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대표 전락 갈림길


한나라당이 인사문제로 내홍에 휩싸였다. 정몽준 대표가 장광근 사무총장의 경질을 염두하고 있지만, 이를 반대하는 친이계 의원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는 전언이다. 경질 당사자인 장 총장은 기자간담회까지 자청하고 사퇴를 결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황은 하루 새 달라졌다. 사퇴설이 나왔던 지난 10일, 불현듯이 기자간담회를 통해 “작별인사를 하겠다”던 장 총장이 당일 또다시 간담회를 전격 취소하면서 정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청와대를 등에 업은 장 총장이 사실상 사퇴를 거부하고 나선 것. 인사권자인 정 대표의 의사를 외면하고 ‘버티기’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정 대표 역시 이번만큼은 물러날 수 없다는 결의를 보이고 있다. 시기상의 문제일 뿐 교체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정 대표와 장 총장의 힘겨루기가 본격화되면서 당내 불협화음은 날로 커지고 있다.

당대표로 인정 안 해 불만 가득, 기강확립 차원 ‘실세 총장’ 교체

장광근의 역공과 친이계 반발로 진퇴양난 “인사 방침 변화 없다”

당초 장광근 사무총장은 항간에 제기된 경질설에 대해 “할 얘기가 없다”며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그러나 지난 11일부터는 태도가 돌변했다. 이날 진행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질설 배후에 정몽준 대표의 측근들로 규정하고 노골적으로 반발에 나섰다. 더 나아가 장 총장은 “측근 참모의 말 한마디가 인간관계를 180도 변화시키는 것을 종종 봤다”며 정 대표를 압박했다. 전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퇴의 변’을 밝히려 했던 장 총장의 결연한 모습과는 사뭇 달라졌다. 오히려 장 총장의 인사권을 쥔 정 대표가 침묵을 지켰다.

결국 예고됐던 후속 인사발령은 나지 않았다. 정치권에선 한나라당 지도부가 11일 새로운 당직자 명단을 발표할 예정으로 알려졌으나 정 대표는 “좀 두고 보자”며 즉답을 피할 뿐이었다. 반면 친이계인 안상수 원내대표는 “사무총장과 대변인 교체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조차 안 됐기 때문에 없었던 일로 됐다”고 말했다.


면전 면박으로 대표 위상 하락


사실 안 원내대표는 장 총장의 경질에 대해 못마땅하게 생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정 대표에게 ‘세종시 정국에서 사무총장을 경질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친이계 의원들도 장 총장의 유임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세종시 논란으로 계파간 갈등이 깊어지는 상황에서 당직개편 문제로 당이 소란스러우면 안 된다는 것. 일각에선 날선 지적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다고 해서 사무총장을 교체하려는 것은 친이계와 완전히 척을 지겠다는 것과 같다는 것.

따라서 당내 분위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 대표의 의사와 상관없이 장 총장의 유임으로 흘러가고 있는 형국이다. “역대 여당 사무총장은 모두 청와대에서 임명해왔다”는 당 안팎의 설명처럼 친이계 정서상 ‘비주류’인 정 대표의 요구에 따라 장 총장이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다는 전언이다.

친이계 핵심 원내 관계자는 “내가 알기로 장 총장이 사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장 총장 역시 “여러 과정을 통해 결론이 내려진다면 결과에 따를 뿐”이라면서도 “불편하지만 잘 수습해서 이대로 간다면 따라가겠다”고 전했다.

장 총장이 사실상 사퇴 거부를 밝힌 셈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장 총장의 교체를 확실시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정 대표는 “연초가 돼 새롭게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차원”으로 장 총장의 교체 이유를 설명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그동안 정 대표와 장 총장 간 불협화음이 잦았다는 점에서 교체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데 의견이 모아지고 있는 것. 실제 정 대표는 “장 총장을 교체해야 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두 사람 간 갈등의 골이 깊다는 게 정치권의 설명이다.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얼마 전에 발생했다. 정 대표가 지난해 12월16일 예산안 문제 해결을 위해 ‘3자 회동’을 제안하자 장 총장이 면전에서 면박을 줬더라는 것. 18일 최고위원회에서 장 총장은 “대통령을 정국 파행의 중심에 끌어들여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라며 공개적으로 제동을 걸었다.

