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쇼가 옳은가

 
진보성향의 단체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데 이어 이번에는 보수단체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추진위)가 ‘친북인명사전’을 편찬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3년 전부터 친북인사를 골라내는 작업을 해왔다고 밝힌 추진위는 현재 국회의원, 법조계 인사 등 국가적 영향력이 상당한 친북세력 100여명의 원고를 작성해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이에 진보단체는 친북인명사전을 두고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 ‘친인일명사전을 견제하려는 의도’ 라며 강한 반발심을 드러내 논란이 예상된다. 
 
지난 11월 26일 국가정상화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친북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친북인명사전)’을 편찬하겠다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민족문제연구소의‘친일인명사전’발간이 2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친일인명사전과 관련 없다”
 
일부 진보단체는 친북인명사전 편찬의 목적이‘정치적 쇼’이거나 친일인명사전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반면, 보수단체에서는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으니 친북세력도 가려내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시기적으로, 그리고 두 사전의 색깔이 극명히 엇갈린다는 점에서 친북인명사전은 기자회견 발표 전부터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친일인명사전이 그랬듯, 친북인명사전을 둘러싼 논란의 중심은 친북세력의 선정기준과 전 대통령들의 이름이 사전에 올라갈지의 여부다.
기자회견장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는 것을 반증하기라도 하는 듯 40여명의 취재진과 150여명의 참석자들이 함께했다.

오전 11시께 친북인명사전 편찬 관련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추진위 관계자들의 입장부터 장내는 술렁거렸고 간간히 욕설도 튀어나왔다.

친북인명사전 고영준(변호사) 추진위원장은“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부정하고 훼손하는 반헌법적·반국가적 활동을 행한 인사들의 활동내역과 사상성향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인명사정을 편찬할 것”이라며“친북반국가행위자들의 폐해와 실체를 정확히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들을 역사적으로 단죄하여 대한민국의 헌정질서와 국가정체성을 수호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발전과 선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말하며 편찬 목적과 의미를 설명했다.

이어 친북인명사전에 올릴 선정기준에 대해서 고 위원장은 “친북반국가 행위자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인 자유시장, 경제원리와 자유민주주의 이념 및 국가정통성을 부정하고 북한당국 노선이나 맑스, 레닌주의 노선을 정당화하며 이에 입각한 행위를 선동하거나 실행하는 인사를 선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친일인명사전을 견제하기 위한 맞불작전이 아니냐는 세간의 논란에 대해서 고 위원장은 “추진위 측에서는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적이 없다”며 “단, 친일인명사전 동기의 순수성, 선정기준의 공정성 문제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고성, 육두문자 남발 ‘싸움판’
 
기자회견의 대미를 장식했던 것은 친북인명사전 편찬이 공식화된 뒤 이어진 기자들의 질의응답시간이었다. 한 기자가 ‘1차 명단에 전직 대통령도 들어가 있느냐’고 질문하자 추진위는 ‘이미 고인이 됐기 때문에 올리지 않았다’고 대답. 곧 장내는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한 노인이 “왜 박정희는 친일인명사전에 들어가 있는데 노무현과 김대중은 안 들어가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이것을 시작으로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기자회견장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전 반영 여부를 둘러싸고 고성과 육두문자, 심지어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20~30여명의 노인들은 추진위 관계자들에게 달려가 소리를 지르며 “두 대통령을 사전에 올릴 게 아니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마라”고 항의했다. 또 일부 참석자는 ‘북한에게 공작금이라도 받은 게 아니냐’고 흥분된 억양으로 말했다. 기자회견장 참석자 좌석 쪽에서는 “사전을 왜 만들었냐. 머리를 다 잘라버리고 몸통만 남은 게 무슨 친북인명사전이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반면 주최 측과 일부 참석자들은 ‘일부로 방해하러 회견장에 찾아온 게 아니냐. 어디 소속이냐’고 질서와 예의를 지킬 것을 당부했다.

당황한 추진위 관계자들은 서둘러 장내에서 피신했고, 회견장에 남아있던 한 관계자가 “여
러분들의 의견을 수렴해 두 대통령의 이름을 올릴 것을 고려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싸움판은 30분이나 더 이어졌다.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노인들은 서로 고성을 주고받으며 싸움을 이어갔다.

한편 추진위는 5,000여명의 친분세력 대상자 가운데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는 100여명의 인사들을 12월 중순께 1차 발표하겠다고 했다. 이 중에는 현직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언론계, 법조계, 학계 등의 사회 전 분야 인사가 포함돼 있다. 이어 2010년 이전에는 200여명의 2차 추가 친북세력 명단을 공개, 이후에도 차근차근 명단을 알리며 사전을 발간해 나갈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강신찬 기자
noni-jjang@hanmail.net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민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