본부에서도 수도권 청년교도의 세를 규합하여 방비뿐 아니라 격퇴하기로 결정한 모양이었다.

“어려울 때 같은 동포들끼리 돕긴 커녕 왜 서로 싸우죠?” 청운이 초승달을 쳐다본 채로 윤호 형에게 물었다. 윤호는 스물다섯 살이라는데 앞머리가 많이 빠져 듬성듬성하고 허연 새치까지 많아 마치 중늙은이처럼 보였다. 다른 세 사람은 경비실에서 눈을 붙이고 있었다.

윤호는 혀가 짧아 좀 더듬거리며 대꾸했다. “잘은 모르지만…… 쌍방 간에 본래 교리를 잘못 변질시켰다고 야단인데…… 사실은 돈 때문이 아닌가 싶어.” 윤호는 히히 웃었다. 그러자 마치 하회탈처럼 주름살이 많아져 갑자기 노인네 같았다.

“응? 돈?” “새하늘교는 원래 부산 해운대에서 탄생했다고 해. 두 친구가 있었는데, 10년 공부를 약속하곤 하나는 신선도와 불교를 수도하고 다른 하나는 기독교를 신앙했다는 거야. 그런데 5년쯤 지난 후…… 도통이나 깨달음 여부를 떠나서…… 한 사람은 계속 공부를 하고 다른 한 친군 포기를 했다는군. 그 무렵은 혼란기라 이른바 정통 불교나 기독교 외에도 그걸 사칭한 신불교니 천막성전이니 통일교 외에도 신도니 남묘호렝계쿄니 하는 일본 종교들이 들어와 벼라별 교파가 아귀다툼을 하며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겠다고 설쳤대. 두 친구도 힘을 모아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기로 작정했는데, 애초엔 대단히 순수하고 열렬했다더군. 기존의 사이비들을 쳐부수고 진정한 종교를 이 세상에 펼치기로 마치 돈키호테처럼 나선 거야.”

윤호는 짧은 혀로 입술을 축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래서 한 친구는 교주로서 진리 설파를 맡기로 하고 다른 친구는 교단의 행정적인 사무를 책임지기로 했대. 흐흐…… 아무튼 이 세상엔 진리에 목마른 사람들이 많아 교가 흥성하자 슬슬 서울로 진출해…… 이곳에 터를 잡곤 거창한 성전사업을 벌인 거지. 그 정도 성공을 했으니 만족했으면 좋으련만 사람 욕심이 어디 그래? 결국 교주는 부산 친구를 버리고 서울에서 새하늘교로 탈바꿈해 번성하게 된 거래.”

“아무튼 교리는 같을 것 아냐?” “많이 바뀌었대. 같은 글자라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니까.” “음, 부산에서 자기들도 잘 하면 되지 왜?” “원래 조선 놈들이 서울에 목매달잖아. 부산뿐만 아니라 경상도나 전라도 신도들까지 슬슬 서울 쪽으로 빠져나가자 약이 오를 밖에…….”

“그래서 죽자사자 결판을 내자는 거야?” “몰라. 재산이 엄청나니까 서로 좀 나눠 먹자는 거겠지 뭐. 어차피 교리까지도 생판 달라져 버렸으니 화합은 힘들다고 해.” “음, 그런 비밀이 있었구먼.”

청운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스산한 찬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헝클었다. “배고프지?”

윤호 형이 주머니에서 빵을 꺼내 내밀었다. “내가 직접 만든 거여.” “어디서?” “여기 빵 공장이 있어. 간장 공장과 옷 공장도 있구. 또 약을 만드는 공장도 있단다.”

“무슨 약인데?” “여러 가지라던데…… 아무튼 효과는 직빵이래.” “아, 그렇구나. 난 형도 어딘가에서 갑자기 차출돼 온 줄 알았어.” 윤호는 실없이 웃었다. “낮엔 빵을 만들고 밤엔 보초를 서지, 하하.”

“여기 오는 사람들이 다 먹는 거야?” “아니지. 따로 상표를 붙여 사회에 납품도 하고 있어.” “힘들진 않아?” 청운은 선감원에서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온갖 생고생을 하던 때를 떠올리며 물었다. 여기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피에로 형과 박꽃 누나의 슬픈 얼굴이 그의 눈앞에 아른거렸다.

“힘은 들지만…… 굼벵이 때 진한 고통을 겪어야만 찬란한 날개를 달고 우화등선한다니까.”

윤호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형, 그런데…… 정말 도통해서 신인이 되어 천국으로 승천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청운은 조심스레 물었다. “흠…… 처음엔 좀 결사적으로 믿었지. 살다 보면 막막한 일이 많아. 절망 속에 빠져 의지할 데가 전혀 없다면…… 부모 형제가 빨갱이란 누명을 쓰게 되면…… 이 땅은 별안간 친구도 친척도 두려워하는 지옥이 돼 버려. 한나라 한민족이라고 하지만 그 꼴이 되면 국가라는 괴물이 늘 잡아먹으려 하지. 어쩌지 못해 나를 파괴하고…… 새로운 힘센 인간이 되고 싶었어. 흐흐, 그런데 보다시피 요모양 요꼴이야. 초인이 아니라 병정개미 같은 신세…… 하면 된다! 적극적으로 믿고 이 세상에 대한 미련과 욕심을 버리면 우화등선한다고 외치지만…… 마치 텅 빈 매미 허물 같은 느낌이야.”

윤호는 서글프게 웃었다. “형, 여기 계속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을 하면 나쁘지만…… 여기다 돈을 꽤 많이 넣었거든. 혀 빠지게 번 돈을 다 빼앗겨 버려 이제 갈 데도 없구먼.” “형, 그래도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해. 나도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겨 봤어.”

청운은 선감도에서 고생했던 얘기를 들려 주었다. “그랬구나. 그런 지옥계에서 살아나온 사람처럼 보이질 않는군. 꼭 지어낸 얘기 같아.” 청운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형, 조약돌이 파도를 횡포라고 생각할 것 같아? 응?

그는 마음속으로 말을 했다. 밤은 점점 깊어 갔다. 차가운 허공에서 별들이 파르르 떨었다.“아무도 안 오는군.” “떼거지로 몰려오진 않겠고, 몇 명이 침투해 테러를 할까 싶어 걱정하는 거지 뭐.”

새벽이 되도록 적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실망보다는 절망이 더 아름다운 희망을 꽃피울 수도 있어.” 청운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다음호 계속〉

 

작가- 김영권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후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다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보리울의 달』 등이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취재해서 르포 「시장의 하루」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등을 썼다.

현재는 『지옥극장』 시리즈 제3탄 『몽키하우스』를 집필중이이며,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의 감춰진 진실을 찾아 드라마틱하게 소설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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