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 명절 선물 세트.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경제비사 1~3탄은 대한민국 경제 성장의 주체인 기업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기업의 탄생 비화와 흥망성쇠에 초점을 맞춰 대한민국 경제 성장사를 살펴봤다. 경제비사 제4탄은 주체를 바꿔 기업이 아닌 국민의 경제 활동에 관한 이야기다. 국민들의 시대별 경제활동 변화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가 어떤 흐름으로 발전해왔는지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명절 선물의 변천사를 통해 각 시대별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경제 발전 정도에 따라 국민들이 선호하는 상품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 또 국민들의 먹거리, 외식 메뉴 변천사를 통해 식생활부터 생활패턴, 외국 문화의 유입 과정도 살펴볼 수가 있다. 국민들의 경제 활동 변화를 통해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해 온 역사를 들여다보자.

1950년대 명절선물은 고기·계란·쌀·밀가루 등 식재료가 주를 이뤘다. 전쟁을 겪으면서 경제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고 전후 재건이 지상최대의 과제이던 시대였다. 

한마디로 먹고 사는 기본적 경제활동도 힘에 부치던 시대였다. 식재료는 그야말로 실용적이면서도 가장 받고 싶은 명절 선물.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명절 선물에 식재료와 더불어 생필품이 추가된다. 

설탕과 밀가루, 조미료뿐만 아니라 비누, 통조림, 라면 등 가공식품도 인기 선물 품목이었다. 특히 제일제당(CJ제일제당) '백설표 미풍(조미료)', 무궁화 '넘버원', 삼양라면이 인기였다. 

설탕 한 포대를 짊어지고 고향으로 향하는 풍경. 상상이 잘 가지 않지만 당시엔 흔한 광경이었다.

197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 새마을운동 등 대한민국 경제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던 만큼 명절 선물에도 큰 변화가 일어난다. 

대량생산 위주의 산업이 발달하면서 식재료와 생필품 등 한정된 선물 목록에서 벗어나 종류가 다양해졌다. 

필수품과 함께 기호품의 선호가 두드러졌으며 치약, 스타킹, 양말 등 공산품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특히 내복과 화장품, 커피 세트가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동서식품의 맥스웰 커피 세트는 백화점 선물 매출에서 설탕, 조미료 세트에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엔 고급 찻잔에 믹스커피를 타서 마시거나 대접하는 것이 고급스럽고 부유한 문화로 취급받았다.

고급화

1980년대 명절 선물은 고급화로 대표된다. 산업화를 거치면서 국민의 삶의 질이 조금씩 증진됐고 이러한 추세가 선물 문화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여유가 조금씩 생기다보니 ‘선물 문화’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게 된다. 선물 세트의 종류도 3000여개로 늘어났다.

대표적으로는 참치와 통조림 세트가 인기를 끌었다. 

백화점을 중심으로 고급 과일과 정육 세트도 큰 인기를 누렸다. 이밖에 인삼, 꿀 등도 인기 명절 선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은 자취를 감췄지만 당시 슈퍼나 마트에 가면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게 바로 ‘과자 선물 세트’였다. 각 제과업체마다 1만원 어치 과자를 가득 채운 선물 세트를 선보였고, 귀향길 단골선물이 됐다.

선물 세트뿐만 아니라 넥타이와 스카프, 지갑·벨트 세트 등도 보편적인 선물로 부상했다. 

80년대 선물 세트 문화의 발전은 신규 백화점의 출현과 다점포화, 배달 서비스 등 백화점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 했다.

1990년대 인기 선물은 상품권이었다. 1994년부터 본격적으로 발행된 상품권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상품권과 현금이 인기 1위 품목으로 등장했다.

또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곶감, 버섯 등 특산물의 인기도 높아졌다. 

산업화 시대에 맞는 선물 문화가 고급화 시기를 거쳐 건강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간 것이다. 시대 흐름과 선물 문화가 정확히 궤를 같이 하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양극화

1990년대부터 사회적으로 양극화가 발생했다. 선물 문화도 이같은 특징이 반영되기 시작했다. 

