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7시30분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JTBC 사옥 1층 로비로 한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했다. 이 남성은 당시 해병대 복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경찰은 자세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사진=뉴시스

[민주신문=김병건 기자] 보통의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어릴 적부터 관습적으로, 사회적으로 가져야 할 기본덕목의 하나이고 사회적 교육시스템 안에서 교육되어집니다.

그럼 애국심이라는 것이 과연 단순하게 국가 자체를 사랑하는 것인지, 국가가 체현하고자 하는 가치인지, 국가라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사랑인지, 아니면 국가라는 틀에 있는 사람들의 공동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이것들을 구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사는 지역의 프로 스포츠구단을 응원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곳 또는 고향에 대한 사랑 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간의 경쟁이 있는 스포츠경기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을 응원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애국심이 갖는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경쟁 관계 속에 다른 국가에 대한 혐오감 또는 증오심이 그것입니다.

일제 강점기 당시 나석주 의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고위 관료들에게 폭탄을 던진 행위는 일본에게는 자국민-심지어 고위 관리와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폭탄을 던지고 총을 쏜 테러리스트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우리 국민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 할 수 있었습니다. 맞습니다. 나석주 의사는 분명 애국심이 그의 행동에 직접적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애국지사’라고 칭하고 예우를 합니다.

‘애국지사’ ‘애국심’이라는 단어에는 배타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애국심이 성립하려면 애국심의 반대적 존재, 배타적으로 증오해야 할 대상이 필요합니다.

맹목적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는 그의 명저 ‘독일 민족에게 고함’에서 자기 민족과 그 민족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무한한 발전과 개선에 대한 신념이 참된 조국애라고 주장합니다. 청소년들의 보호자는 국가이고 국가의 목적을 위해서 개인의 희생 따위는 미룰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나폴레옹에게 무참하게 침탈당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기에 당시엔 틀린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의 탄생에 피히테의 영향이 있다는 주장은 보편적 학설입니다.

그런데 이런 피히테의 철학이 한국에서도 한동안 인용되고 교육적 이념으로 탄생됩니다. 국가에 대한 사랑, 그래서 국가에서 하려고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것이 ‘매국’ 행위라는 단순한 도식으로 우리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호 ‘톨스토이’는 피히테와 다른 애국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맹목적 애국은 결국 국가간의 전쟁 혐오를 조장하기 때문에 애국심은 인위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유해한 감정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애국심 자체의 변질을 조심한 것이 아니라 애국심 자체를 증오했습니다. 프랑스의 조제프 에르네스트 르낭(Joseph Ernest Rena)같은 철학자도 톨스토이와 비슷한 입장이지만, 그는 애국심을 조장하는 일은 바로 국가주의로 가는 일이라고 주장 하고 애국심의 기본은 바로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현대 철학에서는 애국이라는 화두가 중요한 화두는 아니지만 통상 많은 철학자는 르낭의 입장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몇 년 전 필자는 경악하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21세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서북청년단’이 재건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서북청년단이 어떤 조직인가요. 해방전후 그들이 저지른 백색테러의 정당성은 ‘타도 공산당’뿐이었습니다. 공산주의자로 누가 신고만 해도 살해하고 -재판도 없이- 아녀자들은 겁탈을 하고, 폭탄을 투척하고 심지어 평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또 죽이고, 심지어 이념보다는 통일된 국가가 먼저라는 백범 김구 선생까지 암살합니다.

제주도의 4.3 항쟁 또한 서북청년단은 무자비한 살해를 저지릅니다. 이 불행한 일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와서 국가폭력이라고 규정하고 국가는 뒤늦게 정식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합니다. 다시 결성된 서북청년단이 제일 처음 한 일은 바로 광화문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부터 철거하려고 했습니다.

오직 국가만 있고 국가의 정책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물리적 폭력으로 제압하려는 단체가 대한민국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국가와 정부”의 차이점에 어쩌면 저들은 국가가 아니라 보수적 정부만을 사랑하는 삐뚤어진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보편적

지난 12월17일 보수 집회에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서북청년단은 물리력을 이용해 경찰 저지선을 돌파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의견을 위해서는 공공안정을 위한 집단인 경찰쯤은 제압해 버리려고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예상대로 시위에 사용된 태극기는 그냥 거리에 버리고 집회를 마치게 됩니다.

19일에는 JTBC 정문 앞에 트럭이 돌진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최근 유럽의 일련의 테러처럼 트럭을 이용하고 물리력을 사용한다는 점은 비슷합니다. 그의 주장은 손석희 보도부문 사장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인데, 의문이 드는 점은 그런 주장을 위해서 과연 그런 테러를 해야 할 필요까지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부 네티즌의 주장처럼 ‘사건 이후 극우집단에 대한 민심의 이반을 두려워 그랬을 것이다.’ 라는 주장이 되려 더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또한 트럭을 운전한 운전자의 주요 주장들이 그동안 서북청년단, 박사모의 주장과 일정부분 같다는 점에서 백색테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석주 의사가 도심 한복판에서의 폭탄을 던지고 총을 쏜 것은 대다수 억압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저항의 표현이었지 폭력으로 자신의 주장과 다른 사람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애국은 보편적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하는 것이지 일방적인 국가에 대한 삐뚤어진 사랑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는 28일이면 나석주 의사의 의거 90주기 추모 행사가 있을 것입니다. 나석주 의사의 희생과 억압받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점을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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