논란이 일자 장 총장은 “3자회담 제의와 관련해 정 대표를 공박한 게 아니라 3자 회동의 후유증을 없애기 위해 조율된 의견을 갖고 회담에 나가야 야당 공세의 장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면서 “오히려 내가 방패막을 친 것으로 정 대표에게도 비공개회의에서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 대표의 심기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 당 대표를 승계 받은 이후부터 장 총장의 ‘무례’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정 대표가 당 현안을 언론을 통해 아는 일이 많을 정도다. 한 당직자는 “장 총장이 정 대표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아 마음대로 당무를 처리하고,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10월 재보선으로 갈등 시작


대표적 사례로 지난해 10월에 열린 재보선을 들 수 있다. 당시 장 총장은 공천과 관련해 정 대표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도권 한 후보 공천을 놓고 최고위원단과 견해가 갈리자 장 총장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호남지역 사고지구당의 당원협의회장 선임을 놓고도 정 대표와 장 총장은 충돌했다. 정 대표가 자신의 측근을 당원협의회장으로 내세웠지만 장 총장이 끝내 거부했다.

이에 대해 장 총장은 “당협위원장 건은 이미 조직 강화 특위에서 결론이 난 상황이었고, 공천 건도 이미 정해진 대로 했다”며 “그 문제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비쳤는지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를 수 있겠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정 대표 측은 장 총장에 대해 “당대표를 대표로 여기지 않는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일각에선 ‘실세 총장’, ‘대표 같은 총장’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실제로도 장 총장의 위력은 당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라는 전언이다. 2007년 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 캠프 대변인을 지낸 친이 직계로서 ‘2인자’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과도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이번에 제기된 경질과 관련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재확인했다는 후문이다. 기자간담회를 준비하던 장 총장에게 다음날 11일 세종시 발표를 앞두고 사퇴를 밝히는 게 옳지 않다는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만류가 있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여기에 당 안팎에선 장 총장이 청와대로부터 유임을 부탁받았다는 얘기가 나돈다. 경질되기 전에 간담회를 열어 스스로 사퇴하려던 장 총장이 태도를 돌변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설명도 덧붙여졌다.

실제 장 총장은 “정 대표의 뜻에 따라 사퇴하려고 했으나 계속해서 맡아달라는 청와대의 요청이 있었다”면서 “이 대통령이 참모를 통해 (정 대표에게)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상의해서 처리하라고 말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뜻’에도 정 대표는 교체 의사를 굽히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시기가 문제지 교체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한 측근 의원은 “엄연히 임명권자가 있는 만큼 사무총장이 유임하겠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르면 세종시 수정 홍보전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전망했다.


유임 시 ‘허세대표’로 전락


사실 정 대표로서도 손발이 맞는 총장과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후문이다. 장 총장은 박희태 전 대표 때 임명됐거니와 결과적으로 자신과 업무스타일이 다르다는 것. 또 이제와 장 총장의 교체를 ‘없던 일’로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당대표가 총장 하나 교체하지 못한다면 가뜩이나 논란이 되고 있는 리더십에 또 한 번 심각한 타격을 입히게 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참에 리더십 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측근들의 주장도 빗발치고 있다. 측근들 사이에선 이미 오래전부터 장 총장의 교체를 놓고 청와대와 정 대표가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야당에서도 미뤄진 당직개편을 빌미로 삼아 정 대표를 ‘허세대표’로 몰고 있는 형국이다.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결국 당직개편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갈등은 이 대통령과 친이계 정치인들이 밀실에서 당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정 대표는 이번 당직개편으로 인해 당내 뿌리가 얕은 한계점을 딛고 장 총장을 비롯한 친이계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 나갈지 또 한 번 정치적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한편, 당내 일각에선 장 총장 후임으로 정병국, 정진석, 원유철 의원이 거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의 의지대로 인사가 이뤄질 경우 조기전대설을 무마시키고 당내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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