1996~1997년은 거품 경기가 한창이었던 만큼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100만원을 호가하는 양주나 굴비 세트가 인기리에 판매됐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거품이 사라지고 다시 중저가 선물 세트가 명절 선물의 주를 이루게 됐다. 

또 이 시기 대형마트가 급성장하면서 저가 선물 세트 시장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캔 햄, 식용유, 참기름 등 가공식품 선물세트가 큰 히트를 쳤다.

2000년대 선물의 트렌드는 ‘웰빙’이다. 건강 관련 선물이 각광받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는 친환경 청과, 유기농 가공식품, 올리브유, 포도씨유 등 웰빙 상품이 명절 선물로 사랑받았다. 

또 정육을 비롯해 굴비, 청과, 곶감, 버섯 등 다양한 프리미엄 식품 선물 세트의 수요가 늘어났다. 아울러 명절 선물로 활용하기 위한 상품권 구매도 꾸준히 증가했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와인과 디저트, 명인명장이 선보이는 전통주와 전통장류 등의 선물 세트가 새롭게 등장했다. 

디저트 선물 세트는 물론 파블로, 라꾸르구르몽드, 씨즈캔디 등 해외브랜드 제품까지 선물의 종류와 범위가 다양해졌다.

2010년대의 특징은 그 전 시대와 다르게 개인의 취향을 고려한 선물들이 주를 이룬다. 

아이들에게는 닌텐도 같은 오락기, 주부 및 어른들에게는 음파칫솔, 로봇청소기, 음식물처리기 같은 편리한 생활용품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또 최근 들어 ‘김영란법’의 시행으로 선물 가격에 5만원의 제한이 생기면서 품목을 떠나 가격 면에서 다시 저렴해지고 있는 추세다.

가격

명절선물의 가격도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너무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적절한 선물을 하는 것이 미덕이다. 

1950년대 인기 품목이었던 설탕 한 포대(3~6kg)의 가격은 300원에서 600원 사이였다. 30개 들이 비누 세트는 100원가량. 계란 20개 들이 세트는 200원이었다. 현재 설탕 3kg은 약 6000원으로 당시보다 약 20배 상승했다.

1970년대 기호식품의 대표주자였던 동서식품 맥스웰 커피 세트는 680원~1290원이었다. 지금 200개 들이 한 세트에 2만원 정도. 약 28배 가격이 뛰었다.

고가 선물이 유행하던 1980년대 갈비 세트의 가격은 6kg에 3만원 정도. 지금은 고가의 갈비 선물 세트가 30만원을 훌쩍 넘으니 가격이 10배 오른 셈이다. 

넥타이는 당시 350원 정도에서 현재 평균 3만원 정도로 가격이 160배 이상 급증했다.

1990년대 유행하던 상품권 선물은 1만원, 3만원, 최대 10만원 정도가 오고가는 게 관례였다. 

지금은 기본 10만원짜리 상품권이 최소한의 액수로 여겨지고 있다. 또 2000년대 들어서는 수십만원짜리 아웃도어 의류나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효도관광 상품도 명절 선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명절 민족대이동 교통수단 변천사. 왼쪽부터 70년대 추석 귀성객 모습, 고속도로에서 승용차들이 정체된 모습, 공항 라운지 전경.

먹거리

명절 선물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기던 외식메뉴의 변천사 속에서도 경제 성장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1960년대 최고의 외식 메뉴는 자장면이었다. 1963년도 기준 자장면 가격은 15원이었다. 졸업식, 입학식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마다 큰 마음먹고 사먹던 음식이 자장면이었다. 

지금은 전화 한 통이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저렴한 음식으로 여겨지고 있다. 가격도 평균 5000원대에서 고급재료가 들어간 1만원대까지 다양해졌다.

