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여 끈질긴 추적 끝에 ‘덜미’


지난 2일 부산 사하경찰서는 2006년 2월 부산 서구 남부빈동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A(25·대학생) 씨에게 ‘여자친구의 집에 대신 편지를 전달해 달라며’ 꾀어 빈집으로 유인한 뒤 성폭행한 혐의로 김모(43) 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외에도 비슷한 수법으로 여성을 유인해 총 3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베일에 싸인 범인
 
사하경찰서 강력 2팀은 A씨가 성폭행 당했다는 신고를 받은 뒤 용의자인 김씨를 검거하는데 3년 9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전했다. 김씨의 범행이 워낙 철두철미했고 신원을 파악하는데 애를 먹었기 때문.

사하경찰서 강력 2팀의 한 관계자는 “범인의 수법이 워낙 비상해서 찾는데 애를 먹었다”며 “지난 2007년 검거 된 성폭행 용의자와 범행 수법이 비슷해 사건을 재수사했고,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범인을 알아내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성폭행범 김씨는 부둣가에서 배에 짐을 싣는 용역근로자로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첫 범행 피해자는 2006년 1월 부산 서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한 젊은 직장인 여성 B씨였다. 김씨는 B씨에게 접근해 ‘집안의 반대로 내가 여자친구의 집에 가지 못한다. 내가 여자친구의 집을 알려 주겠으니 대신 편지를 전달해 주겠냐’고 제안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B씨는 김씨를 쫓아 여자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김씨는 미리 선정해둔 빈집으로 B씨를 유인. 그곳에서 B씨를 성폭행했다.

성폭행을 당한 B씨는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김씨는 동종 전과기록이 없어 성폭행범죄자 명단에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도 B씨가 김씨의 얼굴을 자세히 기억하지 못해 결국 용의자를 검거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범행은 한 달 뒤인 2006년 2월에 벌어졌다. 김씨는 B씨를 성폭행했을 때와 비슷한 수법으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A씨를 빈집으로 유인해 또 다시 성폭행을 일삼았다. A씨 역시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단순한 범인의 특징과 인상착의만으로는 용의자를 검거할 수 없었다.

경찰은 이 두 사건을 ‘미제사건’으로 분류해 놓았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김씨가 경찰에 덜미를 붙잡힌 것은 세 번째 범행인 2007년 4월경이었다. 김씨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한 여대생을 유인해 빈집에서 성폭행을 했다. 그러나 여대생의 신속한 신고를 받은 경찰은 도망가는 김씨를 추적해 그가 거주하고 있는 동네를 알아냈다.

경찰은 잠복수사 끝에 직장에 출근하려는 김씨를 검거했다. 김씨는 여대생 측에게 합의금을 물고 징역 3년, 집행유예 4개월 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앞선 두 건의 성폭행 사건과 김씨를 연관 짓지는 못했다.

김씨를 검거한 뒤로 2년여의 시간이 흐른 2009년 11월경. 그 동안 경찰은 미제로 남아있던 사건들을 끈질기게 재수사하고 있었다. 그중 경찰이 가장 많은 노력을 쏟아 부은 것은 지난 2006년에 벌어진 두 건의 성폭행 용의자를 밝혀내는 일이었다.

지난 11월 중순경 경찰은 2007년 4월 여대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수감 중인 김씨의 범행과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두 건의 성폭행 수법이 비슷했고, 당시 피해자가 진술한 용의자 특징과 인상착의가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경찰은 당시 피해자들을 소환해 김씨의 사진과 대조시켜보게 한 뒤 2006년 1월과 2월에 미제사건으로 남아있었던 성폭행범이 김씨의 소행이라고 잠정적 결정. 보름간 김씨를 추궁해 지난 1일 자백을 받아냈다. 현재 김씨는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여죄가 밝혀짐에 따라 더욱 큰 형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씨는 첫 범행을 저지른 2006년 1월 이후 3년 9개월여 만에 제대로 된 죄 값을 치르게 된 것이다.

부산 사하경찰서 강력 2팀의 한 관계자는 “범인은 외모가 준수했고 언변이 뛰어났다”며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고 유인한 뒤 성폭행한 수법으로 보아 머리가 상당히 똑똑했고, 한편으로는 쉽게 얼굴이 노출되는 위험을 감수하는 대담함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계자는 “김씨의 여죄를 계속해서 추궁 중이며, 부산지역에 남아있는 또 다른 미제사건도 하루 빨리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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