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과 가운데 사진은 체험 당사자인 기자가 13일 서울 용산구 4호선 숙대입구역 인근 빌라 공사 현장에서 페인트칠과 자재를 옮기는 등 작업에 한창인 모습. 오른쪽은 빌라 건물 외관.

[민주신문=신상언 기자]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이불 속에서 나오는 것조차 고통이다. 

행복한 푸념일까. 우리 주변에는 추위는 고사하고, 첫차가 운행하기도 전부터 집을 나서야만 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인력시장 일용직 근로자들이다.

그들은 추우나 더우나 어김없이 5시까지 인력시장에 나가야만 그날의 일을 배정받을 수 있다. 그들에게 추위는 사치일 뿐이다. 추위보다 더 무서운 건 겨울철 줄어든 일감으로 인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한겨울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불안하고 고통스러울까. 기자가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었다.

경쟁

12일 서울 동대문구 소재 인력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집결시간과 장소, 준비물 등을 물었다. 

인력사무소 직원은 “신분증을 지참해서 5시에서 5시30분까지는 와야 일을 배정받을 수 있다”면서도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직원의 말은 경쟁해야한다는 뜻이었다.

13일 새벽 4시. 알람이 울렸다. 

특별기획 「체험 삶의 현장」은 실패가 곧 낙종이다. 국장의 불호령이 눈에 선하다. 

물 먹은 스펀지처럼 늘어진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웠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외마디 “XX”가 튀어나왔다.

서둘러 동대문 인근 인력사무소로 향했다. 다행히 5시 전에 도착했다. 그것도 1등으로. 5시가 조금 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5시40분쯤에는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사무실 의자를 가득 채웠다.

6시가 된 후 인력이 필요한 업체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선착순으로 일을 배정받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건설현장안전교육증과 안전화가 있는 사람만 건설 현장 일감을 맡을 수 있었다. 교육증이 없는 사람은 건설 현장에 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났다. 그렇게 30분간 기다린 끝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을 배정받고 나서야 겨우 건설 현장 실내 작업 ‘잡부’ 일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작업

서울 용산구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위치한 빌라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건물은 완공됐지만 실내는 아무것도 없는 그런 구조물이었다. 그곳에는 전기, 가스, 하수도 등 시설물 설치를 위한 공사와 주변 지형지물을 평탄화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도착하자마자 각자 지시받은 일을 시작했다. 인사나 통성명, 대화 같은 것은 필요치 않았다.

기자는 오전 일과로 실내 청소작업을 부여받았다. 갓 완공돼 벽지와 장판만 깔린 실내는 각종 건설 자재 쓰레기와 흙으로 가득했다. 빗자루질 한 번에 먼지가 자욱해진다. 한 집 청소하는데 쓰레기가 마대자루로 한 포대씩 나왔다.

허리를 펴고 잠시라도 쉬고 싶었지만 함께 작업하던 작업반장의 눈치 때문에 거의 쉬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여 빗자루질을 계속 했다. 또 한 차례 국장의 얼굴이 스쳐지나간다. “XX”.

1층부터 5층까지 거의 20호실을 청소했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다. 정신없이 먼지를 들이마시며 일하다보니 금세 점심시간이 됐다.

애환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주로 삽질과 건설 자재·폐기물 등을 실어 나르는 일을 했다. 조를 이뤄서 작업을 했다. 

기자와 한 팀을 이룬 이는 올해 52세의 남성. 자신을 전씨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에어컨 설치, 공장일 등 이것저것 다 해보다가 막노동을 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겨울에는 추워서 나오기 짜증나지만 놀 수는 없잖아. 새벽같이 나와도 일을 못 구할 때도 많은데 일하는 게 어디야”라며 달관하듯 이야기했다. 하루살이 노동자들에게 추위는 그저 일을 방해하는 요소에 불과했다.

전씨는 가족이 없었다. 그는 “예전에 누가 동남아 여자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돈을 노린 거였다”고 자신의 과거를 귀띔했다. 가족은 없지만 불안한 미래 때문에 주말에도 동묘시장에 나가 노점상으로 물건을 판다고 했다. 

주중에는 고된 막노동을, 주말에는 노점상까지 해도 부자가 되기는커녕 결혼조차 꿈꿀 수 없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고난

처음 해보는 막노동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페인트 뚜껑 하나 여는 것도 힘들었다. 작업반장의 “그것도 못 따느냐”는 핀잔과 구박에 조금 민망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페인트 뚜껑을 열지 못했다. 결국 송곳과 망치로 뚫어서 사용했다.

작업장 ‘잡부’는 특별한 기술이 없는 사람이 도맡는다. 할 줄 아는 게 없는 만큼 ‘힘’쓰는 일은 모두 잡부의 몫이다. 

오후 대부분은 그런 일을 했다. 특히 시멘트 포대를 옮기는 일은 중간에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40kg짜리 30여개, 25kg짜리 50포대 정도 물량이었다.

한 포대를 창고까지 옮기고 나면, 별이 보일 정도였다. 같이 작업하던 전씨의 입에서 욕이 흘러나온 것도 그때였다. 반쯤 옮기니 온 몸이 땀으로 젖었다. 

아저씨와 급하게 커피로 당을 보충했다. 전씨는 “다른 데는 중간에 빵도 주는데 여기는 그런 것도 없어”라며 연신 불평을 쏟아냈다. 다음날 온 몸으로 전해오던 통증의 대부분은 이 작업 때문이었다.

공사 현장 폐기물 수거 트럭이 과적으로 인해 바퀴가 눌려있는 모습이다.

아쉬움

1일 체험으로 온 현장이지만 직업병인지 부조리한 것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작업이 끝날 때쯤 되면 1톤짜리 폐기물 수거 차량이 온다. 트럭에 시멘트, 목재 등 건설자재와 온갖 폐기물을 적재해 보내는데 타이어가 눌릴 정도로 과적을 하는 것이다.

과적 차량은 사고 위험이 증가되고 자재가 떨어지면 주변 사고로도 이어져 법으로 단속하고 있음에도 작업반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사작업은 전반적으로 일사분란하고 안전하게 잘 진행됐지만 그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5시가 돼 다시 사무실로 복귀했다.

인력사무소에 10%를 떼어주고 10만8000원을 받았다. 노동의 소중함을 깨닫고 만나보지 못했던 이들의 애환까지 듣고, 일당도 손에 쥔 아주 의미 있는 하루였다. 또다시 국장의 얼굴이 떠오른다. “XX”. 오늘 밤은 소주 한잔과 함께 잠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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