70~80년대를 주름잡던 자장면은 지금도 인기 먹거리지만 90년대 들어 ‘돈가스’에게 그 바통을 넘겨줬다. 

당시 돈가스는 경양식집에서 고급스럽게 ‘칼질’을 하면서 먹어야 하는 음식이었다. 당시는 외국의 경양식 문화가 막 들어와서 대중화되던 시기다. 돈가스를 시키면 애피타이저로 스프와 빵이 나온 뒤, 본 메뉴인 돈가스가 나왔다. 지금처럼 돈가스를 아무데서나 흔하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국민 외식 메뉴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패밀리 레스토랑이다. 

2000년대 들어 아웃백, 빕스 등 다양한 프랜차이즈 패밀리 레스토랑이 생겨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3만~5만원대의 다소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질 좋은 음식과 서비스 덕분에 현재도 인기 있는 외식 메뉴로 사랑받고 있다.

최근의 외식 트렌드는 ‘다양화’가 특징이다. 어느 하나에 치중되기보다 자기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게 유행이 됐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지고 시간적 여유도 많아지면서 ‘맛집’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맛집 관련 프로그램과 인터넷 사이트도 넘쳐난다.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이 만들어낸 신풍속도다.

대이동

명절 민족대이동도 변화했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 전 민족대이동을 책임지던 교통수단은 기차였다. 

명절만 되면 서울역, 부산역 등 전국 곳곳의 기차역은 만원사례를 이뤘다. 열차표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의 모습이 뉴스 소재가 됐다. 열차 안 자리가 부족해 선반 위에까지 올라앉은 모습도 진풍경으로 남아 있다.

1970년대 산업화와 함께 정부가 추진한 정책은 고속도로 개통이었다. 이로써 민족대이동 교통수단이 열차와 자가용으로 나뉘게 된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1973년 호남고속도로, 1987년 중부고속도로가 개통됐다. 고속도로의 개통은 물류산업 발전은 물론 전국을 1일 생활권으로 만들면서 경제성장의 기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90년대 들어 자가용이 대중화되면서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는 정체 현상으로 몸살을 앓아야만 했다. 

버스전용차선이 생기면서 정체현상이 다소 완화되기도 했지만 명절마다 겪는 정체현상은 귀성객들의 스트레스 중 하나였다. 서울부터 부산까지 차가 막혀 과연 얼마나 늦어지는지가 명절 주요 뉴스거리가 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정체 현상도 조금씩 완화됐다. 경제가 성장하고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명절에는 무조건 고향에 가야한다는 고정관념도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해외 여행족들이 생긴 것. 명절 연휴를 이용해 부모님과 함께 혹은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명절이면 공항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게 됐다.

사람들의 의식도 변화해 부모님이 자식들 사는 곳으로 찾아오는 ‘역귀성’도 많아졌다. 때문에 산업화 시절 성공을 위해 고향을 떠난 자식들이 명절마다 고향을 찾아가던 것에서 시작된 민족대이동도 이젠 점점 옛말이 돼가고 있다. 

최첨단 기술의 발달로 서울에서 부산을 2시간 만에 주파하는 SRT가 개통되는 등 민족대이동 현상을 해결해줄 만한 요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TV프로그램

한편 명절이면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던 TV프로그램들도 있다. 70년대만 해도 TV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았기에 80년대 들어 소위 추석, 설날 특집 프로그램이라는 게 생겨났다. 

80~90년대 명절마다 TV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성룡’이다. '프로젝트A' '용형호제' '폴리스스토리'와 같은 성룡시리즈는 지겹도록 자주 나오던 명절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더 이상 TV로 영화를 볼 필요가 없게 됐다. 때문에 명절 TV프로그램의 주도권은 영화가 아니라 파일럿 예능이 차지하게 됐다. 

특히 ‘아이돌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는 명절마다 방영하는 대표 프로그램이 됐다.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인기가 급부상하는 등 스타 등용문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TV 프로그램의 변화 하나에도 시대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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