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보루 인근 살인사건 현장에는 피해자의 딸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추모글이 남아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3개월 범죄 예방 홍보 후 특단 조치 없이 순찰만 강화

범죄 노출에 이용객 평소 1/10수준…“통합센터 필요”

[민주신문=허홍국 기자] “엄마 아프지 말고 좋은 곳 가세요.” 수락산(서울 노원구 소재)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7개월. 한파가 몰아친 12월14일. 다시 찾은 살인사건 현장에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엄마를 그리는 딸의 추모 글과 헌화, 고인의 명복을 비는 익명의 글이 남아있었다.

평소 등산을 즐기던 A(64/여)씨는 지난 5월29일 오전 5시20분께. 여느 때처럼 수락산 보루(고려시대 성터)를 향해 산을 오르던 중 김학봉(61/남)이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살해당했다. 일면식도 없었던 살인마의 묻지마 범죄는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이후 등산로 안전 확보가 시급하다는 진단이 나왔고, 각 지자체와 경찰 등은 등산객 안전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눈발이 날리던 14일 오전 11시. 기자가 직접 수락산을 찾았다. 등산로를 따라 보루를 향해 올라갔지만 등산객 안전을 위한 방범시설은 전무했다. 오직 노원구청이 내건 산불예방 특별단속반 활동 안내와 관할 소방서에서 설치한 산불조심 캠페인 플랜카드만 걸려 있을 뿐이다.

등산을 시작한지 30분이 지나 수락산 보루에 도착했다. 지선 등산로를 따라 정상을 향하는 한 무리의 등산객을 발견했다. 연인사이로 보이는 남녀와 50대 중년 여성 2명. 반가웠다.

등산객 조모(50대/여/노원구 상계 5동)씨는 “등산로가 완만해 평일에도 등산객이 많았지만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발길이 뚝 끊겼다”면서 “오늘처럼 일행이 없으면 혼자서는 불안해서 올 수가 없다”고 전했다.

조모씨와 함께 산을 찾은 강모(50대/여/도봉구)씨 역시 “제대로 된 방범시설도 없고, 산에 오를 때마다 겁이나 조마조마하다”고 토로했다.

사각지대

반가웠던 이들을 뒤로 하고, 산책로로 유명한 보루 주변을 살폈지만 역시 마찬가지다. 방범 CCTV(폐쇄회로)와 주의를 요구하는 안내문 등 어떠한 안전시설도 없었다.

주변을 살피던 중 또 다른 등산객을 발견했다. 모처럼 휴가를 내 산을 찾았다는 김모(50/여/노원구)씨는 “사건 발생 후 불안감은 더 커졌다. 혼자 지나는 등산객을 보면 무섭다”면서 “경찰이나 의경, 공익요원이라도 하루에 한번씩 순찰하는 등 안전성을 확보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15일 오전 10시. 수락산 사건 발생 한 달 후 또 다른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사패산(경기도 의정부 송추계곡 인근)을 찾았다. 이 곳 역시 안전 사각지대였다. 등산로 입구에 설치된 주의 문구(2인 이상 함께 등산을 하라)를 담은 플랜카드가 전부다.

등산객 김모(50대/여/경기도 양주)씨는 “이곳도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등산객이 많이 줄었다”면서 “평일엔 산 오르기가 무섭다”고 전했다.

사패산 살인사건은 정모(45/남)씨가 지난 6월7일 오후 3시께 경기도 의정부시 사패산 호암사 100여m부근 바위에서 등산객 B(55/여)씨의 목을 조르고 머리를 때려 숨지게 한 사건이다.

수락산 정산을 향하는 등산로 어느 곳에서도 등산객 안전 확보를 위한 CCTV 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어처구니

수락산과 사패산은 서울 수도권에서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곳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자체와 경찰 등의 산악 범죄 예방 활동은 낙제점에 가깝다.

수락산을 관할하는 노원과 의정부경찰서 등은 둘레길 순찰을 평소보다 2배 강화했을 뿐이다. 동주민센터는 방범에 손을 놔버린 상황이다.

노원경찰서 마들지구대(대장 김영삼 경감)에 따르면 수락산 살인 사건 발생 후 2월~3개월 동안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서 안전 및 야간산행 금지 등을 알리는 전단지를 뿌리고, 같은 내용을 담은 플랜카드를 내걸어 등산 범죄 예방을 위한 홍보를 했다.

현재는 순찰을 2배 강화하고 정식 등산로 입구에 방범용 CCTV를 설치한 상태다. 하지만 등산로에서 발생하는 범죄 예방에는 역부족이다.

노원구 역시 등산로 방범을 위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노원구는 사고 이후 사건 발생 장소 주변 나무를 베었을 뿐이다. 관내 등산 인구가 많지만 특단의 대책은 없었다. 더욱이 예산을 이유로 방범 CCTV 설치에도 미온적이다.

노원경찰서 관계자는 “살인사건이 발생한 장소 인근에 방범 CCTV 설치를 요구했다”며 “현재 예산을 이유로 설치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장태종 상계 9동장은 “등산로 방범을 위해 특별한 조치를 내린 것은 없다”며 “현재 관리는 안하고 있다”고 시인했다.

사패산 인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등산 범죄 예방을 위한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부(경찰학) 교수는 “구조와 산불방지, 화재감시, 방범 등을 관할하는 기관들이 협업을 통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통합센터를 운영해야 한다”면서 “미국처럼 산악 경찰을 두는 것도 등산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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