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신문=김병건 기자] 교수신문은 올해도 전국의 대학교수들에게 설문조사를 진행해 2016 올해의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가 선정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원문에는 ‘군자주야 서인자수야, 수칙재주 수칙복주(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로 되어있습니다. ‘백성은 물, 임금은 배이니,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최근 촛불집회의 국민적 반응을 대변하는 사자성어일 것입니다.

교수신문은 군주민수와 마지막까지 경합했던 사자성어로 ‘빙공영사(憑公營私)’, ‘인중승천(人衆勝天)’ 등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빙공영사는 공적(公的)인 일을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을 꾀한다는 뜻입니다. 대통령이 특검에서 직접 뇌물죄 혐의를 받고 있는 상황을 나타낸 말입니다. 인중승천은 사마천의 사기 중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인중승천은 참 재미있는 사자성어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능히 하늘의 뜻을 바꿀 수 있다는 표면적 단어이지만, 과거 하늘이란 군주를 뜻하는 말이고 백성이 무리지어 요구하면 군주도 그 뜻을 바꾼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은 맹자 양혜왕 하편에서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9차까지 이어진 촛불 집회 중에서 최대 인파가 모인 날은 대통령의 탄핵을 앞뒀던 12월3일이었고, 전국적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약8%인 23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집결했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지지율은 불과 4%에 불과했습니다.

반목과 경쟁

교수신문의 사자성어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 해 동안 우리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촌철살인이자, 민심의 '풍향계'로 해석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목도했던 사자성어는 늘 어둡고 힘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기 일쑤였습니다. 교수신문은 매 새해마다 ‘올해는 이런 해가 되었으면’이라는 말도 함께 발표합니다. 2016년에는 “곶 됴코 여름 하나니”이었지요. 용비어천가 2장 뒷부분에서 나오는 글귀로 “꽃이 만발하고 열매가 풍성하다”는 뜻으로 희망을 담았지요. 아름다운 세상과 물질적 풍요까지, 필자는 처음 이 말을 접하면서 ‘화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화엄이라는 단어는 사실 쉬운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쉽게 풀이하자면 ‘천 가지 만 가지 꽃들이 저마다 피어있는 세상’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는 그의 저서에서 사람이 사는 곳(幽人)에는 국화꽃을 포함해서 마흔 여덟 가지의 꽃이 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공무원이 되어야 하고, 누구나 다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의사,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꽃을 피울 때 세상은 아름다운 법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의 정치‧사회 일정을 본다면 만만한 사회가 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대통령의 탄핵 심판이 기각인지 인용인지에 따른 사회적 혼란은 헌재 심판 날짜가 다가올수록 각 진영간 대립과 혼란은 더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다수의 국민들이 요구하는 대통령 탄핵이 혹여 기각이라도 된다면 정치권의 시계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습니다. 4월 재보선 선거, 4.16 추모 행사, 5월에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일까지 진보진영이 집결하고 요구할 수 있는 기회는 많습니다. 이런 진보진영의 집결에 극우단체들 또한 집결할 것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통령 선출을 위한 조기대선을 위한 60일은 유력 정치인들의 손익 계산과 그들의 지지자들 사이의 극심한 대립정도는 정치 평론가가 아닐지라도 예상되는 바입니다.

유력 후보자의 지지자들간 대립과 반목은 벌써 시작되고 있습니다. 탄핵정국에서 지지율이 급상승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모든 걸 걸고 치열하게 사는 동안 적진에서 날아온 화살은 기쁜 마음으로 맞았다. 처음 겪어보는 등 뒤에 내리 꽂히는 비수. 아프다. 정말 아프다"라고 밝혀 같은 진영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소회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2017년은 진영 안에서의 반목과 경쟁, 그리고 반대 진영에 대한 각종 비판이 예상되고 사람들은 또 반목하겠지요. 여기에 개헌이나 결선투표 이슈까지 추가된다면 2017년 상반기는 아마도 정치적 반목과 싸움이 예상됩니다. 내년 연말에도 교수신문에 발표될 교수들의 일침은 지금 생각해봐도 딱히 좋은 글귀는 나올 것 같지 않습니다.

화엄처럼 풍성하길

여민동락(與民同樂) 맹자 양혜왕 하편에 나오는 글귀로 임금이 백성과 함께 음악을 즐겁게 즐긴다는 이야기입니다. 맹자에서는 사냥하는 임금의 풍악이 백성의 원성을 들을 수도 있지만, 그 풍악을 백성과 같이 즐길 수도 있음을 지적합니다. 즉, 태평성대 시절에는 백성들도 음악을 듣고 즐긴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의 삶이 피폐하지 않고 여유로우며 화엄처럼 저마다의 삶을 영위할 때 진정 여민동락이 될 것입니다.

최근 최순실 국조특위에서 소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화제입니다. 예술가나 문학자, 철학자의 본연의 자세가 무엇일까요? 바로 ‘저항’이겠지요.

그 저항이 세상의 제도일 수도 있고 때론 위정자일 수도 있습니다. 문학이 저항을 잃어버리면 그저 사랑 타령뿐 일 것입니다. 철학이 세상에 대한 끝없는 비판이 없다면 우리 사회는 성숙한 사회가 가능할까요? 문학이 시대의 아픔을 담담하게 그려낼 때 우리는 세상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 이래 정치권은 문화와 예술을 장려했던 것입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 문화와 예술에 대한 탄압의 예를 찾아보는 것이 너무 쉬웠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나타내는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요구한다고, 자신들을 비판하거나 풍자했다는 이유만으로 방송과 무대에서 퇴출되었습니다.

오직 대통령이 좋아하는 문화만이 온전하게 지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내년에는 ‘화엄’처럼 다양한 문화가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비평도 저항도 그리고 시대의 아픔도 오롯이 담은 작품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아 진정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시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 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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